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쿡기자] “BIFF를 지켜라” 최후통첩이 나오기까지

입력 2016-03-22 00:01 수정 2016-03-22 00:01
쿠키뉴스DB


부산국제영화제(BIFF)는 올해 21회째를 맞습니다. 사람 나이로 치면 다 큰 성년이죠.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할 능력쯤은 갖췄단 얘기입니다. 그런데 자꾸만 ‘이래라 저래라’ 야단입니다.

BIFF와 부산시 갈등은 지금 최악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사태가 불거진 지 어느덧 1년 반쯤이 흘렀습니다. 그 사이 해결점을 찾기는커녕 골만 더 깊어졌습니다. 영화인들은 결국 마지막 카드를 꺼내들었습니다. 독립성과 자율성이 보장되지 않으면 이 영화제를 계속할 수 없다고 말이죠.

부산국제영화제 지키기 범 영화인 비상대책위원회는 21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 이춘연 영화인회의 이사장, 이은 영화제작가협회장, 채윤희 여성영화인모임 대표, 정윤철 감독, 방은진 감독, 고영재 독립영화협회 이사장, 이준동 나우필름 대표, 안병호 영화산업노동조합 위원장, 안영진 프로듀서조합 대표 등이 참석했습니다.

이들은 한 목소리로 외쳤습니다. “부산시가 영화제의 자율성을 계속 부정한다면, 올해 BIFF 참가를 전면 거부하겠다.” 사실상 보이콧 선언입니다.

비대위 요구사항은 간명합니다. ▲서병수 부산시장의 조직위원장 사퇴를 즉각 실행하고, BIFF의 자율성·독립성을 보장하는 정관개정에 전향적 자세로 나설 것 ▲BIFF 신규 위촉 자문위원 68명에 대한 효력정지 가처분신청을 철회하고, BIFF에 대한 부당한 간섭을 중단할 것 ▲BIFF 집행위원장 사퇴 종용, 총회 의결 없는 집행위원장 해촉 등 영화제를 훼손한 일련의 잘못을 인정하고 공개 사과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할 것. 딱 이 세 가지. 요약하면 영화제 일은 집행위원회가 알아서 하겠다는 얘기입니다.



갈등의 시작은 2014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제19회 BIFF 당시 부산시가 상영 문제에 개입했습니다. 세월호 참사를 다룬 다큐멘터리 ‘다이빙벨’이 “정치적 중립성을 훼손한 작품”이라며 상영 중단을 요구했죠. 영화제는 이를 거부하고 예정대로 영화를 상영했습니다.

이후 부산시 측의 노골적인 간섭이 시작됐습니다. 먼저 이용관 전 공동집행위원장에게 사퇴 압박이 가해졌습니다. 영화제는 감사원과 부산시의 감사를 받았죠. 영화진흥위원회 지원 예산마저 절반으로 삭감된 상황. 지난해 제20회 영화제는 가까스로 치러졌습니다.

그로부터 불과 두 달 뒤인 지난해 12월 부산시는 이 전 위원장을 회계부정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습니다. 지난 2월에는 매년 열리는 정기총회를 미루면서까지 해촉하려 했죠. 이후 이 전 위원장은 연임이 불발되며 결국 자동 해촉됐습니다.

서병수 부산시장이 조직위원장을 사퇴하겠다는 뜻을 밝히면서 해결점을 찾는 듯했습니다. 한데, 또 다른 쟁점이 터졌습니다. 정관 개정을 둘러싼 갈등이 법정으로 가게 됐습니다.

집행위원회가 선정한 신규 자문위원 68명에 대해 부산시가 반기를 든 겁니다. 법원에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냈습니다. 감독 최동훈·류승완·변영주·정윤철·김대승·이미연·방은진, 배우 유지태·하정우, 제작자 오정·이준동·최재원·김조광수 등 영화인들에게 법원 출석 통지서가 날아갔습니다.



부산시가 이들을 자문위원으로 인정하지 않는 이유는 ‘자격이 없어서’라는 군요. 궁금합니다. ‘자격을 갖춘’ 이는 대체 누군가요.

그저 핑계에 불과하다는 걸 어렵지 않게 알아챌 수 있습니다. 결국 집행위 뜻대로 운영되는 걸 막겠다는 거겠죠. 의결권을 내주지 않겠다는 의도로 풀이됩니다. 이쯤 되면 집착입니다.

영화인이 없는 BIFF를 상상할 수 있나요. 텅 빈 레드카펫과 썰렁한 객석, 그 끔찍한 일이 진짜 벌어질지 모릅니다. 이런 식이라면 시간문제겠죠. 부산시가 원하는 그림이 정녕 이것인가요.

최후통첩은 이미 내려졌습니다.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