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피의자 인권을 고려해 제작·보급한 ‘실리콘 수갑’이 자취를 감추고 있다. 써본 적이 없다거나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고 한다. 실리콘 수갑은 무엇이고, 왜 찾기 힘들어진 걸까.
수갑은 일선 경찰관들의 큰 고민거리다. 서울 시내 한 지구대에 근무하는 경찰관은 수갑을 채우면 ‘살살 채워 달라’는 부탁부터 ‘민원을 넣겠다’는 협박까지 들어봤다고 했다. 그렇다고 느슨하게 채울 수도 없는 노릇이다. 피의자들이 느슨한 수갑을 풀고 달아나기 때문이다.
‘수갑의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경찰은 지난해부터 ‘실리콘 수갑’을 보급하기 시작했다. 일반 철제 수갑이 피의자 손목에 직접 닿지 않도록 안쪽에 실리콘을 덧붙인 이른바 ‘인권 수갑’이다. 경찰은 지난해 실리콘 수갑 4500여개를 배포했다. 경찰은 2013년에 일선 형사과와 지구대·파출소에 팀당 1개씩 실리콘 수갑 7988개를 순차적으로 보급하겠다고 밝혔다. 경찰청 관계자는 28일 “실리콘 수갑은 피의자 인권 보호를 위해 도입됐다. 물량이 부족한 부분은 올해 추가 공급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인권위도 실리콘 수갑 도입을 지속적으로 권고해왔다. 인권위는 2011년에 “2001년 인권위가 설립되고 10년 동안 수갑 관련 진정이 832건이나 된다”고 지적한 바 있다.
실리콘 수갑은 일반 수갑보다 제작 과정이 까다롭다. 실리콘을 수갑에 덧대고 튀어나온 부분을 전부 수작업으로 뜯어내고 다듬어야 한다. 납품단가는 철제 수갑보다 1만1000원이 비싼 3만3000원이다. 지난해 1억5000만원 가까운 예산이 들었다.
그런데 정작 현장에선 실리콘 수갑을 찾기 어렵다. 수갑을 사용하는 일선 경찰들은 대부분 실리콘 수갑의 존재를 모르거나 이를 사용하지 않고 있다. 실리콘 수갑이 있냐고 묻자 “가지고 있는데 잘 안 쓴다”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 “써본 적이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실리콘 수갑과 관련된 지침도 따로 없다. 실리콘 수갑을 받은 팀에서 자의적으로 판단해 사용해야 한다.
실리콘 수갑이 ‘인권 흉내 내기’에 그치지 않으려면 적극적인 보급과 교육 등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이윤호 교수는 “팀당 실리콘 수갑 1개는 현실적으로 부족하다. 도입이 필요하다면 예산 확보 등 현실적인 부분을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판 박세환 기자 pan@kmib.co.kr
1억5천만원짜리 인권 흉내내기? 실리콘 수갑 어디갔나
입력 2016-03-29 0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