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기름왕국’ 사우디 아성 무너지나

입력 2016-03-29 15:29 수정 2016-03-29 15:31
술탄 빈 살만 사우디 왕자가 지난 9일(현지시간) 아부다비에서 열린 국제항공정상회의에서 학생들과 함께 사진을 찍기 전 포즈를 취하고 있다. (AP/뉴시스)

세계 최대의 원유수출국 사우디아라비아의 위상이 추락하고 있다. 주요 수출대상 국가에서 사우디로부터의 원유 수입 비중을 급격히 줄여나가고 있어서다.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사우디가 중국과 남아프리카공화국, 미국 등 상위 수출국 15개 국가 중 9개 국가에서 다른 원유생산국에게 점유율을 뺏기고 있다고 28일(현지시간) 전했다.

 사우디는 2014년 말 공급과잉에도 불구하고 원유시장 점유율 유지 정책을 펼쳐 원유 가격 폭락을 초래했다. 하지만 사우디는 2013년에 이어 2014년, 2015년에도 계속해서 점유율을 뺏기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3년과 2015년 사우디의 각국 원유 시장 점유율 하락세 (출처: FGC)

 에너지컨설턴트 기업 FGE에 따르면 중국 시장에서 사우디의 원유시장 점유율은 2013년 19%에서 15%로 떨어졌다. 남아프리카에서도 경쟁국인 나이지리아와 앙골라 등이 원유 수출을 늘리면서 53%에서 22%로 줄었다. 미국은 셰어오일 붐이 불면서 원유 수입량 자체가 줄었다.

 시티그룹 애널리스트인 에드 모스는 이에 대해 “경쟁 원유생산국들이 포화된 시장에 매우 공격적으로 달려들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러시아와 최근 금수조치가 해제된 이라크 등을 일컫는 지적이다. FT는 지난달 사우디가 러시아 등과 원유 생산량을 전달인 1월 수준으로 맞추자고 맺은 임시협약도 그간 사우디가 큰 타격을 받았음을 반영하는 결과라고 해석했다.

 아직 사우디는 중국 등 많은 시장에서 최대 원유수출국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 브라질과 인도, 일본 등 시장에서는 기존 점유율을 지켜내는 등 선방하기도 했다. 세계시장 전체 점유율도 지난해의 7.9%에서 8.1%로 오히려 늘었다. 그러나 2013년의 8.5%와 비교하면 전체적으로 하락세인 것만은 분명하다.

 사우디는 기존 주요 수출대상국에서 눈을 돌려 유럽을 공략하고 있다. 스웨덴 기업인 프림과 PKN 오를렌, 폴란드 기업 로토스 등과 협력을 늘린 게 그 예다. 사우디 국영 원유기업 아람코 내부 관계자는 “러시아와 이라크가 새 시장을 공략하고 있고, 당연히 이란도 (제재 조치가 해제된 뒤) 예전 구매자들을 찾아나설 것”이라면서 “우리도 이 같은 환경을 헤쳐나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1월 사우디는 일일 원유수출량을 10개월 만의 최고치인 780만 배럴로 늘렸다. 경쟁국들 못지않은 공격적인 태세다. 그러나 FT는 사우디 내부에서 이 같은 조치로 잃어버린 시장점유율을 되찾아올 수 있을지 회의적인 전망도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사우디가 앞을 널리 내다보고 장기전을 준비하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FT에 따르면 사우디는 국영기업 아람코를 통해 해외의 원유시추소를 사들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북미 최대의 시추기업인 텍사스리파이너리 소유권을 획득한 데 이어 중국, 인도,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베트남을 주요 목표로 삼고 있다. 원유생산지를 잠식해 나감으로써 원유생산 자체를 통제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속셈이다.

조효석 기자 prome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