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직장인 A씨는 지난달 주거래은행에서 주택담보대출을 상담하다 씁쓸한 경험을 했다. 30년 만기 주담대를 얘기하던 중 은행 직원은 “현 상태로는 금리가 연 3%를 넘어간다”며 “신용카드를 만들고 월 35만원씩 신탁에 넣으면 금리를 연 2.9%대로 낮춰주겠다”고 했다. A씨는 28일 “신탁 금액이 많다고 하자 은행 직원이 신탁액을 줄이는 대신 3월 중순에 은행에 와서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를 하나 가입해달라고 하더라”고 혀를 내둘렀다.
지난 14일 ISA가 출시된 이후 금융당국이 ISA 관련 ‘꺾기’에 지나치게 미온적으로 대처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당국은 일임업 ISA의 경우 꺾기 규제조항이 없어 은행업 감독규정을 개정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지만, 현장을 찾아가 적극적으로 적발하려는 의지는 보이지 않고 있다.
꺾기는 금융사가 우월한 지위를 활용해 대출을 받으러 온 이들에게 돈을 빌려주는 대신 수수료 선불이나 예·적금 등 다른 금융상품 가입을 강요하는 것을 말한다. 현행 규정에 따르면 대출 받은 날부터 1개월이 되기 전 대출액의 1% 이상에 해당하는 예·적금 가입을 강요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특히 보험과 펀드 등의 경우 판매액과 관계없이 꺾기 규제가 적용된다.
금융감독원은 지난해 꺾기를 ‘5대 금융악(惡)’ 중 하나로 꼽으며 대대적인 검사에 나섰지만, 최근 은행들의 ISA가입 경쟁에서 나타난 꺾기에 대해서는 분명한 태도를 보이지 않고 있다. 금감원 관계자는 “ISA가 나온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 규정을 어떻게 적용할지 검토가 끝나지 않았다”며 “ISA와 관련해 일반적인 정보를 전달하는 것까지 꺾기로 보기엔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대출자의 입장에서 금리를 결정하는 은행직원이 적극 권유하는 ISA 가입 요청을 거절하기는 쉽지 않다. 다른 관계자는 “은행에서 가입한 ISA 금액이 크지 않아 현장상황을 좀 더 지켜봐야한다”고도 했다. 하지만 대출자의 의견과 관계없이 상품을 가입시키는 행위를 근절해 소비자권익을 강화하겠다던 애초 취지와는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금융당국은 현장 점검 대신 은행업감독규정 88조(구속행위 금지)에 명시된 꺾기 규제대상에 ISA를 포함시키는 방안을 검토중이다. 현재 꺾기 금지 대상은 예·적금, 상호부금, 금전신탁, 보험, 펀드 등이어서 특정금전신탁으로 분류되는 신탁형 ISA는 규제가 가능하지만 일임형 ISA의 경우 이를 규제할 규정이 없다.
백상진 기자 sharky@kmib.co.kr
5대 금융악이라더니...꺾기 사냥감 된 ISA, 금융당국은 모르쇠
입력 2016-03-28 17: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