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모 it 수다 2] “사모님 울고 있나요? 우리가 찾아가겠습니다”

입력 2016-03-26 01:01 수정 2016-03-26 20:26
사진 아래 오른쪽 부터 나수경, 김윤경, 이중남, 오창림, 박세은 사모, 사진 위 왼쪽부터 임성희, 김진희, 황정순, 황지혜 사모.

“대체 뭐 하시는 분들인데 표정들이 그렇게  다들 밝으세요? 보기 좋네요” 목회자의 아내로, 사모로 평균 20년의 사역경력을 가진 ‘사모 블레싱& 리프레시(이하 리프레시)’팀을 만난 식당 주인 아주머니의 말이다.

‘생기가 넘치게 하다. 새로운 활력을 주다. 새롭게 하다’라는 의미를 가진 ‘리프레시’는 한국교회 사모는 물론 땅 끝의 선교사 사모들의 지친 몸과 마음의 회복과 치유를 돕는 초교파 연합 사모들로 구성된 공동체다.

오는 4월 인도네시아 선교사 사모들을 위해 아름다운 동행을 자처하고 나선 ‘리프레시’ 팀을 지난 22일 국민일보 사옥에서 만났다.

[나는 누구? 아! 하나님의 딸!]

“목회자들은 신학대학교, 대학원에서 준비기간을 거치며 훈련을 받지만 사모들은 훈련 없이 사역의 현장에서 몸소 부딪히며 배웁니다. 혼자 스스로 터득해야 하는 거죠”

10년 전 두란노 ‘사모예수제자학교’에서 처음 만난 이들은 상처투성이였다. 교회가 크고 작은 것과 상관없이 사모들은 목회자 사모로서의 중압감, 정체성, 성도들의 말 한마디 등 저마다의 아픔을 하나씩 가지고 있었다.

이들은 사역의 현장에서 사모로서 가슴을 찢기도 하며 눈물 흘리기도 했다. 하지만 그 아픔을 누구에게도 풀어 놓을 수조차 없었다. 눈물로 십자가 앞에 나아가는 자리가 사모의 자리이기 때문이다.

사모들은 교육과 훈련을 통해 서로의 아픔을 공감하며 몸과 마음이 회복되고 치유되는 기쁨을 누렸다. 무엇보다 목회자의 아내, 엄마, 사모의 역할보다 '하나님의 딸'이라는 존재의 의미를 찾은 것이 가장 큰 기쁨이었다.

임성희(의정부예원교회)사모는 “목회자 아내로, 사모로 살면서 힘든 순간이 많았다. 같은 길을 걸어가는 사모님들을 만나 회복과 치유가 내 안에 없었다면 힘들고 어려운 상황을 이겨 나갈 수 있는 힘이 없었을 것이다”고 말했다.

훈련 받은 사모들은 자신들이 회복된 것에 만족하지 않았다. 이들은 ‘어떻게 하면 지치고 상한 사모님들을 위로하고 기쁨을 누리게 할 수 있을까?’ 고민하던 중 2012년, 필리핀 현지 선교사 사모들의 회복이 절실하다는 소식을 듣게됐다. 

같은 비전을 꿈꿔온 사모들이 모여 ‘리프레시’ 공동체가 세워졌다.이들은 개인 사비로10개월 할부로 비행기 티켓을 끊어 필리핀으로 향했다.

[내 발이 네 발 같고 네 발이 내 발 같다!]


필리핀 마닐라 동부지역과 멀리 다바오에서까지 31명의 선교사 사모들이 모였다. 척박한 땅에서 목회자 아내로 엄마로 또한 복음 전도자로 균형을 맞춰 살아가야 하는 사모들의 표정은 굳어 있었다.

황지혜(서울성일교회) 사모는 “필리핀 선교사 사모들의 표정에서 ‘리프레시’ 팀에 대한 기대가 전혀 없어보였다. 본인들도 사모인데 사모들이 와서 프로그램을 진행 한다고 하니까 ‘너나 나나 똑같은 사모인데 어떻게 하나 지켜보자’ 라는 마음이 컸던 것 같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이 모습을 본 사모들은 ‘어떻게 하면 여기 모인 사모들과 친해질 수 있을까?’ 고민했다. 이때 사모들은 “우리의 완벽한 모습이 아닌 우리의 부족한 모습을 보여주자. 무너지자”는 마음으로 다가갔다. 사모들은 이들과 공감하기 위해 노력했다.

아픈 사람 마음은 아파본 사람이 안다고 했던가? 사모들은 내면에 싸매어 놨던 가슴 보따리 이야기를 ‘리프레시’ 사모들에게 털어 놓기 시작했다. 서로의 아픔에 함께 공감하게 된 사모들은 ‘나만의 문제가 아니었구나’라는 사실에 위로 받기 시작했다. 이렇게 형성된 유대감은 자연스럽게 개인의 회복뿐 아니라 관계의 회복으로 이어졌다.

오창림 사모는 “사모들을 위한 세미나는 많다. 그러나 리프레시 팀은 사모들이 주최가 되어 그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다가갈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강점이다”고 말했다.


‘리프레시’의 프로그램은 치유와 회복에 중점을 뒀다. ‘나는 누구인가?’ ‘인간관계’ ‘의사소통 및 갈등해결’ ‘자녀양육’ ‘부부의 성’ 등 사모들이 사역의 현장에서 겪고 있는 실제적이고 필요한 프로그램으로 진행된다.

박세은(평택제일교회)사모는 “선교지에서는 자녀들의 문제가 가장 크다. 필리핀에서 뎅기열로 첫째 아이에 이어 둘째까지 잃은 사모가 ‘리프레시’ 프로그램에 참여 했다. 이 사모는 둘째 아이의 유골을 8년 동안 집에 보관했다. 자녀를 잃은 뒤 ‘내 아이도 돌보지 못했는데 필리핀에서 다른 사람을 어떻게 돌볼 수 있는가?’라는 생각에 힘들어 했다. 그러나 프로그램을 통해 “네 탓이 아니다”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회복된 은혜가 있었다. 마지막 날 ‘아들의 유골함을 이제는 떠나보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사모의 고백에 모두가 울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프로그램의 마지막은 세족식으로 진행된다. 세족식에서는 ‘리프레시’ 팀 사모들이 직접 선교사 사모들의 발을 직접 씻겨 줬다.

김윤경(안산주안교회)사모는 “세족식에서 사모들의 발을 씻겨 줄 때 성령님께서 만지시는 게 느껴졌다. 꼭 내 발이 그 사모 발 같고 그 사모 발이 꼭 내 발처럼 느껴진다. 그런 마음 때문에 더 은혜가 있다”면서 “이 시간은 늘 눈물바다가 된다”고 말했다.

2012년 '리프레쉬' 팀 필리핀 사역 세족식 장면

‘리프레시’ 팀의 첫번째 사역은 성공적이었다.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31명의 사모들이 회복되자 분열됐던 필리핀 선교사 사회가 회복됐다. 이전에는 행사에 40여명 정도의 선교사들이 모였다면 ‘리프레시’ 프로그램이 진행된 이후 260여명이 모였다. 필리핀 선교사 사모들의 기도 모임은 지금까지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리프레시’의 가장 큰 후원자는 남편]

필리핀 사역이후 ‘리프레시’ 팀은 국내 충주, 파주, 예산에서 사역을 이어갔다.


‘리프레시’ 팀은 한 달에 한 번씩 정기모임을 갖는다. 사역지가 정해지면 일주일에 한 번씩 모여 기도하며 준비한다. 이들은 각자의 달란트와 맡겨진 직임에 따라 예배 팀, 행정 팀, 섬김 팀, 데코 팀에서 섬긴다. 손발도 척척 맞는다. 호칭도 “사모”가 아닌 “언니~”라고 부르며 자유를 누린다.

공동체 운영은 사모들의 자비량으로 운영된다. 개인의 형편도 넉넉지 못하면서 동역자 사모들을 섬기겠다는 ‘리프레시’의 따뜻한 배려다.

김진희(화평교회)사모는 “사역을 준비하는 과정을 통해 오히려 우리가 더 회복된다. 사역을 앞두고 재정적인 문제 때문에 마음이 어려웠던 적도 있다. 하지만 하나님은 놀라운 방법으로 부족한 재정을 매번 채워주셨다. 그때마다 하나님이 우리가 하는 사역을 기뻐하신다는 확신이 생긴다”고 말했다.

‘리프레시’ 팀의 가장 큰 후원자는 목회자 남편들이다. 사모들은 ‘리프레시’의 성장 뒤에는 남편 목사들의 도움이 컸다고 한 목소리로 말했다.

황정순(양문감리교회)사모는 “목회자인 남편과 사모의 관계가 힘들면 교회의 힘든 부분을 이겨 나갈 수 없다. 남편들이 아내들의 마음이 먼저 행복하고 회복돼야 본인들이 행복하다는 것을 경험하고 적극 도와준다. 가장 큰 기도 후원자다”면서 “우리 팀 목사님들은 사모 없이 못사는 '사모바보'들이다”며 밝게 웃었다.

[사모님들을 초대합니다!]

‘리프레시’ 팀은 오는 4월 25일~29일까지 인도네시아 선교사 사모들의 회복과 치유를 위해 떠난다.

인도네시아 현지 사모들을 섬기기 위한 재정은 아직 많이 부족하다. 먼 지역에서 참여하는 사모들을 위해 숙소도 임대해야 한다. 하지만 ‘리프레시’ 사모들의 얼굴에는 두려움이나 걱정을 찾아 볼 수 없다. 사모들은 대책도 없이 비행기 티켓부터 끊어 놨다.

나수경(파주다이룸교회) 사모는 “그 어느 때보다 더 많이 기도 하고 있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 사역가운데 완벽하게 일하셨다. 이번에도 하나님이 어떻게 일하실까? 기대된다. 이번 인도네시아 사역을 통해서 많은 사모들이 치유와 회복되는 시간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한국교회의 사모들을 향한 조언도 잊지 않았다.

이중남(일산복음교회)사모는 “교회가 크던 작던, 사모가 갖는 중압감과 어려움을 경험 안 해본 사람들은 없다. 목사들은 교회 안에서 역할이 정해져 있다. 하지만 사모들의 역할은 교회 상황마다 다르다. 사모가 먼저 정체성을 찾지 못하면 주변 상황에 흔들리는 자리다. 교인들의 평가에 연연해 사람들의 기쁨이 되기보다 어떤 것이 하나님이 더 기뻐하시는가를 생각해야 한다. 무엇보다 먼저 하나님의 딸로 회복돼야 한다”면서 “사모의 고민은 사모로 풀어야 한다. 친한 사모 친구를 만드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리프레시’ 팀은 눈물짓는 사모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그들의 눈물을 닦아줄 준비가 되어 있다. 올 한해 ‘리프레시’ 팀을 통해 회복될 사모들과 하나님의 일하심이 기대된다.

리프레시 후원: 새마을 9003-2097-7290-6 (오창림 사모) 



박효진 기자 imher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