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엇갈린 운명’ 오리온 김동욱과 KCC 신명호

입력 2016-03-25 15:42
고양 오리온 김동욱. KBL제공
전주 KCC 신명호. KBL제공
전주 KCC와 고양 오리온의 프로농구 챔피언결정전에 앞서 많은 전문가들은 양 팀의 우승 조건으로 각각 조 잭슨과 안드레 에밋에 대한 수비를 꼽았다.

KCC는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었다. ‘수비의 핵’ 신명호(33) 카드가 있었기 때문이다. 오리온은 걱정이 앞섰다. 추일승 감독조차 미디어데이 때 “에밋은 자기 득점을 할 선수”라며 “다른 선수 막는데 치중하겠다”고 했을 정도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연 챔피언결정전의 양상은 달랐다. 오리온은 에밋을 묶는데 성공했다. 정규리그 경기당 25.7점, 4강 플레이오프 평균 33.8점을 기록한 에밋을 평균 22점으로 끊었다. 무엇보다 에밋으로부터 파생되는 공격을 차단했다는 데 더 큰 의미가 있었다.

오리온의 ‘에밋 봉쇄작전’ 핵심은 김동욱(35)이었다. 김동욱은 팀에서 문태종(41) 다음으로 나이가 많다. 2012년 오리온에 합류한 뒤 무릎과 발목 부상으로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다 최근에서야 다시 정상궤도에 올랐다. 특히 공수밸런스가 뛰어나다.

사실 김동욱은 1990년대 후반 정확한 슈팅과 돌파, 영리함을 두루 갖춰 일찌감치 천재로 주목받았으나 항상 그의 뒤에는 ‘게으른 천재’란 꼬리표가 따라 붙었다. 수비에 힘을 쏟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그러나 그럴수록 김동욱은 버텼다. 공격보다 수비에 더 신경을 썼고 팀플레이에 집중했다. 노력은 그를 배신하지 않았다.

챔프전에서 김동욱은 에밋의 습관을 이용했다. 그의 농구센스가 한 몫 했다. 김동욱은 “에밋에게 2점을 주더라도 3점을 안 주는 수비를 한다”며 “주로 에밋이 탑에서 공격을 하는데 드리블을 많이 치도록 한다. 한 쪽을 열어서 방향을 유도한다”고 했다. 김동욱은 일부러 중앙을 열어줬다. ‘함정 수비’였다. 에밋이 김동욱을 제치더라도 그 뒤엔 애런 헤인즈와 허일영 등이 기다리고 있었다. 공격에서도 김동욱은 경기당 평균 3점슛 2.7개를 포함해 10점을 성공시키며 알토란같은 활약을 보였다. 리바운드와 어시스트에서도 각각 3.3개, 4.0개로 포워드 농구의 한 축을 담당했다.

반면 KCC는 신명호 딜레마에 빠졌다. 신명호의 수비는 챔피언결정전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됐다. 그러나 잭슨 봉쇄에 대한 가능성은 발견했지만 가장 큰 딜레마는 역시 공격. 오픈 찬스에서도 3점슛이 거의 터지지 않았다. KCC가 2번 자리에 신명호를 쓰면 수비에서 미스매치가 생긴다. 문태종, 김동욱 등 상대 장신 슈터들의 3점슛을 막을 방법이 없다. 곳곳에서 터지는 오리온의 외곽포에 KCC는 맥없이 2·3차전을 내줬다.

황인호 기자 inhovato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