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대통령의 메릭 갈랜드 연방대법원 판사 승부수

입력 2016-03-17 16:44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중도파 연방대법원 판사 후보 추천이 대선과 상·하원 선거를 8개월 앞둔 미국 정치판을 통째로 뒤흔들 수 있는 ‘회심의 승부수’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공화당 상원의원 일부에서 당론과 다르게 인준 청문회를 개최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는 등 공화당 내 분열 조짐도 나타나고 있다. 상원을 장악한 공화당은 임기가 1년이 채 남지 않은 오바마 대통령이 대법관 후보를 추천하는 데 반대한다며 인사 청문회 절차 자체를 진행하지 않는다는 방침을 정한 바 있다. 하지만 여기에는 한 달 전 앤터닌 스캘리아 연방대법관의 타계로 미 대법원 구성이 보수와 진보 성향이 4 대 4로 균형을 이룬 상태에서 진보 성향 대법관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속내가 담겨 있다.

오바마 대통령이 16일(현지시간) 공석 중인 미 연방 대법관 후보로 지명한 메릭 갈랜드(63) 워싱턴 DC 연방항소법원장은 보수와 진보 진영 모두에 신망이 높은 중도파 법조인으로 꼽힌다. 지난 2010년 오린 해치(유타) 공화당 상원의원은 갈랜드 판사가 “합의된 후보”라며 “대법원 판사 인준에도 아무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공화당 지도부는 오바마 대통령이 갈랜드 판사를 지명하자마자 인사 청문 절차를 진행하지 않겠다는 당론을 재확인했다. 상원 공화당 미치 매코넬(켄터키주) 원내대표는 “오바마 대통령의 의도는 지명자가 (상원의) 승인을 받게 하기 위함이 아니라 선거를 앞두고 이 문제를 정치화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며 갈랜드에 대한 인준을 거부하겠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갈랜드 판사가 자질과 정치적 성향의 중립성 등 여러 측면에서 흠잡을 수 없다는 점에서 인준 절차 거부에 따른 공화당의 정치적 부담이 적지 않을 전망이다. 이와 관련, 오는 11월 대선일에 전체 정원의 3분의 1이 교체되는 상원 선거를 앞둔 공화당 의원들은 정치적 역풍을 우려하며 동요하고 있다고 뉴욕타임스(NYT)는 전했다. 공화 상원의원들이 헌법에 규정된 책무를 방기했다는 백악관과 민주당의 공격이 먹혀들 소지가 크다는 것이다.

아울러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이 대선에서 승리할 경우 갈랜드 판사보다 훨씬 진보적인 인사를 지명할 가능성도 공화당 상원의원들이 우려하는 대목이다.

대선 이슈로도 부상할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클린턴 전 국무장관은 이날 성명에서 “오바마 대통령이 판사와 공직자로서 경험이 풍부하며 명쾌한 법적 사고력을 갖춘 초당적인 지지와 존경을 받는 인물을 대법관으로 지명했다”고 말했다. 다른 민주당 경선 후보인 버니 샌더스(버몬트) 상원의원도 연방대법관 후보에 갈랜드 법원장을 지명한 데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반면 공화당 경선 선두 주자인 트럼프는 “차기 대통령이 새 대법관을 지명해야 한다”며 상원 인준청문회에 반대했다. 테드 크루즈(텍사스) 상원의원도 “갈랜드 지명자는 (원칙이 아니라) 기존 워싱턴 정가의 (잘못된) 협상을 통해 나올 수 있는 그런 전형적인 인물”이라면서 갈랜드 지명자에 대한 인준청문회를 열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배병우 선임기자 bwb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