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국립무용단 '시간의 나이', 몽탈보의 한국 전통춤 비틀기는 재밌지만 공감을 얻지는 못했다

입력 2016-03-27 11:38
국립무용단은 그동안 전통춤에 기반을 둔 창작춤을 선보여 왔다. 주로 신무용 계열의 춤이었지만 ‘국립극장은 컨템포러리 극장’이라고 선언한 안호상 국립극장장 취임 이후 동시대 창작춤으로 한층 더 나아갔다. 한마디로 한국 창작춤의 컨템포러리화인 셈이다. 지난 2014년 핀란드 출신 테로 사리넨과 올해 프랑스 출신 조세 몽탈보를 안무가로 초청한 것은 국립무용단의 이런 변화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국립무용단과 해외 안무가의 첫 번째 협업이었던 테로 사리넨의 ‘회오리’는 기대 이상의 호평을 받았다. 사리넨은 서양 안무가로는 드물게 하체의 움직임이 단단하게 바닥을 향하면서 무거운 호흡을 사용한다. 그래서 그의 안무는 한국의 전통춤 메소드 및 한국 전통음악에 기반을 둔 ‘비빙’의 음악과 유려하게 어울어졌다. 특히 스텝의 폭을 확장하거나 손동작을 다양하게 한 것은 국립무용단 무용수들의 움직임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었다. 파도가 치고 회오리로 점점 커져가는 모습을 몸짓으로 보여준 무대는 무채색의 부드러운 의상, 역동적인 조명 등이 더해져 한국 관객을 사로잡았다. 평단 역시 일부 아쉬운 점이 있지만 한국춤의 현대화에 의미있는 성과를 남겼다고 평가했다.

사리넨의 ‘회오리’가 좋은 성적표를 냈기 때문에 국립무용단과 해외 안무가의 두 번째 협업이었던 조세 몽탈보의 ‘시간의 나이’는 훨씬 관심가 기대가 집중됐다. 한불 상호 교류의 해 ‘한국 내 프랑스의 해’ 개막작이라는 타이틀까지 더해져 한국은 물론 프랑스에도 관심이 집중됐다. 이 작품은 6월 16~24일 프랑스 파리 샤요국립극장에서도 공연될 예정이다.

전통과 현대의 만남을 주제로 한 ‘시간의 나이’는 국립무용단의 전통춤에 몽탈보 특유의 영상과 함께 현대적 감각을 더했다. 몽탈보는 전통은 오래 되고 낡은 것이며 현대는 젊고 새로운 것이 아니라 현대가 전통에서 시작돼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 했다.

작품은 크게 3부로 구성됐는데, 주제를 확실히 보여주는 것은 제목의 타이틀과 같은 1부 ‘시간의 나이’다. 현대 복장의 무용수들이 전통적인 춤을 추는 가운데 무대 뒤 스크린에는 이들이 현대 복장부터 전통 의상으로 변해가며 춤추는 것을 다시 한번 보여준다. 이들은 스크린 속에서 빠르게 앞으로 달려오거나, 반대로 뒷걸음치며 달려간다. 시간의 흐름 속에 한국 춤이 면면히 이어져 있다는 것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스크린의 왼쪽엔 궁궐과 소나무 등이 오른쪽의 현대의 아파트와 상점들이 흐리게 바탕으로 깔려 있는데, 이 역시 전통과 현재가 공존하는 서울의 모습을 하나의 단순한 미장센으로 보여준다.

1부에서 서울의 모습과 무용수들을 찍은 영상을 제외하면 2부 ‘여행의 기억’과 3부 ‘볼레로’까지 몽탈보의 친구인 다큐멘터리 작가 얀 아르튀스 베르트랑의 ‘휴먼’의 미공개 컷이 스크린에 투사된다. 앞서 국내에서도 공연됐던 그의 ‘파라다이스’(1998년)과 ‘춤추다’(2006년) 등에서 하마나 호랑이 등 맥락없이 나왔던 동물들이 이번에도 나온다. 펠리컨과 펭귄으로 한국의 학춤 등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 아닌가 추측된다. 또한 도시화되고 현대화된 한국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듯한 고층 사무빌딩, 인파로 넘치는 여름바다, 쓰레기 더미와 함께 바닷가를 달리는 자전거 여행자들 등의 모습이 나온다.

2부 ‘여행의 기억’은 속도감 있는 1부와 비교해 느리게 전개된다. 무용수들이 쓰레기 봉지를 들고 천천히 걷는 모습 등 춤보다는 현대무용 속에 자리잡은 일상적인 몸짓이 더 부각된다. 이어 3부는 서양무용 역사에서 중요한 라벨의 음악 ‘볼레로’를 한국적인 몸짓으로 다시 재해석해서 보여줬다.

이번 작품은 한국 전통춤을 재해석한다기 보다는 영상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몽탈보의 평소 스타일에 한국 전통춤의 요소들을 그대로 또는 비틀어서 올렸다고 할 수 있다. 몽탈보는 다양한 문화권의 다채로운 춤을 무대에 병렬하되 시적이면서도 유쾌한 분위기를 만들어내는데, 이번 작업은 최선의 결과가 나왔다고 보기는 어렵다. 특히 전통과 현대가 이어져 있다는 메시지는 지나치게 단순하게 표출됐다.

또한 그는 전통과 현대의 관계에 대해 단순히 한국만이 아니라 현재 인류 전체의 문제로 봤다. 예를 들어 쓰레기 더미를 헤매는 소년의 모습 등 한국과 관련이 없는 영상을 쓴 이유이지만 반면 한국 관객에게 정확히 무엇을 전달하고 싶은지 갸우뚱하게 만들었다. 그는 원래 다양한 문화권의 춤을 하나의 무대에 넣는 방식의 작업에 익숙하지만 이번에 국립무용단처럼 하나의 무용단에서 작업을 한 경우는 매우 적다. 자신의 평소 작업 스타일과 다른데다 시간이 부족해서인지 이번 작품은 깊이 있는 실험과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다. 그래도 많은 볼거리와 빠른 전개로 무용 공연으로는 드물게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분명하다. 특히 무용수들에게 북 위에 앉아서 북을 치게 만드는 것을 비롯해 한국 안무가라면 결코 상상할 수 없었던 다양한 시도들을 함으로써 한국의 전통춤의 변형과 해체를 고민하도록 만들었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