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행보가 석연치 않다. 핵심 군사기밀인 핵탄두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관련 기술을 잇따라 공개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국제사회가 가뜩이나 북한의 핵능력을 의심하는 상황에서 북한은 왜 스스로 기술 수준을 밝혀 ‘공개 검증’을 자처하고 나선 것일까.
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는 최근 “핵탄을 경량화해 탄도 로켓에 맞게 표준화, 규격화를 실현했다”며 핵탄두 시찰 장면을 공개했다. 남측에서 모형이 아니냐는 반론이 일자 북한은 다시 나흘 뒤 듯 군 관계자를 인용해 “혼합장약구조로 제작된 핵탄두”라고 강조했다. 북한은 이어 ICBM의 핵심기술 중 하나인 탄도 로켓의 대기권 재진입 실험을 공개하고, ‘핵탄두 폭발시험’도 감행할 것을 암시했다.
북한이 이처럼 핵능력 고도화 작업을 중계 방송하듯 공개하는 것은 ‘위협의 신뢰성’ 게임을 벌이고 있다는 관측이 설득력을 얻는다. 북한은 핵보유국임을 자처하고 있지만 국제사회는 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4차 핵실험에서 ‘수소탄 실험을 성공시켰다’는 북한 주장 역시 배척됐다. 오히려 유엔의 고강도 대북제재가 시작됐고, 믿었던 우군이었던 중국마저 강경한 자세로 돌아선 상태다.
북한이 아무리 핵무기로 위협을 가해도 국제사회가 믿지 않는 불신 상태가 이어지자 결국 ‘공개 검증’을 통해 핵능력을 인정받으려 한다는 것이다. 미국 노틸러스 안보·지속가능성 연구소는 2014년 “핵위협의 신뢰성을 결정하는 핵심 변수는 역량과 의지”라고 분석했다. 북한이 최근 연거푸 핵능력을 공개하고 핵무기 실전배치 위협에 나선 것도 ‘역량’과 ‘의지’를 인정받기 위한 수순인 셈이다.
북한의 다급한 행보는 우선 지금이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받을 수 있는 최적의 시기라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북한은 ‘수소탄 실험’을 통해 국제적으로 핵능력의 발전은 어느 정도 인정받았다고 본다. 이로 인해 6자회담을 비롯한 북핵 대화 재개 움직임도 촉발됐다. 중국은 유엔 대북제재 결의안을 받아들이는 대신 북한의 ‘숙원’이었던 북·미 평화협정 주장도 내놓았다. 북한으로선 김 제1비서가 고집해온 ‘핵·경제 병진노선’의 성공을 위한 중대 기로에 서있다고 판단했을 개연성이 높다.
따라서 우선 핵능력을 과시해 협상 국면의 주도권을 틀어쥐고 가려하는 것이다. 또 이미 미국의 대선 레이스가 시작됐고 남측도 선거 국면에 접어들면서 ‘시간이 많지 않다’는 판단도 작용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 결의 2270호가 북한의 숨통을 더욱 죄어올 것이란 우려도 적지 않다. 역대 최대 규모의 한·미 연합군사훈련이 진행 중인 상황에서 북한이 이례적으로 ‘핵 도발’을 거듭하고 있는 이유다.
정부 소식통은 17일 “북한은 이번 계기를 통해 국제적으로 북한의 핵능력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질 수 있도록 ‘올인’하고 있다”며 “핵보유국 지위를 얻어 우월적 협상을 치르려는 전략”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북한을 배제한 한·미·중 3자 대화 움직임이 가시화되는 등 국제 정세는 북한의 뜻과는 딴판으로 흘러가고 있다.
강준구 기자 eyes@kmib.co.kr
북한의 석연찮은 행보..김정은은 왜 군사기밀을 공개했을까
입력 2016-03-17 15: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