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초 2주간, 알파고와 이세돌의 세기의 대결 이야기로 연일 언론이 흥분하고 신문의 한두 면이 거의 도배되다시피 했다. 그런데, 이 지점에서 알파고와 이세돌을 비교할 것이 아니라 알파고를 만든 알파고의 아버지인 하사비스와 이세돌을 비교해 볼 것을 제안한다.
이세돌은 1983년 전남 신안에서 태어난 바둑 신동으로, 그의 아버지에 의해서 11세에 서울 권갑용 7단의 도장으로 유학을 가게 됐다. 1995년 12세에 프로에 입단해 3년 만에 바둑 2단이 됐다. 2000년에는 32연승을 거두며 최우수기사상을 수상했다. 국제 기전에서 15회 우승하는 등 21세기 초 최고의 기사 중 한 명으로 평가 받고 있다.
하사비스의 이력을 살펴보자. 4살부터 체스를 배워 영국 1위와 세계 유소년 챔피언 2위를 한 것까지는 이세돌과 유사하다. 그러나 그는 고등학교 조기 졸업 후, 대학에 진학하지 않고 게임 회사에 취업해 테마파크라는 유명한 비디오게임을 만들었다. 퇴사한 뒤 케임브리지대 컴퓨터공학과에 입학했다. 그는 대학 졸업 후 자신의 게임회사를 창업했으나, 2005년 돌연 폐업하고 영국 UCL에 입학해 뇌신경학으로 2009년에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의 논문은 사이언스지에 의해 ‘2007년 올해의 논문’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하사비스는 2011년에 ‘딥마인드'라는 인공지능 회사를 창업했는데 이 회사가 2014년 구글에 4억 달러에 인수됐다. 딥마인드에서 알파고 개발에 착수한 지 2년 만에 이세돌과 바둑대결에서 4:1로 이기게 된 것이다.
이세돌은 바둑 천재로 바둑 실력만 갈고닦은 바둑 한우물 파기를 30여년간 해온 반면, 하사비스는 체스 천재였으나 체스에 머물지 않고 게임, 뇌과학, 컴퓨터 등을 고루 공부했고, 학업, 취업, 창업을 두루 섭렵했다. 한 가지 분야에서 일정정도 깊이를 달성한 뒤에 인접 관심 분야로 새로운 지평을 계속 넓혀가면서 한 분야의 전문성과 새로운 분야의 전문성을 융합시켜 계속 새로운 도전을 이어갔다고 할 수 있다.
이세돌이나 하사비스 정도의 탁월한 천재성을 가진 이에게 바둑이나 체스처럼 자신이 잘하는 분야와 컴퓨터 뇌과학 등 인접한 분야를 공부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런데 왜 우리나라에는 하사비스가 없을까.
원인은 우리나라와 미주,유럽의 인재형의 차이 때문이 아닐까. 만일 이세돌이 유럽이나 미국에서 태어났다면, 컴퓨터를 공부하고 뇌과학 분야의 박사를 받은 뒤 혁신적 기술로 창업을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하사비스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융합형 인재는 대단한 폭발력을 가진다. 여기서 놓치지 말아야 할 포인트는 하사비스의 사례가 어중간한 수준의 전문성을 결합한 융합이 아니라 최고 수준의 학문적 완성도를 갖고 달성한 융합의 결과라는 것이다. 동시다발적으로 이것저것 하는 떠벌이형 융합이 아니라, 한 분야씩 차분히 정복하는 내실 있는 융합이 성공적인 결과를 낼 수 있다는 것이다. 최근 국내에서 회자되는 ‘융합’이란 키워드는 관료들의 업적 쌓기와 정치꾼들의 언어유희에 불과한 경우가 많아서 우려가 된다. 설익은 융합은, 자칫 진정한 융합 인재의 태동을 방해하는 훼방꾼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창업에 대한 시사점도 생각해보자. 하사비스의 예에서 보았듯이, 성공한 창업은 전문성과 도전정신을 모두 가진 인재가 할 수 있는 것이다. 대학을 갓 졸업한 사람이 아무나 할 수 있는 진입장벽이 낮은 레드오션에 뛰어드는 창업이 아니라, 적어도 회사에서 수년간 근무한 경력과 기술적 경쟁력을 가진 사람이 제대로 된 성공 창업을 할 수 있다.
지금 사회에서 회자되는 청년 창업은 이런 창업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사회의 실업률이 높으니까 청년들에게 스스로 일자리를 만들라는 것으로 보인다. 경쟁력 있는 블루오션 창업이 아니라 아이디어 한 조각만 붙들고 레드오션으로 내몰리는 위험한 창업 시도가 될까봐 우려스럽다. 창업 실패 시 안전장치가 없고, 창업 성공 시에도 본인에게 확실한 보상이 없는 아마추어 창업이 난무하다.
우리나라에도 하사비스와 같은 융합형 인재와 혁신적 기술로 창업해 성공한 사례들이 많이 나타나려면, 한 번 하고 없어지는 전시행정과 보여주기식 단기 사업을 지양하고 긴 안목과 긴 호흡으로 사회적 토양을 준비해야 할 것이다.
이강 교수(한동대 전산전자공학부)
[기고] 알파고를 만든 하사비스와 이세돌의 차이점
입력 2016-03-29 14: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