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승헌 변호사, 재판의 과오 잊지 말자는 의미로 책 출간

입력 2016-03-22 14:10

1947년 여운형 암살 사건부터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까지 17개 정치재판을 조명한 ‘재판으로 본 한국현대사’(창비)가 출간됐다. 저자는 50여년 시국사건을 도맡아 변호해온 대표적인 인권변호사 한승헌(82)씨다.

한 변호사는 22일 서울 광화문의 한 식당에서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를 열고 “재판의 과오를 너무 쉽게 잊고 산다”면서 “잊지 말자는 의미로 이 책을 썼다”고 설명했다.

그는 가장 잊을 수 없는 사건으로 1974년 있었던 긴급조치 4호 위반 사건을 꼽았다. 당시 그는 민혁당 사건으로 사형 당한 여정남씨의 변호인이었다. 그는 “제가 그동안 변호했던 사람들은 전부 징역에 갔는데, 돌아오지 못한 사람이 여정남이었다”며 “한 번 이승을 떠난 사람은 다시는 돌아올 수 없으니까 늘 가슴에 맺힌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이 책에 등장하는 사건 대부분이 국가보안법이나 반공법 사건”이라며 “시국사건 대부분이 용공사건이었고, 용공성 딱지를 붙임으로써 정치적 박해를 정당화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진보당 사건, 동백림 사건, 긴급조치 사건, 인혁당 사건,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 등 이 책에 나오는 많은 사건들이 재심 통해 이후에 무죄가 됐다”면서 “그래도 우리는 당대에 재심을 통해 무죄가 되는 걸 보니까 이 정도 사법적인 구제 여지가 있는 것 아닌가 위로가 되기도 한다”고 소감을 전했다. 그러면서 “이런 좋은 변화가 어디서 왔는가. 피고인들의 희생을 통해 기본권이 이만큼 쟁취됐다. 피고인들의 희생으로 오늘날의 사법권 독립이 실행됐다”고 강조했다.

한 변호사는 최근 긴급조치에 대해서 고도의 정치적 통치행위이므로 불법이 아니라는 판결이 잇따르고 있는 사례 등을 거론하며 “사법부가 후진하고 있어서 안타깝다”고 덧붙였다. 그는 “사법부가 과거에는 외부의 압력에 의해 타율적 오판을 했다고 한다면, 지금은 법관들이 내심에서 권력의 표정을 보기 시작하는 듯 하다”며 “외풍보다 내풍이 참 걱정스럽다”고 전했다.

김남중 기자 n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