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보험사들이 많게는 52조원의 대손충당금을 새로 마련해야했던 국제 보험회계표준(IFRS4)의 기준이 완화됐다. IFRS4 2단계 도입 시기도 당초 예상했던 2020년보다 늦춰질 가능성이 높다.
한국회계기준원은 16일 국제회계기준위원회(IASB)가 한국 등 회원국의 요청을 받아들여 일부 기준을 변경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당초 IASB는 보험사들이 미래의 손실에 대비해 준비해야하는 대손충당금의 기준을 각 계약 단위별로 산정하는 기준을 제시했으나, 한국은 “보험의 본질인 상호부조 정신이 반영되지 않고 부채가 과대 계상되는데다 재무변동성도 심화된다”며 기준 변경을 요청했다.
예를 들어 이자율이 높을 때 확정이율로 판매한 저축성 보험은 이자율이 낮은 현재를 기준으로 평가하면 보험사 입장에선 이자율 차이만큼 장차 손해를 보면서 보험금을 지급해야 한다. IASB는 이렇게 미래에 예상되는 손실을 개별 보험계약마다 계산해 이에 대비한 대손충당금을 보험사들이 준비하도록 회계 기준을 마련했다. 이같은 기준에 따르면 일부 중소형 보험사들은 자본잠식 상태가 될 수도 있다. 이를 막으려면 국내 보험사들은 40~50조원에 이르는 현금을 마련해 손실에 대비해야 했다. 이 때문에 2020년 시행을 앞두고 보험업계에 인수합병이나 도산 등 지각변동이 일어날 수 있다는 우려가 컸다.
한국의 요청으로 바뀐 기준은 연금보험이나 자동차보험 등 비슷한 보험끼리 묶어서 미래 손실을 계산하도록 했다. 이렇게 되면 저금리나 변동금리로 판매된 보험으로 얻는 이익을 비슷한 보험에서 예상되는 손실과 상계할 수 있어 총 미래손실 규모를 상당히 줄일 수 있다. 회계기준원 김대현 수석연구원은 “아직 세밀한 기준이 마련되지 않아 정확한 수치까지 계산하긴 어렵지만 IFRS4 2단계에 변경된 기준을 적용하면 미래손실에 따른 부채 증가 폭이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장지인 회계기준원 원장은 “IASB의 초안 그대로 시행된다면 한국 보험산업은 엄청난 타격을 피할 수 없어 회계 기준과 관련된 국제회의마다 참석해 다각적으로 설득했다”며 “결과적으로 우리의 요청이 상당히 받아들여지는 결실을 얻었다”고 밝혔다.
IFRS4 2단계 도입 시기도 늦춰질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IASB는 2013년 IFRS4 초안을 발표하면서 2016년까지 최종안을 확정해 3년의 준비기간을 둔 뒤 2020년부터 시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회계기준원 김은경 책임연구원은 “시행 시기를 못박은 것은 아니고 준비기간을 3년 두겠다는 계획이었는데, 아직 언제 시행할지 논의는 시작되지 않은 상태”라며 “우리는 3년의 준비기간이 너무 짧아 4~5년으로 늘리자는 제안을 해놓았다”고 밝혔다.
장 원장은 “올해 초에 예정되었던 IASB의 최종 기준서 발표가 연말이나 내년초로 늦춰졌다”며 “3년으로 예상하고 있는 적용 준비기간을 4~5년으로 늘려달라는 요청도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높아 보여, 처음 예정했던 2020년보다는 1~2년 늦춰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장 원장은 “국제 회계기준을 현실에 맞게 바꿔야 한다는 우리의 주장에 다른 회원국들이 주저하기도 했으나 결국 국제적인 공감대를 이뤄 설득해냈다”며 “글로벌화의 파고를 받아들이기만 할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맞서 변화시킨 좋은 사례가 될 것 같다”고 밝혔다.
김지방 기자 fattykim@kmib.co.kr
보험업계 수십조 부담 덜었다 ¨IFRS4 2단계 기준 완화(상보)
입력 2016-03-16 14:47 수정 2016-03-16 17: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