4월 극장가에 여풍(女風)이 분다. 쌀쌀한 대기를 깨우는 봄바람보다 반갑다.
최근 영화계를 휩쓴 작품들을 꼽아볼까. 이병헌·조승우·백윤식 주연의 ‘내부자들’, 황정민·정우 주연의 ‘히말라야’, 황정민·강동원 주연의 ‘검사외전’ 정도가 되겠다. 어렵지 않게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여배우를 찾아보기 힘들다는 것이다.
스크린 남초 현상은 해묵은 문제다. 여배우들이 한 목소리로 “설 자리가 없다”고 외친지 오래다. 시나리오는 당연히 남자 배우 중심으로 쓰인 게 많다. 관객 동원력 때문이다. 티켓파워로 따지면 남자 배우가 비교적 유리하다는 게 업계 정설이다.
상업의 논리 속에 작품 다양성은 점차 희미해진다. 가뭄에 콩 나듯 나오는 여배우 중심 영화가 더 반가운 건 그래서다. 올 봄 스크린은 특히 화사하다. 여배우를 필두로 한 두 작품이 다음 달 13일 동시에 개봉한다.
말을 이해하는 꽃, 해어화
‘해어화'는 1943년 비운의 시대에 가수를 꿈꾼 마지막 기생들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한효주를 필두로 유연석과 천우희가 힘을 실었다. 유연석은 당대 최고 작곡가 윤우 역, 천우희는 마음을 울리는 목소리를 지닌 연희 역을 맡았다.
한효주는 전통 성악의 한 갈래인 정가(正歌)의 명인이자 최고의 예인으로 불리는 소율을 연기했다. 팜므파탈의 매력을 지닌 인물이다. 역할을 소화하기 위해 실제 정가와 대중가요, 춤까지 배웠다고 한다.
한효주는 앞서 열린 제작보고회에서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이번에는 인간 내면의 욕망과 질투 같은 다양한 감정들을 표현했다”며 “지금까지 나도 보지 못한 나의 얼굴들이 화면에 나와서 낯설었다”고 말했다. 공들여 준비한 만큼 기대도 크다. 손익분기점을 넘긴 전작 ‘뷰티인사이드’의 긍정적인 기운을 이어갈 수 있을지 주목된다.
다른 시대-하나의 사건, 시간이탈자
감성추적 스릴러를 표방한 ‘시간이탈자’는 결혼을 앞둔 1983년의 남자 지환(조정석)과 강력계 형사인 2015년의 남자 건우(이진욱)가 우연히 서로의 꿈을 통해 사랑하는 여자(임수정)의 죽음을 목격하고 그를 구하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이야기다.
임수정의 1인2역이 호기심을 자극한다. 극중 임수정은 1983년 지환의 약혼녀 윤정과 2015년 윤정과 닮은 소은 역을 함께 소화했다. ‘전우치’(2009)에 이어 또 두 인물을 연기하기가 다소 부담스럽긴 했다. 하지만 시나리오를 읽고 마음을 굳혔다.
임수정은 지난 제작보고회 때 시간이탈자 출연을 결심한 이유에 대해 언급했다. 그는 “이야기에 힘이 있었다”며 “어떤 고민 따위를 할 의미가 없을 정도로 (확실이 들었다). 이런 작품에 출연을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고 전했다.
전작 ‘은밀한 유혹(2014)’ 흥행 실패의 아픈 기억을 이번 영화로 떨쳐낼 수 있을까. 임수정은 작품을 전면에서 이끌 수 있는 몇 안 되는 여배우다. 그의 행보를 더욱 응원하고픈 이유다.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