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표 교수 연극이야기]34.죽음과 상실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

입력 2016-03-25 08:47
연출가 박근형의 신작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가 남산예술센터(3.10~27)에 공연되고 있다. 이번 작품이 지난해 문화예술위원회 창작산실 지원 작품 선정 논란에 한 복판에 서 ‘창작검열논란’으로 점화된 작품인 만큼 매진사례를 할 정도로 관심은 증폭됐다. 이러한 폭발적인 관객반응은 이번 작품이 소란했던 이유와 ‘지원 작품 선정에서 왜 배제 됐는지’에 대한 궁금증이 컸던 만큼 연극으로 형상화된 작품을 직접 확인해 보자는 관객들 심리도 크게 작용한 것 같다.



창작산실에서는 배제된 이 작품이 2016년도 남산예술센터 공동제작 공모에 선정돼 올해 시즌프로그램으로 극단 <골목길>와 공동으로 제작하는 형식으로 무대에 오르고 있다. 연출가도 밝히고 있지만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는 창작검열 논란이 증폭되기 전부터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20주년 기념공연(2013.10.17~19)으로 해당 대학 예술극장에서 공연된 바 있다. 그러나 이번 남산예술센터 공연이 연출가와 극단의 이름표를 달고 막을 올린 초연(初演)이다.



부재(不在)와 상실의 실종



연출의 작업방식 특성상 그가 설계한 서사의 뼈대는 현실 한 복판으로 튀어나와 건축된 연극 구조물이다. 박근형 연출이 설계한 연극적 건축 구조의 틈을 배우들의 날것과 즉흥적 표현으로 강렬한 화학 반응을 들어내며 이야기의 살점들을 부착한다. 이러한 작업과정은 이야기 텍스트에서 이미지 텍스트로 전환되면서 배우들의 수행적 표현성은 장면에서 강렬한 생명력을 들어낸다. 배우들의 특유한 표현 방식으로 박근형표 희곡에 생명을 불어넣으면서 뒤틀린 가족이야기, 훼손된 역사성, 남루한 삶, 인간 내면의 잔혹성, 인간과 삶의 부조리, 삼류인생 등을 현실의 한복판으로 꺼내들고 날카로운 시대정신을 담아왔다.



극적인 함축성은 배우들의 즉흥적 날 것들로 표현의 무기로 완성시켜 거침없는 전진을 해 왔다. 화려함 보다는 버틸 만큼만 들고 살아가는 남루한 무대의 삶 속에서 살아가는 배우들도 비만이 된 연기를 덜어내고 날것으로 무장해 그 사이로 올라오는 배우진실의 본질을 바라본다. 내면의 막장까지 달리는 그의 연극은 그 밑바닥에서 자라 올라오는 인간과 삶의 추악함, 뒤틀려있는 현실의 구조물을 올려놓고 동시대의 현상과 현실을 거침없이 투영한다. 대한민국 현실 한복판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강열한 파열음으로 비약하고 조롱하면서 날렵한 풍자로 소리의 볼륨을 높여 왔다.



한국사회를 전투적 시선으로 바라보는 박근형이 무대로 올려놓는 삶에는 인간의 상실, 내면의 부재, 책임의 실종이라는 세 가지의 부재 현상을 담아낸다. 박근형에게 역사는 과거로 종결된 시대가 아니라 환기되어 치유되어야 할 시간이고 대상이다. 연극으로 환기는 현실의 투영이고 그는 시대정신으로 맞선다. 대표작인 ‘청춘예찬’<1999>은 시대의 삶과 인간의 부재, ‘경숙이, 경숙이 아버지’<2006>는 함몰된 전쟁의 역사와 아버지의 부재, ‘만주전선’<2015> 에서는 친일(親日)과 진실 된 역사의 부재, ‘엄 사장은 살아있다’<2015>를 통해서는 대한민국 정치의 실종을 전면적으로 내세우면서 구부러지거나, 비틀어지거나, 뒤틀려 있는 모순과 부조리를 전면에 내세우면서 동 시대에 실종된 이면을 들어올린다.



신작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는 네 가지의 에피소드(탈영병, 초계함, 이라크전쟁, 가미카제 특공대)를 부착하고 1945년부터 2015년 대한민국을 겨냥한다. 환기되고 치유되어야 할 현재의 기억이다. 네 가지 이야기는 죽음을 관통한다. 이들의 죽음은 모호한 채 죽음으로 내몬 가해자는 여전히 실종된 상태다. 연출은 서로 다른 시·공간에서 죽어간 군인들을 누가 책임질 것 인지에 대해 강한 시선으로 신호를 보내고 있다. 1945년 조선인으로서 일본 가미카제 특공대가 일본의 군국주의를 상징하는 ‘욱일승천기’를 들고 천왕을 위해 목숨을 바쳤던 극중 인물 오카와 마사키(김동원 분), 그리고 2004년 이라크 무역회사에서 주재원으로 근무하던 김선일씨가 현지 테러무장단체에게 피랍되어 “살고 싶습니다”라는 마지막 절규를 대한민국 사회로 구원의 신호를 보냈지만 끝내 피살된 사건을 연상케 하는 2004년 ‘이라크 팔루자’를 배경으로 극중 인물 서동철(이동갑 분)의 이야기다.



세 번째 에피소드는 2010년도 백령도 서해상(초계함)을 배경으로 하는 이야기다. 네 번째는 2015년을 배경으로 한국사회의 군대와 탈영병(이원재 분)이 죽음으로 교차되는 이야기다.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에 탑재 되어 있는 것은 비켜간 전쟁의 역사가 아니라 현재에도 여전히 진행되고 있는 전쟁의 한 복판에서 죽음으로 내몰린 기억들을 환기시킨다. 연출이 바라보는 현실은 제대 한 달을 남겨두고 세상으로 나가도 달라질 것이 없는 삶이고, 구원은 희망이 아닌 절망으로 돌아오는 현실세계다. 네 개의 에피소드를 들고 공격적인 시선으로 장면을 편집하면서 전쟁과 군인의 죽음 속에 내제되어 있는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실종된 함의를 꺼내들고 동일화된 장면으로 연결한다.



모든 군인의 죽음 그리고 상실



무대는 전쟁의 역사성에서 죽음의 잔해가 된 삶의 소멸에서 현재로 점화시키고 올려진다. 에피소드로 장면을 구성하고 배치하면서 전쟁이라는 역사적 시간성에서 내몰린 죽음은 기억으로부터 소멸된 역사가 아니라 여전히 진행되고 있는 현재의 시간이다. 연출이 14개의 에피소드로 장면을 분할해 무대로 올려놓은 시간여행은 기억의 소멸에서 현재로 환기되는 죽음들로 묶여진다.(탈영병의 죽음, 조선인 가미카제 특공대 죽음, 이라크 무장단체 에 의한 극중 인물 서동철의 죽음, 서해상 해군의 죽음)이다. 무대는 소멸에서 죽음 역사 혹은, 현재도 진행되는 전쟁의 시간이다. 무대는 네 개 에피소드를 다변적으로 활용될 수 있도록 객석 앞 무대 앞까지 T모양으로 돌출시킨다. 송창식의 ‘병사의 향수’로 선곡된 무대음악은 ‘태극기 새겨 넣은 가슴 한쪽에 달고’ 전쟁터로 달려간 병사가 기억하는 전쟁의 기억에서 2015년의 대한민국으로 되돌린다.



장면1 <탈영병>의 에피소드 전개는 <2015년 9월 대한민국 경남, 철기부대 검문소>를 장면으로 하고 있다. 탈영병(홍명환)은 자동소총과 실탄 백사십 발과 중대장의 신용카드를 들고 탈영해 무대는 어수선해진다. 가발까지 군대로 반입한 탈영병을 중대장 동생으로 관계를 연결한다. 장면 마지막에 육군병장 이원재(탈영병의 극중 인물은 배우의 실명으로 처리된다)는 실탄을 장전하고 장교를 향해 총을 겨누며 ‘탈영’을 외친다. 장면1과 장면4(탈영병, 아버지와의 만남)는 연결되면서 탈영의 속살들이 들추어진다. 아파트 경비 일을 하는 아버지한테 찾아온 탈영병 이원재는 “어차피 내가 제대해도 세상에 달라지는 건 아무 것도 없으니까요. 비전도 없고, 직업도 없이 비실비실 거리며 사느니 차라리 지금 총이라도 있을 때 세상으로 바로가자! 아주 잠깐이라도 내 식대로 살자는 거죠”라고 말한다. 제대 한 달 앞두고 탈영한 이원재가 바라보는 현실의 시선은 달라질게 없는 남루한 삶이며, 막장까지 내몰린 비관적인 삶의 태도를 들어낸다.



장면8(탈영병)에서 탈영병이 찾아간 곳은 엄마가 다니던 교회다. 연출은 종교의 구원성을 회의적인 시각으로 바라본다. 구원은 죽음으로 파편화되고 막장까지 내몰리는 인생과 현실세계를 구원 할 수 없는 절망의 시선으로 조롱된다. 믿음을 통한 구원의 희망성도 반복되지만 살만하지 못한 남루한 현실세계에서 구원은, 죽음의 절망으로 반복되는 아이러니한 세계다. 연출은 무대 뒤편으로 종교적 상징성을 그로테스크하게 전면적으로 배치하면서 구원의 희망을 품고 살아가는 인간의 욕망의 내면을 대비시킨다.



에피소드2 (카미카제 송별식)은 조선인으로 카미카제 특공대원이 된 극중 인물 오카와 마사키(김동원 분)의 이야기다. 마사키가 바라보는 조국은 “아버지가 현해탄을 건너 조선 땅에서 왔지만 조선 사람은 내 아버지로 끝이야”라고 할 정도로 카미카제가 돼 더 일본인답게 살아가려는 조선인 마사키를 투영한다. 장면6에서는 카미카제 특공대원으로 훈련을 받는 또 다른 조선인 미우라와 마사키를 배치시키면서 일본인 카미카제 특공대원들과 뒤섞인 훈련에서도 1등을 해 진정한 일본인이 되고 싶었던 이들의 욕망을 들어낸다. 장면12 <1945년 5월 일본, 가고시마 기지>는 카미카제로 상공을 날기 전 이들 다짐은 일본조국을 위해 죽음을 바치고 야스쿠니 신사에 묻히는 것이다. 연출은 카미카제들의 죽음의 장면을 무대 한편에서 뿌려지는 흰 가루를 날리면서 상징적으로 압축한다.



장면7은 2004년도에 이라크 무역회사에서 주재원으로 근무하던 김선일씨가 “살고 싶습니다”라는 마지막 절규를 알자라이 방송을 통해 전파를 타면서도 끝내 이라크 무장테러 단체에 납치당해 피살된 사건을 연상케 한다. 이 에피소드는 2004년 ‘이라크 팔루자’를 배경으로 하는 극중 인물 서동철(이동갑 분)의 얘기다. 서동철은 이라크 팔루자의 미군부대에서 식품을 납품하는 민간인이다. 무장단체들은 미군들을 위한 식품납품도 미군을 위해서라는 당위성을 내세운다. 무장단체들은 서동철의 신상정보를 확인하면서 대한민국은 미국의 식민지로 조롱된다. 장면11은 다시 이라크 무장단체 은신처로 좁혀진다. 동철의 마지막 절규에서 튀어나는 말은 “한국군 2차 파병 철회와 살려달라”는 절규다. 무장단체는 미국과 한국을 동일화된 시선으로 바라본다. 이들은 미국폭격으로 인한 죽음의 가족사를 꺼내들며 전쟁으로 인한 죽음의 잔혹성을 치켜세운다. 서동철의 죽음은 미국과 한 편에 서고 있는 벌(응징)이라고 말하면서 대한민국 국적의 시민의 죽음과 원인을 한국사회로 겨냥한다.



장면(5·10)은 백령도 해상(초계함)에서의 사건을 그려내는 기억의 소환이다. 장면5는 당시 사건을 기억으로부터 재구성된다. 장면과 대사 배치를 극중 인물인 해군들로 동일하게 배치한다. 장면5에서 ‘기억의 진실성’을 환기 시키고 있다면 장면10에서 기억은, 소멸된다. “그날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습니다. 그냥 깜깜합니다” 마지막에는 이들의 기억을 소각하고 소각된 기억은 사각의 검은 박사로 얼굴을 덥고 죽음으로 묘사된다. 극중 인물 ‘안 이병’은 기억을 되돌리려는 심문관에게 달려들면서 “아무런 기억이 안 난다구요.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듣겠어? 당신은 뭐 했는데? 그날 당신은 뭐 했는데?” 라고 말을 한다. 연출은 당일 사건의 진실성을 수면 밑으로 가라앉힌다.



장면13 (초계함, 장병들 훈장을 받다) 이르러 무대는 서해상에서의 살아남은 해군과 전사자 46명에게 대전 국립현충원에서 화랑 무공훈장을 수여하는 장면으로 전개된다. 생존자 안 이병 기억의 소멸은 이 장면에서 강렬한 기억으로 환기된다. “전 어디에 있었는지 다 기억납니다. 그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다 보았습니다. 그날 나는 죽은 자들의 곁에서 다 보았습니다.” 연출은 이 장면에서 수면 밑으로 가라앉힌 당일 사건의 진실성을 해수(海水)위로 올린다. 안 이병 대사 말미에 잠수부가 등장한다. 그날의 진실을 목격한 시선을 바다 밑으로 투영하며, 잠수부는 기억을 들추어내는 안 이병을 뒤에서 감싸 안는다.



마지막 장면은 탈영병 이원재의 죽음의 공간이다. 탈영병이 거리의 아줌마(고수희 분)와의 대화를 통해 탈영한 동기는 좁혀진다. 이원재는 “어차피 살아가는 게 전쟁이고, 전쟁의 현실에서는 모두가 군인이 될 수밖에 없다.”고 말을 한다. 누군가를 죽이거나 누군가 죽어야 하는 전쟁의 세계와 막장의 삶으로 내몰린 현실에서 그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죽음뿐이다.

연출은 탈영병 이원재의 죽음 장면을 마지막으로 배치하고 같은 헌병에게 탈영병의 최후를 죽음으로 처리되는 것으로 네 개의 장면을 하나로 묶고 정리를 시도한다.



그러나 이번작품에서의 표현의 농도는 그동안 연출이 여러 작품을 통해 보여 왔던 날카로운 시선들이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의 소재의 묵직함만큼, 작품을 관통하는 군인과 죽음에 대한 당위성은 모호함으로 실종된 채 정리 된 것 같다. 마지막 결말은 연출이 네 개의 에피소드를 묶어 전쟁과 군인, 삶과 현실의 부재, 인간내면과 진실의 상실성 등을 연결하면서 이들이 태어난 한국사회의 실종현상을 들어낸 것이라면 그동안 현실의 한복판에서 연극을 들고 시대정신으로 무장해 조롱과 풍자로 저항해온 날카로운 시선들이 이번 작품에서는 현실을 품고 베어내는 온도와 소리의 칼날이 모호한 볼륨으로 낮추면서 실종 된 것 같다.

그러나 여전히 연출이 거추장스러움을 제거하고 네 개의 에피소드만을 들고 무대를 그리고 채워나가는 노련함은 박근형 연출다움과 그 삶에서 생명력을 부착시키는 극단 골목길 배우들이 연기의 날 것이 화학반응을 일으키며 무대로 돌진하는 힘으로 공간을 채우고 있다.



남산예술센터는 박근형의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 를 시작으로 ‘그녀를 말해요’(이경성 작 구성연출·4.11~17일), ‘불행’(김민정 연출·4.7~10일), ‘햇빛샤워’(장우재 작·연출·5.17~6.5일), ‘곰의 아내’(고연옥 작·고선웅 연출·7.1~17일), ‘나는야 연기왕’(그린피그 공동창작 윤한솔 연출·10,26~11.6일), ‘파란나라’(김수정 작·연출·11,16~27일) 등이 2016년도 시즌프로그램으로 공연된다.





대경대 연극영화과 교수(연극/공연예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