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서핑을 하다가 재미있는 리스트를 발견했다. 이름하여 ‘과히 매력적이지 않은데도 성공한 배우들(Succesful Actors Who Aren't Very Attractive)’.
‘매력’의 정의도 규정하지 않은데다 그 측정치도 없고, ‘성공했다’는 것이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불분명한 이 리스트는 과학적 여론조사 같은 방법을 동원한 것도 아니고, 작성 주체도 확실치 않다. 그런 만큼 이른바 ‘객관성’은 현저히 떨어진다. 그러나 그 면면을 훑어보면 직관적인, 인상적인 느낌상 그럴싸하기는 하다.
다만 개중에는 얼핏 생각하기에 “이 배우도?”라는 생각이 드는 의외의 인물들도 끼어있다. 하지만 나와는 달리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다고 전제하면 오히려 더 재미있다. 그 예가 잭 니콜슨이다.
물론 그는 젊었을 때는 잘 생긴 얼굴을 자랑했지만 스타가 되고나서는 그다지 얼굴 자랑할 처지가 못 된다. 그렇다고 스타일이나 근육미 등이 멋있는 것도 아니다. 배역도 과히 유쾌하지 않은 것들이 더 많았고. 내세울 거라고는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력밖에 없다. 하지만 잭 니콜슨이 매력이 없다고? 많은 사람들이 지적하듯 ‘악마를 닮은’ 그 미소의 매력만 해도 따라올 이가 없다.
사실 ‘매력’이라는 것은 잘생긴 것과 다르다. 잘생기지 않았더라도, 어쩌면 못생겼더라도 매력은 있을 수 있다. 더스틴 호프먼을 보라. 그는 누가 봐도 잘생긴 배우가 아니다. 작은 키에 스타일도, 섹스어필도 없다. 그래도 그가 매력이 없다고는 할 수 없다. ‘졸업(1967)'의 어리바리하면서도 순수한 청년 벤과 ‘미드나이트 카우보이(1969)’의 다리를 저는 조무래기 사기꾼 랫소를 연기한 그의 매력을 누가 부인할 수 있을까.
여배우도 마찬가지다. 예쁜 여배우들도 많지만 그들보다 덜 예뻐도 나름대로 특이한 매력을 발산하는 여배우들이 많다. 잔 모로의 경우. 물론 그는 예쁘다. 일반인들에 비해서 대단히 아름답다. 다만 카트린 드뇌브 같은 ‘초미녀’ 배우에는 못 미친다.
그래도 그는 여배우 서열(그런 게 있다면)에서 드뇌브에 결코 떨어지지 않는다. 아니 보는 사람에 따라선 드뇌브 같은 최고의 미녀나 브리지트 바르도 같은 최고의 섹시 글래머를 제치고 최고의 여배우로 꼽힌다. 입꼬리가 평상시에는 약간 처져있지만 웃을 때면 바짝 위로 치올라가는 모로의 묘한 매력은 그 어떤 여배우도 따라올 수 없다.
고백하거니와 엘리자베스 테일러나 드뇌브의 미모에 넋을 잃었을망정 내 ‘구원의 여인’은 모로였다. ‘사형대의 엘리베이터(1958)’와 ‘쥘 앤드 짐(1962)’ 등에서 본 모로의 매력적인 모습을 어찌 잊을까.
얘기가 잠시 옆길로 흘렀다. 리스트로 돌아가자. 리스트에 오른 25명은 D C 퀄스처럼 국내 영화 팬들에게는 다소 생소한 인물도 있지만 대체로 알만한 배우들이다.
우선 “과연 그럴 듯 한데” 하고 눈에 띄는 게 애드리언 브로디다.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피아니스트(2002)’에서 인상적인 연기로 29세에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은 데다 미국 남자배우로는 유일하게 프랑스판 오스카인 세자르상을 거머쥔 이 ‘성공한’ 배우는 그러나 솔직히 말해 전혀 매력적인 구석이 없다.
얼굴이 잘생긴 것도 아니고 스타일이 멋지거나 섹스어필이 있는 것도 아니다. 하다못해 ‘못 생긴’ 매력조차 없다. 어울리는 배역이 있다면 ‘피아니스트’에서 보여준 것처럼 선병질적인, 소심하고 나약한 지식인이나 예술가밖에는 없을 것 같은 애처로운 모습. 본인도 이를 의식한 듯 이후 출연작들을 통해 나름대로 새로운 매력 포인트를 찾아내려는 노력을 보이고 있지만 애석하게도 성공하지 못했다.
특히 액션 히어로로의 변신을 꾀해 체중을 11㎏이나 늘리고 과거 아놀드 슈워제네거와 대니 글로버가 1, 2편에서 각각 주연으로 나왔던 SF 액션 ‘프레데터(1987, 1990)’의 늦둥이 후속작 ‘프레데터스(2010)’에 출연했지만 ‘사상 최악의 미스 캐스트’라는 혹평만 받았을 뿐이었다.
이미 고인이 된 필립 시모어 호프먼도 이 리스트에 올라 하나도 이상하지 않은 배우다. 금발에 동안, 그리고 퉁퉁한 몸집 등 평범하기 이를 데 없는, 매력이라고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그는 ‘카포티(2005)’에서 실존작가 트루먼 카포티역을 맡아 극찬과 함께 오스카 남우주연상을 받았지만 그보다는 ‘여인의 향기(1993)’에서처럼 약한 자를 못살게 구는 골목대장이나 ‘레드 드래건(2002)’의 싸구려 기자 같이 사회 부적응자 등 주로 찌질이 역할로 주목을 끌었다.
그나마 아무리 찌질이라도 그토록 매력 없는 찌질이도 없다. 그런데도 나중에 그 정도의 ‘대배우’가 됐다는 것은 사실 예상 밖이었다.
그런가 하면 제프리 러쉬는? 또 새뮤얼 L 잭슨은? 둘 다 ‘성공적인’ 배우임에는 틀림없지만 매력과 거리가 먼 것 역시 사실이다. 러쉬의 경우 신경쇠약에 걸린 피아니스트를 신들린 듯 연기한 ‘샤인(1996)’에서 오스카 남우주연상을 받은 것을 필두로 영국아카데미영화상, 골든글로브상, 에미상과 토니상 등 마치 상을 수집하기라도 하듯 대량으로 상을 받았지만 볼품없는 생김새도 그렇거니와 매력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잭슨도 마찬가지. 진지한 역에서부터 코믹, 액션 히어로까지 마치 할리우드에 흑인배우라고는 그밖에 없는 것처럼 종횡무진해 왔지만 같은 흑인배우인 덴젤 워싱턴이나 하다못해 한 세대 전 배우인 시드니 포이티어에 비해서도 정말 아무런 매력도 없는 배우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그가 어떻게 그토록 많은 영화에 출연했는지 정녕 불가사의다.
이밖에도 스티브 부세미, 빌 머레이, 세스 로건, 마이크 마이어스, 폴 지아매티, 윌 페렐 등은 리스트에 등재된 인물로 충분히 수긍이 가는 배우들이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화를 내는 사람들이 혹시 있을지 몰라도.
그러나 다음에 거론하는 이들은 나도 이해하기 힘들다. 크리스토퍼 월큰, 윌렘 데포, 미키 루크, 그리고 결정적으로 로완 앳킨슨. 월큰의 그로테스크한 매력, 데포의 일그러진 영웅 같은 매력적 풍모도 그렇지만 교통사고와 권투 등으로 얼굴을 다치기 전과 후의 전혀 다른, 이질적인 생김새와 거기서부터 풍겨 나오는 미키 루크만의 매력은 대단하다(고 나는 느낀다).
‘이어 오브 더 드래건(1985)’이나 ‘나인 하프 위크(9 ½ Weeks,1986), ‘앤젤 하트(1987)’ 등에서 보여준 잘생긴 얼굴에 넘쳐흐르는 섹스어필이 강렬했던 젊은 시절의 루크와 ‘신 시티 1, 2편(2005, 2014)’의 괴물 같은 남자 마브로 나온 루크는 얼굴의 생김새와 관계없이 매력적이다.
또 ‘미스터 빈’으로 유명한 로완 앳킨슨은 그 희극적인 외모와 슬랩스틱한 몸짓, 그러면서도 잘 계산된 연기만으로도 그처럼 매력적인 코미디 배우가 없다. 어떻게 그에게 매력이 없다고 할 수 있을까.
하지만 내가 당연히 리스트에 낄만하다고 생각한 배우가 매력이 있다고 할 사람도, 반면 어떻게 그런 리스트에 올랐을까 하고 의아해한 배우가 과연 매력이 없다고 할 사람도 분명히 있을 터이니 그래서 ‘세상은 요지경’이다.
김상온(프리랜서 영화라이터)
[김상온의 영화이야기] (61) 매력 없는 스타들
입력 2016-03-14 1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