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시밭길 택한 이대호 빅리거 되다

입력 2016-03-28 15:29
미국프로야구 시애틀 매리너스 이대호(34)가 16일(한국시간) 미국 애리조나주 템피의 템피 디아블로 스타디움에서 열린 LA 에인절스와의 시범경기에서 1회초 첫 타석에서 좌전 안타를 때려내며 타점을 기록했다. AP뉴시스

숱한 역경을 딛고 성공하는 스토리는 언제나 사람들에게 감동을 준다. 이런 스토리가 꼭 맞는 선수가 프로야구에 있다. 바로 메이저리그 진출이라는 꿈을 이룬 시애틀 매리너스의 이대호(34)다.

이대호는 세 살 때 아버지를 사고로 잃고 어머니는 재가해 형과 함께 할머니가 사는 단칸방에 들어가서 살게 됐다. 이대호의 할머니는 부산 수영 팔도시장 한 구석에서 좌판을 깔고 채소와 된장을 팔며 어린 손자들을 돌봤다. 형제는 밤이면 팔도시장으로 가 할머니의 리어카를 끌고 집으로 돌아왔다. 겨울에는 연탄을 살 돈이 아까워 단칸방에서 서로의 체온을 의지한 채 추위를 이겨냈다. 그래도 정겨운 가족이었다. 형제는 김치 한줄기에 쌀 한줌을 넣은 김치죽 맛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고 한다.

이런 이대호에게 야구가 찾아왔다. 수영초등학교를 다니던 시절, 큰 덩치를 가졌지만 집안환경 때문에 야구부 선수들이 하는 운동을 먼발치에서만 바라봤다. 그런데 3학년 때 친구였던 추신수(34·텍사스 레인저스)가 “같이 하자”고 했다. 이에 용기를 내 이대호는 할머니에게 야구를 하고 싶다고 조심스럽게 물어봤고, 허락을 얻어냈다.

사실 이대호의 할머니는 없는 살림에 비싼 야구용품 비용을 대는 게 너무 힘들었다. 하지만 손자의 희망을 꺾을 수 없어 쌍가락지를 전당포에 맡기고 찾기를 반복하며 야구용품을 사줬다. 이런 할머니의 모습에 이대호는 이를 악물고 야구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삐뚤어질 새도 없었다. 사실 이대호의 트레이드 마크인 환한 웃음은 할머니 때문이다. 그는 “할머니가 혼자 고생하시며 우리를 키워주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삐뚤어질 수도 있는 마음을 다잡았다. 할머니가 웃는 모습을 좋아해 항상 웃고 다녔다. 그래서 지금 얼굴도 웃는 상이 된 것 같다”고 말한 바 있다. 그는 지난해 말 바쁜 일정을 잠시 제쳐두고 부산 서구 까치고개에서 자비로 연탄을 사 독거노인에게 배달했다. 2006년 이후 한 번도 빼먹지 않고 10년째 이어오고 있다. 할머니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한 것이다.

할머니의 희생을 항상 가슴에 품으며 열심히 운동했던 이대호는 야구 명문인 경남고에 진학했다. 1998년 청룡기와 봉황기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는 등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그런데 고교 2학년 때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었다. 바로 할머니의 죽음이었다. 항상 ‘우리 야구선수, 우리 야구선수’라고 불렀던 할머니를 생각하며 이대호는 야구로 최고가 되기로 결심했다.

피나는 노력으로 고교 최고의 투수로 성장한 이대호는 2001년 고향 팀 롯데 자이언츠에 입단했다. 2차 1라운드 지명에 계약금 2억1000만원을 받을 만큼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

하지만 또다시 고난이 찾아왔다. 2001년 동계 전지훈련에서 어깨를 다쳐 공의 속도가 나지 않으면서 한 번도 마운드에 서지 못한 채 타자로 전향했다. 설상가상으로 2002년 롯데 사령탑으로 선임된 백인천 감독은 이대호의 살빼기를 강요하면서 그라운드와 계단에서 쪼그려 뛰기를 시켰다. 결국 무리한 훈련 탓에 왼쪽 무릎이 파열돼 수술대에 올랐고, 선수생활에 위기를 맞았다. 복귀 후 돌아온 것은 1군과 2군을 들락거리는 그저 그런 선수라는 타이틀. 그래도 이대호는 돌아가신 할머니를 생각하며 기량을 향상시켰고 2004년부터 2년 연속 20홈런을 때려내며 리그 정상급 타자로 발돋움했다. 그리고 2010년 한국 프로야구 사상 최초로 타격 7관왕에 9경기 연속 홈런이라는 세계 신기록을 작성하며 ‘조선의 4번 타자’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래도 이대호는 안주하지 않았다. 2012년에는 메이저리그를 가기 위한 징검다리로 일본프로야구에 진출했다. 그 곳에서 지난해 일본시리즈 최우수선수(MVP)로 선정되며 일본 야구를 평정했다.

그리고 올 시즌 이대호는 또다시 도전을 선택했다. 30대 중반으로 접어들며 이제 노장 소리를 듣지만 최고의 선수가 되겠다는 할머니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가시밭길을 선택했다. 이대호는 올 시즌을 앞두고 시애틀 매리너스와 마이너리그 계약을 맺었다. 시범경기에서 눈도장을 받지 못할 경우 마이너리그라는 눈물젖은 빵을 먹게 되는 불리한 조건이었다. 특히 일본프로야구 소프트뱅크 호크스라는 안정된 퇴로가 있었지만 눈길을 돌리지 않았다. 소프트뱅크는 이대호를 잡기 위해 3년 18억엔(약 183억원)을 준비했다. 연평균 6억엔(약 61억원)이 넘는 금액이었다.

결국 이대호는 꿈을 이뤘다. 28일 시애틀은 이대호의 메이저리그 개막 25인 로스터 진입을 확정했다. 다만 이대호는 이전의 4번타자라는 익숙한 자리 대신 당분간 왼손 스페셜리스트나 대타로 빅리그에 나설 전망이다. 그래도 그는 할머니의 희생에 보답하고 약속을 지키기 위해 언제나 높은 곳을 향해 열심히 땀을 흘리고 있다.

모규엽 기자 hirt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