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주차장은… “만차라서 못 들어갑니다”
일은 지난 20일 넥센 히어로즈의 시범경기 때 벌어졌습니다. 이씨는 팔순 아버지와 아홉 살 난 딸을 태우고 구장을 찾았습니다. 주차장이 협소하다는 말을 들었던 그는 전날 고척돔 홈페이지에 안내된 번호로 전화를 걸어 장애인 차량은 주차할 수 있다는 걸 확인했습니다.
그런데 현장 상황은 달랐습니다. 주차장 안내 직원이 이씨 차량을 막았습니다. 직원은 무선으로 주차 현황을 파악하더니 ‘장애인 주차장이 만차여서 들어갈 수 없다’고 했답니다.
이씨는 비장애인 주차구역에라도 차를 대겠다고 했지만 직원은 들여보내주지 않았습니다. 승강이는 현장 매니저라는 직원이 등장해서야 정리됐습니다. 매니저는 이씨에게 “장애인 주차장이 만차라서 들어갈 수 없지만 오늘만 특별히 들여보내주겠다”면서 진입을 허가했습니다.
주차장에 들어간 이씨는 깜짝 놀랐습니다. 대부분의 장애인 주차구역이 직원들의 설명과 달리 텅텅 비어있었습니다. 심지어 출입구와 가까운 장애인 주차장에는 비장애인 차량들도 들어차 있었다고 합니다.
◇엘리베이터는… “관계자만 탈 수 있습니다”
이 때까지도 이씨는 꾹 참았습니다. 팔순 아버지와 어린 딸과 함께 모처럼 프로야구 경기를 보러 왔는데 화부터 낼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엘리베이터를 보고 화를 참을 수 없었다고 합니다. 본인은 물론 팔순 아버지도 거동이 불편해 관중석 근처까지 엘리베이터를 타고 이동하고 싶었지만 엘리베이터마다 안내 직원들이 붙어 서서 이용할 수 없다며 막아섰다고 합니다. 이들은 ‘관계자만 엘리베이터를 탈 수 있다’면서 정작 관계자가 누구인지는 설명하지 않았다는군요.
이씨 일행은 관중석까지 걸어갔습니다. 주차장에서 1층으로 한 층을 걸어 올라갔고 다시 경기장 입구인 2층까지 이어진 2층 넘는 높이의 계단을 걸어가야만 했습니다. 모두 합쳐 아파트 3.5층 정도 높이나 된다고 하네요. 이씨는 “팔순의 아버지께서 계단을 오르느라 힘에 부친 나머지 중간에 돌아가자는 말까지 했을 정도”라고 전했습니다.
◇‘수상한 관계자들’… 엘리베이터 비장애인들
이씨는 경기가 끝난 뒤 엘리베이터에 과연 누가 타는지 지켜봤습니다. 방송사의 무거운 장비라도 운반하는 용도라면 엉뚱하게 화를 내는 셈이니까요. 하지만 놀랍게도 비장애인들이 우르르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장애인 주차장에 있던 차를 타고 나갔다고 하네요.
이씨는 지난 24일 서울시와 넥센측 인터넷 게시판에 글을 올려 항의했습니다. 그는 “장애인 주차장이 비어있는데도 만차라며 장애인 차량을 진입 못하게 막은 것도 모자라 비장애인 차량들이 장애인 주차장을 이용했다. 심지어 엘리베이터의 경우 관계자만 태워 운행했다”면서 “대체 관계자란 누구인가, 팬도 시민도 아닌 누가 관계자인가”라고 적었습니다.
◇ “죄송하다”고는 하지만… 서울시는 남 탓만
넥센측은 이에 대해 “불편을 드려 죄송하다. 해당 부서에 전달해 해결될 수 있도록 조치하겠다”고 답변했습니다.
서울시측은 넥센측에 책임이 있다고 했습니다. 시측은 “넥센측에서 전체 주차장 대관을 해 일반주차가 가능하지 않은 상황”이라며 “넥센측이 휠체어나 보행기 등을 지참한 장애인에 한해 17개 주차장을 수용하고 있으며 이씨가 겪은 불편은 넥센측의 인식 부족에서 발생한 일”이라고 답변했습니다.
지난해 10월 개장한 한국 최초의 돔 야구장인 고척돔의 주차 문제는 이미 수차례 예견됐습니다. 관중석이 1만8092석인데 주차면은 고작 492개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선수단이나 구단 직원, 취재진용을 제외하면 실제 야구팬이 이용할 수 있는 규모는 300개도 채 되지 않는 셈입니다. 2443억원이나 되는 사업비를 쏟아부어 만든 국내 최초 돔구장이 이렇게 운영되고 있다니,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김상기 기자 kitti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