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홍콩 아트바젤이 열리고 있는 컨벤션 센터에서 휠체어를 타고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여러 갤러리 부스를 누비는 노작가가 있다. 바로 올해 홍콩바젤의 K-아트 최대 뉴스메이커가 된 단색화 대표작가 박서보(85) 화백이다. 프리뷰 기간 중인 지난 23일 블룸앤포 갤러리에서 만난 그의 표정이 아이처럼 환하다. 단색화가들의 작품은 미국 블룸앤포를 비롯한 도미니크레비, 프랑스 페로탱 등 글로벌 기반의 갤러리에 출품됐다. 전속 계약을 맺은 페로탱의 홍콩 갤러리에서도 대규모 신작 전시가 홍콩 바젤 기간에 맞춰 지난 21일 개막됐다.
전시 얘기를 꺼냈더니 “내 그림이 생각에 잠기게 하고 평화로운 기분을 준다며 그 앞에 오래 시간을 보내고 싶다며 좋아하더라”고 말했다. 새롭게 시도한 하늘색 톤의 ‘묘법’ 시리즈를 특히 언급했다. “그건 공기 색을 표현한 거지.공기에도 색이 있다고 생각하는 건 나 같은 미친 사람이나 하는 일이지. 그 그림 앞에 서면 호흡이 하고 싶어지지.”
최근 1970년대 제작한 ‘묘법’ 한 점이 위작 인 게 뒤늦게 확인돼 모 옥션의 홍콩 경매 출품 전에 철회된 바 있다. 그는 “내가 보고 (위작임을) 잡아냈다”면서 “내건 가짜를 만들기 힘들다. 캔버스 뒷면에다 사인을 아주 철저히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제작년월일을 비롯해 글씨를 많이 쓰고, 죽은 날짜를 훗날 기입할 수 있는 공간까지 따로 마련해둔다는 설명이다. “그림만 보고 처음엔 나도 내건 줄 알았는데 사인 글씨체가 다르더라고.”
인터뷰 중에 일본인 노신사가 반갑게 다가왔다. 아주 공손하게 허리 굽혀 악수를 청하는 그는 일본 동경화랑의 베이징도쿄프로젝트 담당 타바타 유키히토(65)씨이다. 부친이자 동경화랑 창업자인 야마모토 타카시는 1975년 단색화의 시발이 된 ‘5가지 흰색전’을 기획했다. 당시 40대였던 박서보, 권영우, 이동엽, 허황, 서승엽이 참가했다. 타바타씨는 “그 때 25세로, 화랑에 들어온 첫 해에 그 전시가 열렸다. 이렇게 단색화가 크게 뜰 줄은 몰랐다. 10년 전 세상을 떠난 아버지가 하늘에서 크게 기뻐하실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문화계가 서양 추종으로 흐를 때 아시아에도 이런 그림이 있구나 생각이 들 정도로 신선했다”고 회상했다. 홍콩=글·사진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
홍콩 바젤 박서보 "그림 뒷면 사인에 사후 날짜 적을 공간까지..가짜 못만들어"
입력 2016-03-25 17: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