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사를 읽는다

입력 2016-03-23 21:29
처음 읽는 동아시아사 1/신주백 외/휴머니스트

함께 읽는 동아시아 근현대사/유용태 외/창비



보통의 한국인들에게 아시아라는 공간은 한·중·일 세 나라였다. 동남아시아나 중앙아시아는 시야에 없었다. 설령 그 나라들을 안다고 하더라도 그들과 한국을 하나의 맥락이나 관계 속에서 파악하긴 어려웠다. 한국으로 동남아 노동자과 신부들이 쏟아져 들어오고 동남아 여행이 그렇게 흔해졌어도 한국인들은 동아시아를 읽지 않았다. 이런 사정은 일본이나 중국도 마찬가지다.

서울대 유용태 교수는 “오늘날 동아시아의 자국중심주의와 이웃 멸시 현상은 다른 어느 지역보다 심각하다”고 비판하면서, 그 원인으로 “이 지역에서 세계 어느 지역보다 먼저 국가가 발달했고 그로 인해 강고한 자국중심주의가 형성됐다”고 분석했다.

‘처음 읽는 동아시아사’는 동아시아 지역사를 고대로부터 현대까지 망라한 국내 첫 저술이다. 북쪽의 몽골부터 남쪽의 인도네시아와 동티모르까지, 동쪽으로는 일본의 최북단 홋카이도부터 서쪽의 미얀마와 중국 서부까지를 동아시아로 정의하고 여기에 속한 17개국의 역사를 포괄해 다룬다.

이 책은 19세기 초를 경계로 두 권으로 나뉘는데, 1권이 이번에 먼저 나왔고 2권은 오는 10월 출간 예정이다. 역사교과서를 가르치는 고등학교 교사와 대학 교수 6명이 7년간 매달려 집필했다. 동아시아 전체를 조망하면서 국가의 성립, 인구 이동, 유교와 불교, 세계 제국 몽골, 전쟁과 교역의 시대, 경제·기술 교류 등 주제별로 서술했다.

시야를 동아시아로 확장하면 우리 역사에서 숨겨진 장면이 드러나기도 한다. 예컨대, 7세기 나당전쟁에서 약소국 신라는 어떻게 세계최강국 당나라를 물리칠 수 있었을까? 책은 당시 당과 동북아시아의 관계를 보여주면서 이 질문에 새로운 대답을 제시한다. 당은 당시 동북아시아 일대를 장악하고 있었는데, 당의 군사력이 한반도에 집중된 사이 티베트 고원에서 여러 부족들이 반란을 일으켰고, 한반도의 군대를 바로 이동시키지 못한 당은 오아시스 도시들을 토번(오늘날의 티베트)에 내어줄 수밖에 없었다. 당의 대군이 뒤늦게 티베트 지역으로 향한 사이 이번에는 신라가 옛 백제 지역에 설치된 웅진도독부를 공격하여 당을 물리칠 수 있었다.

지난 주 출간된 ‘함께 읽는 동아시아 근현대사’는 17세기부터 2010년대까지 동아시아사를 다룬다. 지난 2011년 두 권으로 출간된 책을 한 권으로 묶고 내용을 보완한 개정판이다.

유용태(서울대 역사교육과), 박진우(숙명여대 일본학과), 박태균(서울대 국제대학원) 등 대학 교수 3명이 집필을 맡았다. 기존 국가 중심 서술 방식으로는 동아시아를 휩쓴 근대화와 서구화의 전모를 파악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초판 출간 당시 일본이나 중국에서도 보기 어려운 동아시아 근현대사 책을 국내 학자들이 완성했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다.

‘함께 읽는 동아시아 근현대사’는 한·중·일을 중심으로 하되 베트남, 타이완, 필리핀, 몽골 등을 포함시켰다. 제국주의, 근대화, 국민국가 건설, 냉전, 산업화, 민주화 등이 이 지역에서 어떻게 작용했고, 서로 어떤 영향을 주고받았는지 살핀다. 특히 우리 근현대사와 밀접한 관련을 가진 베트남사가 충실히 다뤄진다.

이 책에서는 한반도의 분단을 중국과 타이완, 북베트남과 남베트남으로 이어지는 동아시아 분단의 출발점이라는 측면에서 조명한다. 또 한국전쟁을 1930년대 일본제국에 의해 전쟁이 시작된 이래 1970년대 말까지 50여 년간 진행된 ‘동아시아의 전쟁들’이라는 맥락에서 바라본다.

1990년대 이래 국가사를 넘어서는 동아시아 지역사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지만 실제로 그 요구를 충족시키는 국내 저술은 거의 없었다는 점에서 ‘처음 읽는 동아시아사’와 ‘함께 읽는 동아시아 근현대사’는 값진 책이라고 하겠다. 출판사 너머북스가 올 여름 선보일 예정인 ‘새로운 동아시아 교과서’도 기대작이다. 성균관대 동아시아대학원 석좌교수인 미야지마 히로시 교수가 청소년들까지 읽을 수 있도록 풀어 쓴 동아시아 통사다.

동아시아 관련 학술도서를 꾸준히 출간하고 있는 이재민 너머북스 대표는 “동아시아를 탐구하고자 하는 요청은 앞으로 더욱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전망하고 “무엇보다 세계의 화두로 등장한 중국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동아시아 전체를 봐야 하고, 자본주의의 위기에서 비롯된 대안 문명에 대한 탐구 역시 동아시아를 바라볼 필요성을 제기한다”고 말했다.

김남중 기자 n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