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보리의 섬 가파도…5년간의 '친환경' 실험, '탄소 없는 섬' 될까

입력 2016-03-20 12:37
지난 19일 오전 제주 모슬포항을 떠난 배가 가파도를 향해 거센 해풍을 뚫고 20분을 달렸다. 상동항선착장에 닿기 전부터 시야에 들어온 건 청보리의 녹빛으로 가득한 들판 위에 우뚝 서서 돌아가는 30m짜리 풍력발전기 2기였다. 

 가파도는 우리나라 최남단 섬인 마라도와 제주도 사이에 위치한 0.85㎢의 작은 섬이다. 해안도로를 따라 걸으면 1시간에 섬 전체를 돌아볼 수 있다. 126가구 245명이 사는 이 섬은 2030년까지 ‘탄소 없는 섬’을 만들겠다고 공언한 제주도의 ‘작은 모델’이다.

가파도에 설치된 풍력발전기 모습


 제주도는 2011년 11월부터 가파도를 스마트그리드 및 에너지자립섬 시범모델로 정하고 ‘에너지 자립섬’의 대표 아이콘으로 삼았다. 지금까지 한국전력공사·한국남부발전과 118억원을 들여 37가구에 3㎾급 태양광 집열판, 250㎾짜리 풍력발전기 2기와 3850㎾h짜리 전력저장장치(BESS·Battery Energy Storage System)를 구축했다.


 또 전기자동차 4대와 전기오토바이 5대, 완속충전기 3개소를 뒀다. 탄소를 배출하던 폐기물소각장도 이용을 멈추고 폐기물을 섬 외부로 반출하고 있다. 학생이 10명뿐인 ‘미니학교’ 가파초등학교는 소형풍력과 태양광발전으로만 전기를 공급받는 ‘스마트 스쿨’로 꾸몄다.


 이날 오전 제주 가파도발전소 내에 위치한 마이크로그리드 운영센터의 대형 모니터에서는 섬의 전력운영현황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었다. 10시20분 기준으로 가파도 발전량 전체의 11%는 풍력이, 태양광이 1%, 디젤발전은 88%를 담당하고 있었다. 아직까지는 저장장치 용량이 생산되는 전력을 감당할 수 없어 150㎾짜리 디젤발전기 2대를 돌리고 1대를 예비로 두고 있다. 
 
이영석 소장이 발전 현황을 설명하고 있다.


 이영석 가파도발전소 사업소장은 “풍력발전기를 오전 9시부터 가동시켰는데 디젤발전기가 생산한 약 120㎾를 훨씬 웃도는 약 280㎾를 생성하고 있다. 지금 설치된 풍력과 태양광 신재생에너지만으로도 전력 사용량을 대체할 수 있기는 하다”고 말했다.

 문제는 풍속이 지나치게 세져 발전기가 감당하지 못할 경우나 흐린 날이 지속되면 태양광 발전 안정성이 떨어지는데 이런 경우를 대비해 전력을 저장하는 BESS 용량이 현재로는 역부족이라는 점이다. 디젤발전기가 뒷받침하지 않으면 전력 공급은 불안정해질 수밖에 없다.

 이런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제주도는 올 상반기 안으로 BESS 2㎿h와 전력변환장치(PCS)를 추가해 안정적인 재생에너지 전력공급을 가능케 할 계획이다. 제주도 관계자는 “상반기까지 태양광 11기도 추가 설치되면 디젤 발전을 모두 예비로 돌리고도 100% 에너지 공급이 가능하다”며 “풍력발전소는 10년 후면 디젤발전소에 비해 운영비가 덜 들고 태양력은 15년 후에 이윤을 남길 것으로 추산됐다”고 말했다.

주택에 설치된 태양광발전기.


 주민들 생활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김동옥 이장(61)은 “태양광 집전판을 설치하기 전에 5~6만원에 달하던 전기료가 7000~8000원대로 떨어졌다. 연말에는 신재생에너지 사용으로 인한 탄소포인트로 20000원까지 환급받는다”고 말했다. 설치비 1260만원 중 주민 부담은 126만원 뿐이고 유지보수에 별도 비용이나 노력이 요구되지 않는다. 20년새 800여명의 주민이 감소했는데 ‘녹색관광 명품섬’을 간판으로 내 걸면서 관광객으로 조금씩 활기도 되찾고 있다. 2011년 6만9000명에 불과하던 관광객은 차츰 늘어 지난해 9만4000명에 달했다.
 
 무탄소’까지 갈 길이 남기는 했다. 가파도 내 모든 차량이 전기차는 아니고 기름보일러를 사용하는 20~30가구도 남아 있기 때문이다. 상주인구는 순감하는 상황에서 ‘친환경관광’을 안착시키는 것도 과제다. 제주도는 우선 마을버스와 화물차량 2대를 전기차로 대체할 방침이다. 농기계와 어선도 전기동력으로 차츰 전환할 예정이다.

전수민 기자 suminis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