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대통령, 88년 만에 역사적 쿠바 방문 나선다

입력 2016-03-20 15:07
워싱턴포스트 캡처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21일 오전(한국시간) 쿠바를 방문한다. 미국 대통령이 오랜 적대국 쿠바를 방문하는 것은 1928년 캘빈 쿨리지 대통령 이후 88년 만이자 양국이 수교 재개 선언을 한지 15개월 만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2박3일간 쿠바를 국빈방문하면서 라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과 정상회담을 갖고 쿠바 국립극장에서 쿠바 국영TV로 생중계되는 연설을 한 뒤 미국과 쿠바간 농구경기 등을 관람할 예정이다.

백악관은 오바마 대통령이 20일 오후(현지시간) 대통령전용기 편으로 부인 미셸 여사 등 가족과 함께 아바나에 도착할 예정이라고 19일 밝혔다.

쿠바 정부는 오바마 대통령의 국빈방문을 앞두고 수도 아바나의 일부 도로를 다시 포장하고, 낡은 빌딩 외벽의 칠을 하는 등 대대적인 단장에 나섰다. 오바마 대통령이 이동하는 주요 도로의 교통은 통제된다.

워싱턴포스트 기자가 아바나에서 만난 이발사 마누엘 피노(44)는 “내 생애 이런 장면을 볼 줄은 몰랐다”며 휴대전화로 오바마 대통령이 탈 차량을 동영상에 담느라 여념이 없었다. 피노의 집 바로 앞에는 마침 오바마 대통령을 태울 방탄차량이 시내 주행 리허설 중이었다.

이런 들뜬 분위기와는 달리 오바마 대통령의 이번 방문이 획기적인 쿠바의 변화를 끌어내거나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하는 등 한계가 많다는 게 미국 언론들의 평가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번 방문 기간 중 쿠바의 인권개선을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하지 않는다. 쿠바혁명 지도자이자 미국과 쿠바의 오랜 적대관계를 상징하는 인물인 피델 카스트로(90)와의 면담도 이뤄지지 않는다. 쿠바령 관타나모의 미군 기지를 반환하는 것도, 쿠바에 대한 금수조치 해제도 이번 방문 중에는 성사되지 않는다.

쿠바 금수조치 해제를 완강히 반대하는 공화당 인사들은 오바마 대통령의 쿠바 방문에도 비판적이다. 폴 라이언 하원의장은 “쿠바는 아직도 테러리스트와 도피자들에게 피난처를 제공하는 정권”이라며 “오바마 대통령이 이번 방문으로 어떤 변화도 끌어내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내에서도 오바마 대통령이 업적을 남기는데 급급해 서두른다는 일부 비판의 목소리가 있다. 쿠바 이민자의 아들인 로버트 메넨데즈 상원의원은 쿠바의 반체제 인사가 플로리다 마이애미에서 벤자민 로즈 백악관 안보 부보좌관을 만났다는 이유로 귀국하자마자 구금된 사례를 언급하며 “카스트로 형제가 독재정치를 포기하거나 쿠바 국민들을 탄압하는 방식을 바꾸지 않는다면 50년 전이나 지금이나 이 문제에 대한 대답은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나 오바마 대통령의 역사적인 방문으로 느리지만 쿠바의 변화는 돌이킬 수 없는 방향으로 가게 될 것이라는 전망도 상당하다.

카를로스 알주가라이 아바나대학 교수는 “쿠바는 모든 게 달라지고 있다. 그러나 그 변화는 쿠바 식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텍사스대학의 줄리아 스웨이그 선임연구원은 “오바마 대통령의 방문으로 쿠바판 ‘아랍의 봄’이나 ‘프라하 혁명’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겠지만 쿠바의 변화는 불가피하다”고 예상했다.

아바나에서 태어나 조지 W 부시 행정부에서 상무부장관을 지낸 카를로스 구티에레즈는 “쿠바는 미국이 여전히 쿠바의 정권 정복이나 체제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는 의구심을 갖고 있다”며 “오바마 대통령의 쿠바 방문은 양측의 뿌리깊은 불신을 조금이나마 불식시키는데 기여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워싱턴=전석운 특파원 swch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