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아인 인터뷰 <1>] '육룡이 나르샤' 이방원으로 훨훨 난 유아인..."이방원과 함께 성장한 1년이었어요"

입력 2016-03-23 21:33
배우 유아인은 SBS ‘육룡이 나르샤’에서 새로운 이방원을 창조해냈다. 강하기만 한 조선 3대 왕 태종이 아니라 꿈꾸고 방황하고 고뇌하는 이방원이었다. 유아인이 연기해 낸 이방원은 시청자들을 열광케 했다. 최근 종영까지 숨 가쁘게 달려온 유아인이 23일 서울 용산구 디뮤지엄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소회를 밝혔다.

유아인은 50부작 대장정을 마치고 나니 직장인이 직장 잃은 것처럼 허전하다고 했다. 그는 “촬영할 때는 빨리 집에 가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 연기했다. (웃음) 힘겹게 해 왔는데…시원함이 98%, 섭섭함이 2%”라고 했다.

최선을 다했지만 아쉬움과 서운함이 남을 수밖에 없다. 오랜 시간 이방원으로 살았기에 더욱 그랬다. “어제는 아무렇지도 않고 홀가분하고 시원하기만 했었는데, 오늘 뭔가 뻥 뚫린 기분이 들었어요. 직장 생활하다 그만두면 이런 기분이에요? 고작 사실 직장생활 하시는 분들에 비하면 1년도 채 안 되는 시간을 한 거지만요. 그 동안 해왔던 작품들을, 배우로서 해 왔던 호흡을 따져보면 제일 길게 했던 작품이라 허전함이 크게 느껴지나 봐요.”

유아인의 이방원은 기존 사극에서 그려졌던 이방원과 달랐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10대의 모습과 신념을 고집하는 20대의 모습을 유아인은 설득력 있게 표현해냈다. 그래서 스승과 동생을 죽인 이방원을 ‘미화했다’거나 ‘역사적 기록과 다르다’는 식의 비판도 나왔다.

유아인도 이런 반응을 예상하고 조심스러웠다고 한다. 하지만 그의 생각은 분명했다.

“시청자가 갖고 계신 이방원의 이미지가 고정적인 게 있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해석이 하나만 정답이라고 할 수는 없으니까요. 저는 정치인으로서 이방원이라는 인물의 내면을 이 작품에서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저는 이방원이라는 인물을 해석하는 데 있어서 ‘정답’을 보여주려고 한 게 아니었어요. 다른 면의 이방원을, 제가 이해한대로 보여드리려고 했어요.”

그렇다면 유아인이 생각하는 이방원은 어떤 인물일까. 그는 단정적으로 말할 수 없다고 한다. 누구에게나 다양한 면이 있고, 인간이라면 누구도 단순한 언어로 설명할 수 없다.

“대체 선은 뭐고 악은 뭘까요. ‘육룡이 나르샤’를 하면서 힘의 투쟁 앞에서, 정치 권력 앞에서 선이란 뭐고 악이란 뭔가를 찾아볼 수 있는 시간이지 않을까 했어요. 아직도 그게 혼란스러워요. 이 인물이 선하다, 나쁘다, 아름답다, 추악하다 이렇게 평가할 수 있는 건 아닌 것 같아요.”

이방원은 이성계의 아들이며 세종의 아버지다. 정도전이 설계했던 대로 조선의 기틀을 잡았고 세종이 태평성대를 이룰 수 있도록 왕권을 강화했다.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세종의 태평성대를 함께 했던 황희나 맹사성 같은 정승들도 모두 태종 때 등용된 인물들이다. 태종이 그런 인물이 될 수 있었던 과정을, 이 드라마는 보여줬다.

“권력의 중심에 설 수밖에 없었던 운명을 가진 이방원이었어요. 그가 고민하고 방황하면서 수많은 선택을 했죠. 그 선택이 꼭 옳지만은 않았겠지만,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모습들을 제가 보여주려고 했어요. 왜 그랬는지…. 인간적으로 어떤 갈림길에 놓여 있었고, 어떤 혼란을 겪으며 달라졌는지를요.”

유아인이 그린 이방원은 연약한 모습도 많이 보여졌다. 그저 강하기만 한 냉혈 군주는 아니었다. 그래서 미화했다는 비판도 나오는 것이겠지만 젊은 이방원은 그랬을 것이라는 게 유아인의 해석이었다.

“저는 이방원의 인간으로서의 고뇌와 좌절을 보여주려고 했어요. 아무래도 청년기 이방원 많이 포커싱해서 그랬던 게 있었고요. 많이 혼란스러운 청춘의 시기를 우리 드라마가 포착해줬으니까요. 롤 모델을 만나고, 신념을 갖게 되고, 신념이 흔들리고, 롤 모델인 정도전에게 의구심을 갖게 되고, 결국 다른 생각 품게 되고, 하지만 둘이 전혀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우치게 되죠. 이 긴 과정에서 이 사람의 연약함을 보여주려고 했어요.”

그러면서 유아인의 연기도 성장했다. 스스로에게 긴 흐름 안에서 변화를 제대로 연기해내라는 숙제를 줬다고 한다. 나이의 변화를 연기로 표현해내야겠다는 배우로서의 욕심이었다. 그리고 스스로는 어느 정도 만족하며 연기를 했다고 한다.

“목소리, 톤, 몸의 움직임, 표정…나이 대에 따라 변화를 주려고 애썼어요. 얼마나 보여졌는지는 모르겠어요.”

그는 “나이가 드는 모습을 반드시 성장과 연결시킬 수는 없다”고 했다. 이방원은 순수함을 잃고 잔혹해지고 고독해졌다. 두 스승(정몽주, 정도전)과 동생(방석)을 살해할 때는 혼란스럽고 연약한 모습을 담아내려고 했다. 선죽교에서 정몽주가 쓰러질 때 유아인은 눈물을 흘렸고, 정도전이 죽은 뒤에는 숨죽여 떨었다.

“방원이 얼마나 힘들었을까를 생각하다가 대본엔 없었지만 눈물을 흘렸어요. 정도전을 죽이고 난 뒤에는 슬픔을 삼키는 모습을 표현하려고 했고요.”



[사진=UAA코리아 제공]



<인터뷰 계속…>

문수정 기자 thursda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