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기에 뒤흔든 ‘비극의 아침’

입력 2016-03-22 21:13
벨기에 브뤼셀 지하철역 테러 직후 모습 (출처: 트위터)

벨기에에서 22일(현지시간) 발생한 동시다발 테러는 평범한 시민들로 가득 들어찼던 공항과 지하철을 순식간에 지옥으로 탈바꿈시켰다. 여행의 부푼 꿈에 출국을 대기하던 이들과 활기찬 하루를 시작하려던 샐러리맨들은 영문도 모른 채 출국장 바닥과 지하철 계단에서 피를 흘리며 쓰러져야 했고, 이들의 사망 소식은 평화롭기만 하던 유럽의 아침을 ‘비극의 아침’으로 만들었다.

◇전쟁터로 변한 공항 출국장=이날 오전 8시쯤 자벤템 국제공항 출국장 주변은 탑승 수속을 하려는 이들로 북적거렸다. 특히 미국 항공사인 아메리칸 에어라인(AA) 앞에서는 곧 출발한 비행기에 타려는 이들이 길게 줄을 서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출국장의 출입구 쪽에서 날카로운 소리로 누군가 아랍어를 외치기 시작했다. 줄을 서 있던 승객들이 누가 외치는지 돌아보려는 순간 총소리가 들렸다. 테러범들이 줄을 서 있는 승객들을 향해 무차별로 총을 쏘기 시작했다. 일부 승객이 그 자리에서 쓰려졌고, 다른 승객들이 현장에서 달아나기 위해 큰 혼잡이 빚어졌다.

승객들이 어수선하던 사이 갑자기 큰 폭발음이 터지면서 파편이 공항 곳곳에 퍼져나갔다. 승객들이 정신을 차릴 틈도 없는 사이 잠시 뒤 두 번째 폭발음이 들렸다. 두 차례 폭발 이후 수십명의 승객들이 곳곳에서 피를 흘리며 쓰러졌고, 아예 미동을 하지 못하는 이들도 수두룩했다.

공항에서 일하는 안토니 델루스는 “첫번째 폭발은 짐을 부치는 카운터 바로 근방에서 발생했고, 두 번째 폭발은 인근 스타벅스 매장 앞에서 발생했다”고 말했다. 그는 “처음에 폭발음의 영문을 몰라 출발·도착을 알려주는 전광판이 떨어진 줄 알았더니 곳곳에 파편이 날리고 물건들이 나뒹굴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특히 폭발로 인해 출국장 가로 세로 1m 정도의 커다란 천장 마감재가 떨어지고 천장 일부가 붕괴되면서 큰 부상을 입은 승객들도 많았다. 영국 BBC방송은 총격과 폭발, 건물 붕괴 등으로 인해 현장에서 즉사한 이들만 최소 11명에 달하고 81명이 다쳤다고 보도했다.

다행히 근처를 벗어난 승객들은 혼비백산이 된 표정으로 앞다퉈 탑승장을 빠져나갔다. AP통신 등에 따르면 폭발이 워낙 컸던 탓에 출국장 천장 위로 솟구쳐 오르는 검은 연기가 브뤼셀 시내에서도 보일 정도였다.

◇유럽연합(EU) 직원들 노린 지하철역 테러=공항 테러가 발생한지 채 몇 십분이 안된 시각에 브뤼셀 시내 말베이크 지하철역에서는 또 다른 테러가 발생했다고 영국 BBC방송이 전했다. 이 역을 이용하는 이들의 상당수는 인근의 EU본부 사무실 단지에서 일하는 직원들로 출근을 하던 길이었다.

폭발은 역에서 기차 한 대가 막 출발하려는 순간 플랫폼 인근에서 발생했다. 현장을 지나던 알렉산더 브란스는 AP통신과 인터뷰에서 “폭발 소리 자체가 워낙 커 놀랐다”면서 “폭발 순간 현장에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고 말했다. 단 한 차례 폭발이었지만 워낙 사람들이 밀집된 탓에 최소 15명이 숨지고 55명이 다치는 등 사상 규모가 컸다.

폭발 이후 역 일대가 암흑으로 변했고, 비상등을 이용해 승객들이 앞다퉈 내리는 모습이 목격됐다. 피에르 메이스 브뤼셀 소방당국 대변인은 AFP통신에 “폭발 이후 혼란 그 자체였다”며 “피를 흘리는 부상자들을 서둘러 지하철 밖으로 빼내는 데 혼신을 다했다”고 말했다. 당국은 지하철 내부가 어두워 사태 수습이 늦어지면서 오후 들어서야 사상자 규모를 발표할 수 있었다.

테러 이후 EU는 추가 테러 가능성에 이미 출근한 직원들의 경우 EU 건물 단지 내부에 머물 것을 지시했다. 미처 출근하지 못한 직원들에게는 출근을 하지 말라고 긴급히 통보했다. 또 폭발물 설치 등에 대비해 EU 건물 주변에 대해 대대적인 수색 작업을 벌이기도 했다.

브뤼셀은 시내 전체의 지하철과 열차 등 대중교통 운행을 중단하고, 경찰이 추가 테러 가능성에 시내 곳곳을 수색하면서 하루 종일 을씨년스러운 모습이었다. 현지 언론들은 “브뤼셀 시민들이 두 곳에서의 테러와 추가 테러 가능성에 얼굴 가득 공포에 질려 있는 모습이었다”고 전했다.

손병호 기자 bhs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