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평 경북대 로스쿨 교수는 지난 10일 펴낸 저서 ‘로스쿨 교수를 위한 로스쿨’에서 이렇게 적었다. 신 교수 본인도 사회지도층 인사들로부터 청탁전화 받은 경험이 많다고 했다. 신 교수는 서울·인천·대구·경주법원에서 판사로 일했고, 한국헌법학회장과 한국교육법학회장을 지냈다. 2006년 이후부터 경북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신 교수와의 인터뷰는 지난 25일 경북 경주에 있는 자택에서 진행했다. 그는 “로스쿨은 입학에서 취업까지 ‘금수저’에게 너무나 완벽한 제도”라며 “최대 피해자는 보통 학생”이라고 말했다.
-책에 나온 변호사 아들은 로스쿨에 합격했나. 실제로 청탁이 통하나.
“해당 학생은 합격했다. 2~3년 전 일로 기억한다. 로스쿨 내부에선 모르는 사람이 없는 유명한 얘기다. 청탁하고 다닌 교수도 아직 현직에 있다. 책을 내면서 활자로 박았다. 만약 사실이 아니라면 내가 무사할 수 있을까. 그래도 학생이라 실명을 공개하진 않았다. 교수들이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 (입학이) 가능하다. 외부에서 보면 교수의 면접 비중이 높지 않아 어렵게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교수 주관이 배제되는) 정량적 요소는 실질 반영비율이 10% 미만이라고 보면 틀리지 않는다. 면접이 90% 이상이라고 본다. 결국 당락은 교수에게 달렸다. 법학적성시험(LEET)이나 어학성적 같은 수치로 확인되는 점수는 사실상 변별력이 없다.”
-직접 청탁을 받아본 적 있는가?
“전화 많이 받았다. 모르는 사람이 느닷없이 전화하지 않는다. 친한 교수나 법조인을 통해서 한 다리 건너서 들어온다. ‘누구 아들이나 딸이 경북대 로스쿨에 지원했는데 잘 좀 부탁한다’는 식이다. 정치인, 법조인, 교수 등 다양하게 들어온다. 나는 법조계나 학계에서 까칠하다고 소문이 나 있다. 그런데도 많이 들어오는 걸 보면 다른 교수들은 더 많이 받을 것이다. 청탁 전화도 하고 자기소개서에 써 놓아도 안심이 안됐는지 면접에서 누구의 아들이라고 대놓고 얘기하는 경우도 있다. 보통 ‘우리 아버지가 ○○○다’ ‘우리 할아버지가 ○○○다’ 이렇게 소개한다.”
-국립대 로스쿨인데 누구도 제지 않는가.
“로스쿨은 철저하게 교수들을 위한 제도다. 교수들만의 공고한 이익집단이 만들어졌다. 최대 피해자는 ‘흙수저’ 학생이다. 교육과정은 엉망진창이다. 수천만원 등록금 내고 졸업해도 법조인으로 자립하기 어렵게 돼 있다. 실무를 거의 배우지 못한다. 금수저들은 인맥을 통해 일류 로펌이나 변호사 사무실에서 쉽게 실무를 배운다. 보통 아이들은 기성 변호사들에게 착취를 당하는 구조다. 월급 100만원 남짓 받으며 잡일하다 실무도 못 배우고 쫓겨나길 반복하며 소모품으로 전락하기 쉽다.”
-현대판 음서제란 말에 동의하나.
“틀린 말이 아니다. 로스쿨은 입학에서 취업까지 철저하게 소위 ‘있는 집’ 자제들을 위한 제도다. 수천만원에 달하는 학비는 진입 장벽이다. 장학금 받을 정도로 가난하지 않은 보통 부모의 똑똑한 자제에게는 엄청난 부담이다. (금수저들은) 이런 똑똑한 아이들과 경쟁할 필요가 없다. 입학도 쉽고 취업은 더 쉽다. 사법시험이었다면 꿈도 못 꿀 아이들이 법조인으로 탄탄대로를 걷는다. 로스쿨 교수들 입장에서도 나쁘지 않다. 다양한 사회지도층 인사들과 자녀를 매개로 인적 네트워크가 구축된다.”
-수사를 하면 입시비리가 드러날까.
“회의적이다. 금품이 오간 정황이 포착된다면 몰라도 은밀하게 이뤄져 증거를 찾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발전가능성’ 등을 교수가 점수를 주는데 (비리를) 증명하기 사실상 불가능할 것이라고 본다. 눈앞에 보이는 사실도 자신들에게 불리하면 거짓말도 일삼으며 부인하는 사람들이 많다. 증거를 잡기 어려운데 증인도 쉽지 않을 것이다. 그 교수가 동료교수 연구실 왔다갔다하면서 (청탁)한 것 다들 알고 있다. 누구나 알고 있지만 나서서 수사기관에 나설 사람이 있을지는 모르겠다. 수사로 처벌하긴 어렵고 교육부 등이 나서 제도를 뜯어 고치는 걸 기대해 볼 수밖에 없다.”
-신 교수는 정년이 보장된 종신 교수다. 왜 이런 위험한 의혹을 제기하는가.
“더 이상 학생들이 피해보는 걸 지켜볼 수 없었다. 로스쿨 교수들이 ‘갑질’하는 것도 더 이상 보기 힘들었다. 교육과정도 마음대로 주무른다. 학생들에게 도움이 안 된다. 이런 와중에 로스쿨은 속이 썩어 들어가고 있다. 책에도 썼지만 면접 중에는 이런 일도 있었다. 면접 보는 내내 전라도를 비하하면서 노무현 전 대통령을 욕하면서 면접을 보러 온 학생에게 동의를 구하는 그런 일도 있었다. 면접 보는 내내 그랬다.
이제 로스쿨 제도 개혁에 대해 진지한 사회적 논의가 시작될 때가 됐다. 로스쿨이 건전하게 발전하는 데 마중물 역할을 했으면 하는 마음에서 (책을) 썼다. 책이 나간 뒤에 벌써부터 인신공격이 들어오고 있다. 저쪽에선 어떻게 드러나지 않게 보복하느냐에 골몰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책 내용에 대해 건전한 토론이면 얼마든 환영한다. 책 내용 중에 사실 관계가 틀렸다면 언제든 토론에 응할 용의가 있다. 책 내용이 모두 팩트니까 비겁하게 인신공격이 들어오는 것이다. 특히 책에서 소개한 일본 관련된 내용은 직접 일본을 오가며 입수한 자료를 분석했다. 국내에서는 일본 로스쿨이 망한 걸로 아는데 사실과 다르다. 우리나라가 훨씬 엉망진창이다. 건전한 토론을 기대하고 있다.”
-로스쿨 등록금은 어떤가?
“쓸데없이 왜 이렇게 교수들을 많이 뽑아서 학생들에게 부담을 지우는지 모르겠다.”
신 교수의 ‘폭로’에 김문재 경북대 로스쿨 원장은 “책을 낸 것은 알지만 그런 일(부정 입학 의혹)에 대해서는 들어보지 못했다. 사실무근”이라고 해명했다.
경주=글·사진 이도경 기자 yido@kmib.co.kr
[단독] 로스쿨 ‘불공정 입학’ 의심 상당수 적발
-교육부, 전국 25곳 전수조사… 자소서에 부모 신분 서술 금수저 자녀 노골적 알려-
교육부가 올해 초 전수조사를 통해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입시에서 ‘불공정 입학’으로 의심되는 사례를 다수 적발한 것으로 알려졌다. 로스쿨 합격자의 자기소개서 등 입학 서류에 사회지도층 자제임을 노골적으로 기재한 경우가 ‘유의미한 정도’로 확인됐다. 대학입시나 행정고시 등 주요 시험에서 부모의 지위를 공개하는 행위는 철저히 금지하고 있다. 이를 어기면 부정행위로 간주해 탈락시키는 게 일반적이다.
교육부는 로스쿨의 ‘법조 엘리트 양성 시스템’에 중대한 결함이 있는 것으로 판단하고 면접 비중 대폭 축소 등 개혁 작업에 착수할 방침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28일 “조사과정에서 유명 사립대 로스쿨 부학장조차 ‘잘못된 관행이 많았다’고 인정할 정도”라며 “대대적인 개혁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교육부는 지난해 말 법무부가 ‘사법시험 폐지 4년 유예’ 방안을 발표한 뒤 사시 존치 논란이 거세지자 지난해 12월 16일부터 올해 1월 28일까지 6주 동안 로스쿨 입학 과정을 조사했다. 당초 로스쿨 교수 자제들의 부정 입학 의혹이 일었던 일부만 집중해 들여다볼 계획이었다. 하지만 조사과정에서 예상을 뛰어넘는 의혹사례들이 확인되자, 교육부는 전국 로스쿨 25곳을 전수 조사키로 결정했다.
교육부 조사 결과, 자기소개서에 부모의 신분을 드러낸 경우가 다수 확인됐다. 성장배경을 기술하는 과정에 ‘아버지가 재판을 준비하는 것을 옆에서 지켜보며 느낀 점’ 등을 적는 식이다. 수험생 부모가 검사인지 판사인지 신분을 알 수 있는 자기소개서도 다수였다. 심지어 직업 뿐 아니라 부모 이름까지 알 수 있을 정도로 쓴 자기소개서도 있었다고 한다. 교육부 관계자는 “이런 자기소개서를 쓰고도 로스쿨에 합격했다”며 “대입이나 공무원 시험 같은 민감한 시험에선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문제는 이를 방지하는 학칙조차 없는 로스쿨이 많았다는 것”이라고 했다.
선발과정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면접 점수의 기준조차 마련되지 않은 로스쿨도 적발됐다. ‘논리적 사고와 표현력’이나 ‘발전 가능성’ 등을 구체적으로 평가해야 하는데, 아무 근거 없이 ‘00점’이라고 점수만 적어놓은 것이다.
교육부는 4·13 총선 직후인 다음 달 중순에 있을 조사결과 발표에서 법조인, 정치인, 교수 등 사회지도층 자녀의 로스쿨 진학 비율을 공개할 예정이다. 로스쿨에 진학한 사회지도층 인사의 자녀 비율이 공개되는 것은 처음이다. 국회 국정감사 등에서 로스쿨 입학 과정의 부정 의혹은 끊임없이 제기됐지만 로스쿨들의 자료 공개 거부로 구체적 수치가 드러난 적은 없다. 다만 교육부는 불공정 입학으로 의심되는 사례를 여과 없이 공개할 경우 로스쿨 폐지론이 불거질 것을 우려해 공개수위를 고민하고 있다.
신평 경북대 로스쿨 교수는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현직 로스쿨 교수가 지인인 변호사 아들을 합격시키기 위해 동료 로스쿨 교수 연구실을 찾아다닌 사례도 있다”며 “로스쿨은 입학에서 취업까지 ‘금수저’에게 너무나 완벽한 제도”라고 비판했다.
이도경 기자 yido@kmib.co.kr
성적은 요식행위… 교수 면접이 당락 좌우
-로스쿨 입시 어떻길래… 1단계서 정원 3~7배 뽑아, 2단계 논술·면접 점수 합산-
로스쿨 입학은 면접관인 교수들이 좌우한다. 교수들의 주관을 배제하고 객관적 수치로 비교하는 ‘정량적 요소’가 평가에 반영되고 있지만 사실상 요식행위에 불과하다. 교수 주관이 반영되는 ‘정성평가’에서 당락이 갈린다는 게 교육부와 로스쿨 관계자, 입시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로스쿨 입시는 겉보기엔 1, 2단계로 구분해 공정하고 체계적으로 뽑는 것처럼 보인다. 로스쿨 25곳의 입시가 제각각이지만 법학적성시험(LEET), 대학 학부성적, 어학성적, 서류심사 등으로 1단계 합격자를 가려내는 게 일반적이다. 1단계에서 정원의 3~7배를 뽑는다. 경쟁률이 3·4대 1 수준이다.
2단계에서는 논술과 면접 등을 거친다. 면접에서는 표현력, 논리성, 발전가능성, 인성 등을 평가한다. 2단계 점수와 1단계 점수를 합산하는 ‘총점 순위’ 방식이 많이 쓰인다. 입학정원 150명인 서울대 로스쿨의 심층선발 전형의 경우 1단계에서 3배수인 450명을 뽑는다. 1단계 300점 만점 중 ‘정성평가’가 120점으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2단계에선 1단계 성적과 면접·구술고사 점수(200점 만점)를 합산해 뽑는다. 면접관이 사실상 당락을 좌우하는 것이다.
입학정원 120명인 경북대도 마찬가지다. 2단계 구술면접이 70점 만점이다. 2단계에서 법학적성시험·어학·서류 점수를 보는 1단계 성적(400점 만점)을 반영하고 있어 구술면접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법학적성시험 등 다른 요소에서 점수 차이가 크지 않은 합격권 수험생들에게 면접 점수는 절대적이다.
성균관대도 비슷하다. 법학적성시험 25점, 대학학부 성적 15점, 서류심사 40점 등으로 1단계 합격자를 뽑는다. 1단계 성적(80점 만점)과 면접(20점 만점)을 합쳐 최종 합격자를 가려낸다. 교수의 주관이 개입할 수 있는 영역은 서류심사(40점 만점)와 면접(20점 만점)으로 전체 점수 비중에서 60%를 차지한다.
다른 평가 요소에 기본 점수를 높게 부여해 면접 비중을 훨씬 높일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어학성적의 만점이 100점이라면 일정 수준을 넘긴 모든 수험생에게 기본 점수로 90점 이상을 준다. 이렇게 하면 어학 점수의 실질적 반영 점수는 10점 미만이 되는 식이다.
익명을 요구한 서울의 한 사립대 로스쿨 교수는 28일 “교수 의견을 중시하는 미국식 로스쿨을 본뜬 건데 100년 이상 신뢰관계를 쌓아 온 결과물”이라면서 “역사·문화적으로 완전히 다른 미국식 제도를 무턱대고 들여와 우리 법조인 양성 체계가 엉망이 됐다”고 말했다.
이도경 기자 yid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