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24년 만에 필리핀에 미군을 다시 주둔키로 결정하면서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핵심 외교안보정책인 아시아태평양 재균형 정책(Pivot to Asia Pacific)이 큰 결실을 맺게 됐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20일(현지시간) 분석했다. 특히 이번 결정으로 남중국해를 둘러싼 힘의 균형의 축이 중국 우위에서 미국 우위로 쏠릴 전망이다.
WSJ에 따르면 미국과 필리핀은 지난 19일 워싱턴에서 열린 고위급 협상에서 필리핀의 공군기지 4곳과 육군기지 1곳을 미군이 사용한다는 데 합의했다. 이 발표에 이어 필립 골드버그 필리핀주재 미국대사는 언론과 인터뷰를 갖고 “미군을 아주 빨리 배치하겠다”고 신속한 배치를 강조했다. 미군 배치와 관련해 애슈턴 카터 미 국방장관이 다음달 직접 필리핀을 방문한다.
미군의 필리핀 파병은 1991년 필리핀 의회에서 미군 주둔 연장안을 부결시킨 이듬해 미군이 철수한 이후 처음이다. 당시 냉전이 종식되면서 필리핀에 애국주의 열풍과 반미 시위가 번졌고 결국 미군 철수로 이어졌다. 이전까지 미국은 필리핀의 수빅만과 클라크 공군기지 등 2곳에 94년간 미군을 주둔시켜왔다. 필리핀이 미군 주둔을 허용한 것은 지난 2014년 양국이 체결한 방위협력확대협정(EDCA)에 따른 것이다. 하지만 필리핀 내부에서 미군 주둔 반대론자들이 이 협정이 무효라고 소송을 걸어 실행되지 못하다, 지난달 대법원이 협정이 합헌이라고 결정하면서 이번 합의를 도출할 수 있게 됐다.
이번 미군 주둔은 주둔지가 2곳에서 5곳으로 확장됐다는 점과 함께 남중국해를 둘러싼 갈등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전략적 요충지에 미군이 주둔하게 됐다는 의의가 있다.
AFP통신에 따르면 주둔지 중 남부 팔라완섬의 안토니오 바티스타 공군기지는 남중국해에서 영유권 분쟁이 치열한 스프래틀리(난사)군도의 미스치프 환초로부터 300㎞ 떨어져 있다. 또 루손섬의 바사 공군기지는 스프래틀리 내 스카버러섬과 330㎞ 거리에 있다. WSJ은 “바티스타 기지는 남중국해를 감시하기도 좋고 분쟁 시 반격하기도 좋은 위치”라고 분석했다.
나머지 3곳은 루손섬의 포트 막사이사이 육군기지와 남부 민다나오섬의 룸비아 공군기지, 세부의 막탄베니토 에부엔 공군기지다. 이 중 룸비아는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가 세력 확장을 노리는 곳이어서 대테러 임무도 부여될 것으로 알려졌다.
이로써 미국은 일본과 괌의 해군기지들과 필리핀의 공군·육군기지를 갖게 돼 중국의 남진(南進)을 한층 잘 견제할 수 있게 됐다. 미국은 현재 호주와 싱가포르에서도 아·태 재균형 정책 차원에서 미군 배치를 진행 중에 있어 향후 미국의 군사적 우위가 더욱 두드러질 전망이다.
한편 일본 요미우리신문은 이달 말 워싱턴에서 열리는 핵안보정상회의 때 오바마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양자회담을 갖는다고 이날 보도했다. 남중국해 문제로 두 정상이 재차 충돌할 것으로 예상된다.
손병호 기자 bhson@kmib.co.kr
24년만의 필리핀 주둔은 오바마 대통령의 아시아 재균형 정책의 결정판
입력 2016-03-21 16: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