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SNS를 중심으로 확산된 사진입니다. 1997년 5월 세계 체스 챔피언 가리 카스파로프와 IBM의 슈퍼컴퓨터 딥블루가 대결하는 모습인데요. 딥블루도 직접 체스를 둘 수 없기 때문에 알파고처럼 인간의 손을 빌려 경기를 진행했습니다.
그런데 딥블루의 대리인이 꽤 낯익습니다. 이세돌 9단 앞에 앉아있던 황 박사의 외모와 흡사하죠. 옷차림과 머리 모양, 안경은 물론 무뚝뚝한 표정까지 비슷합니다.
황 박사가 알파고뿐 아니라 딥블루의 아바타였다는 의혹은 빠르게 번졌습니다. 황 박사는 이세돌 9단과 대결하며 ‘기계제국 노예 1호’라던가 ‘친알파’ ‘감염된 테란’ 등의 별명을 얻었는데요. 네티즌들은 “이미 1997년부터 기계의 편이었다”며 놀라워했습니다.
정말 황 박사가 딥블루의 대리인이었을까요? 사실 이 남성은 컴퓨터 공학자 펭슝수(Feng-hsiung Hsu)입니다. 딥블루를 만든 6명 중 한명이죠. 딥블루의 아바타가 아니라 ‘아버지’인 셈입니다.
펭슝수 교수와 황 박사의 닮은 점은 외모뿐만이 아닙니다. 펭슝수 교수는 1985년 체스를 두는 컴퓨터 ‘칩테스트’를 만들었고, 여기서 인간과 컴퓨터의 체스 대결이라는 프로젝트를 고안했습니다.
황 박사는 2010년 바둑 프로그램 ‘에리카’를 개발해 컴퓨터 올림피아드에서 금메달을 수상했죠. 그는 영국바둑협회 회원이자 아마추어 6단의 실력자이기도 합니다.
딥블루는 1996년 경기에서 4대 2로 카스파로프에게 패했습니다. 이듬해 5월 딥블루 개발자들은 프로그램을 업그레이드 해 카스파로프에게 재도전했습니다. 양측은 1승 3무 1패로 팽팽하게 접전했고 마지막 6국에서 딥블루에게 승리가 돌아갔죠.
카스파로프는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대결을 언급하며 “인공지능과 겨룬 최초의 기사이자 첫 패배를 기록했던 사람으로 기억되는 것은 나에게 영원한 영광이자 부담으로 남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또 같은 날 칼럼을 통해 “이번 바둑 결과가 우리의 미래를 좌우할 사건이 될 것만은 분명하다”고 밝혔습니다.
딥블루를 개발한 학자들은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대국을 어떤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을까요? ‘세기의 대결’이라 불리는 ‘구글 딥마인드 챌린지 매치’. 이제 단 한 경기만 남았습니다.
박상은 pse0212@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