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이 날더러 속물이래요.”
올해 스무 살이 된 청년 크리스토퍼 카프(20)는 독일 바트혼네프 국제응용과학대(IUBH) 경영대학원에서 항공경영학을 전공한다. 카프는 또래 친구들처럼 수업료가 없는 국립대에 다니지 않고 비싼 수업료를 내는 사립대를 택했다. 적잖은 돈이 들었지만 일단 부모에게 빌렸다.
후회한 적은 없다. 비싼 수업료를 내는 대신 학생 수가 적고 자신이 관심 있는 분야를 제대로 배울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루프트한자 항공에 들어가는 게 목표인 카프는 국립대보다 방학이 짧아도 개의치 않는다.
대학까지 무상으로 졸업할 수 있는 유럽의 ‘공공교육’ 신화에 금이 가고 있다. 정부의 교육재정 고갈과 질 높은 교육을 원하는 학생들의 요구, 외국인 유학생 범람 등이 겹쳐 사교육 시장이 팽창하고 있는 까닭이다. 영국 주간 이코노미스트는 19일(현지시간) 발간된 최신호에서 이 같은 추세를 보도했다.
◇ 대세는 사립대?
유럽은 대학교육까지 무상으로 제공되는 교육시스템으로 명성이 높다. 뉴욕주립대 연구결과에 따르면 세계적으로 사립대학 시장에서 교육받는 학생들은 전체의 3분의 1에 이르지만, 유럽은 7분의 1에 그친다.
하지만 유럽 교육계도 최근 변화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교육상담기관 파르테논-EY에 따르면 2011년부터 2013년 사이 유럽의 사교육 시장은 공교육 시장과 대비해 가파르게 팽창했다.
이 기간 터키에서 대학 사교육 시장이 22% 성장하는 동안 공교육 부문은 14% 성장했다. 같은 기간 독일 사교육 시장은 13%로 7% 성장한 공교육보다 빨리 성장했고, 프랑스에서도 사교육 시장은 3%가 성장해 1% 성장에 그친 공교육 부문보다 많이 성장했다. 스페인에서는 사교육 시장이 6% 성장하는 동안 공교육 부문은 전혀 성장이 없었다. 영국에서 사립대학에서 교육 받는 학생 수는 2009년 14만2000명에서 현재 20만 명으로 늘었다.
◇ 문제는 돈
사립대가 각광받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취직이다. 이코노미스트는 장래 특정 직업군에 종사하고 싶어 하는 학생들에게 있어 취업 통로를 직접 중계하는 사립대가 매력적인 선택지라고 설명했다. 특히 심각한 수준에 이른 청년실업은 이 같은 세태를 부추기고 있다. 사립대 입장에서도 인턴교육 등으로 사업에 득을 볼 수 있어 적극 나서는 분위기다.
해외 각지에서 유럽으로 밀려오는 유학생들 역시 중요한 이유다.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현재 약 450만 명에 이르는 전세계 해외 유학생 규모는 2025년까지 약 700만~800만명으로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미국 국무부는 2020년까지 현재 30만 명인 자국 출신 유학생을 2020년까지 두 배인 60만 명으로 늘리려 하고 있다. 유명 대학이 몰려있는 유럽은 이중 상당 비중을 차지한다.
이례로 이탈리아 밀라노에 위치한 마랑고니 패션학교에서 유학생들의 비중은 70%에 달한다. 이중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는 건 중국인 부유층 집안에서 온 유학생들이다. 이들은 1년에 1만3600 유로(약 1800만원)에 이르는 학사과정 수업료를 망설임 없이 지불한다. ‘패션 엘리트’ 과정을 밟는 데는 두 배에 달하는 3만2000 유로(약 4200만원)가 든다.
◇교육 양극화 부추기는 ‘달콤한 독’
정부는 사교육 시장 팽창을 반기는 추세다. 국립대학에 투입되는 비용을 아끼기 위해서다. 튼튼한 공교육제로 이름 높은 독일은 2014년까지 8년간 국립대학 수업료 납부제를 시험 삼아 운용한 뒤 사교육 시장을 적극 수용하는 쪽으로 정책방향을 틀었다. 오래 전부터 교육재정 파탄에 시달려온 프랑스 역시 마찬가지다.
하지만 덮어놓고 사교육 시장 팽창을 부추겼다가는 교육 양극화가 나타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미국 등에서 나타난 부작용이 유럽에서도 재현될 수 있다는 걱정이다. 이코노미스트는 미국에서 지나친 사교육 시장 팽창으로 청년 교육 수준이 낮아졌던 현상이 재현될 수 있다면서 공교육과 사교육의 적절한 조화가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조효석 기자 promene@kmib.co.kr
‘공공교육’ 신화 깨져나가는 유럽, 사교육 늘면서 교육 양극화 우려
입력 2016-03-20 17:40 수정 2016-03-20 17: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