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은 주머니에 있던 라이터를 만지작거렸다. 노인이 앉은 좌석 옆에는 흰색 플라스틱 통이 놓여 있었다. 전날 집 근처 주유소에서 산 휘발유 10ℓ였다. 자리에서 일어나 복도를 서성이던 노인은 마음을 다잡고 휘발유 통을 머리에 뒤집어썼다. 어리둥절한 승객들에게는 도망가라고 소리쳤다. 사람들은 악을 쓰며 뒷칸으로 뛰쳐나갔다.
지난해 6월 30일 오전 11시 30분쯤, 일본 도쿄로 향하던 신칸센 열차 1호차에서 71세 노인이 분신자살했다. 분신한 노인의 이름은 하야시자키 하루오(林崎春生). 백화점에서 35년간 일하며 연금을 납부해 온 그는 도쿄도 스기나미구 니시오기쿠보 지역에 오랫동안 살았다. 시간이 나면 지역 야구동호회에서 취미활동을 했다.
노인이 살던 아파트는 한 달 집세가 4만 엔(약 18만원)이었다. 매달 받는 연금 12만 엔(당시 약 113만원)에서 집세를 제하면 생활이 빠듯했다. 근근히 아르바이트도 했지만 나이를 먹으면서 그마저도 몇개월째 구하지 못했다. 분신을 시도하기 18일 전, 노인은 지역 구의원들에게 전화를 걸어 신세한탄을 했다. 연금이 적어 생활이 힘들다는 하소연이었다.
노인의 분신은 안전하기로 이름났던 신칸센의 역사에서 첫 사고로 기록됐다. 이날 불이 옮겨 붙은 52세 여성 승객도 숨을 거뒀다. 사고는 때마침 발간된 서적 ‘하류노인(下流老人)’과 맞물려 일본 사회에서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됐다.
저소득층 노인을 뜻하는 ‘하류노인(下流老人)’은 고령화 사회로 접어든 일본 사회의 어두운 면을 그대로 보여주는 단어다. 이 계층 노인들의 범죄율이 높아지면서 노인 범죄자를 뜻하는 ‘폭주노인(暴注勞人)’이라는 단어도 함께 유행하고 있다.
일본 법무성이 지난해 발표한 ‘2014년 범죄백서’에 따르면 형사 처벌된 범죄자 중 18.8%가 65세 이상이었다. 1995년 3.9%에 비하면 약 20년 사이 4배 증가한 수치다. 노인 비율이 당시 14.6%에서 25.9%로 늘어난 걸 고려하더라도 폭발적인 증가세다. 지난해 상반기 일본 경시청은 일본의 65세 이상 고령자의 범죄율이 1989년 이후 처음 미성년자를 앞섰다고 밝혔다.
도쿄에 위치한 커스텀프로덕츠리서치에 따르면 저축한 돈이 거의 없는 일본 노령인구의 경우 한 해 생활비에 드는 비용은 국가연금 지급액인 78만엔(약 800만원)보다 약 25% 높다. 한 달에 18만원 정도 모자란 셈이다. 후생성 통계에 따르면 노년층이 직장에 취업해 얻는 소득도 전체 수입의 20% 아래다.
절도범 비율이 73%로 가장 높은 것은 생활비 부족이 주요 원인이란 분석을 뒷받침한다. 29세 이하의 52.2%와 비교해 최소 20% 포인트 이상 차이난다. 재범 비율도 높아 형무소를 나온 지 2년 안에 다시 입소하는 비율은 24.9%로 29세 이하 연령층이 기록한 11.5%보다 두 배 이상 높았다.
독거노인이 노령인구의 40%에 달하는 것도 중요한 원인으로 꼽힌다. ‘하류노인’의 저자 후지타 다카노리는 현지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젊은 세대와 달리 직장을 중심으로 살아온 60, 70대 노인은 배우자와의 사별 등으로 혼자 사는 경우 극단적으로 생활 능력이 낮다”고 설명했다.
다카노리는 “예전에는 국가 대신 회사와 가족이 노년층의 복지를 맡았지만 지금은 무방비 상태”라며 “국가가 노년층의 삶을 책임지는 복지 체제 전환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노년층 역시 먹고사는 문제에서 국가의 도움을 받는 것을 수치로 여기지 말고 정당한 몫을 요구할 수 있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국 역시 이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국내 우리나라 독거인구 중 노인이 차지하는 비율은 지난해 27.3%로 전체 인구 중 노인 비율 13.1%의 약 2배 규모다. 65세 이상 노인 빈곤율은 49.6%로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중에서 1위다. 노인 자살률 역시 OECD 국가 중 10만명 당 55.5명으로 평균의 6배를 웃도는 1위다.
조효석 기자 prome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