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이 교통사고 유발자?…"노인 보행자, 안일함 버려야" 경찰 발언 논란

입력 2016-03-21 12:05 수정 2016-04-08 15:15
경찰이 노인 교통 사망사고의 책임이 당사자에게 있다는 취지의 진단을 내놨다. 교통 약자인 노인을 ‘사고유발자’로 몰아세운 셈이어서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지방경찰청은 21일 보도자료에서 지난해 1월 1일부터 이달 15일까지 서울시내 교차로에서 우회전 차량에 받혀 숨진 보행자 20명 중 70%인 14명이 65세 이상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사망사고가 많은 65세 이상 고령 보행자는 차량이 피해갈 수 있을 것이라는 안일한 생각을 버리고 스스로의 보행 안전에 유의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런 당부에는 고령 보행자 사망사고의 주된 원인이 노인에게 있다는 시각이 담겨 있다. 노인들이 교통사고를 당하는 건 스스로 조심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서울경찰청 교통안전계 관계자는 “사고 당시 녹화영상 등을 보면 노인 보행자 경우는 양 옆을 안 보고 무조건 건너가시는 경향이 다른 연령대에 비해 상당히 강하다”고 설명했다.

보행자 부주의는 과실이 많고 적음을 떠나 상당수 교통사고의 한 요인이 되지만 이를 전적인 원인으로 보거나 노인 보행자만의 특징이라고 할 수는 없다. 노인 교통사고가 상대적으로 많은 것은 부주의보다도 인지능력과 활동력이 약한 탓이 크다는 게 일반적인 진단이다.

노인들은 시력이나 청력이 떨어지고 걸음과 대처 속도가 느려 같은 위험 상황에서도 사고를 당할 확률이 높다. 갑자가 차가 들이닥칠 때 젊은 사람은 뛰어서 피하지만 노인은 놀라 주춤거리다 사고를 당하는 경우가 많다.

노인은 같은 사고를 당하더라도 젊은 사람보다 크게 다치거나 사망할 가능성이 크다. 이들은 최근 사회활동이 활발해지면서 이전보다 교통사고 위험에 많이 노출된 측면도 있다. 노인이 많이 사는 지역은 상당수가 교통안전시설이 미비하다는 지적도 꾸준히 나온다.

경찰도 노인 보행자의 안일함을 거론한 대목이 부적절하다는 점을 인정했다. 서울경찰청 교통안전계 관계자는 “유의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는데 취지를 제대로 못 살린 것 같다. 그 부분을 바꾼다는 게 적절한 표현으로 못 바꾼 거 같다”고 말했다.

올해 들어 지난 15일까지 서울시내 교통사고 사망자는 모두 80명으로 이 중 48명이 보행 중 사고를 당해 숨진 것으로 집계됐다. 교차로에서 사망사고를 낸 우회전 차량은 대부분 덤프트럭과 버스 등 대형차량이었다.

경찰은 “대형차량 운전자는 차량 특성상 우회전 시 보행자를 발견하기 어려운 사각지대가 존재하므로 좁은 교차로에서는 속도를 낮추고 보행자 통행 여부에 대해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경찰은 대형차량 우회전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해 서울시내 교차로를 점검하고 우회전신호등(보조신호등)을 54곳에 우선 설치하기로 했다. 대형차량이 많이 지나다니거나 우회전 교통사고 잦은 지역은 현장점검을 벌이고 보조신호등도 늘려나갈 방침이다.

강창욱 기자 kcw@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