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야끼니꾸 드래곤'의 하성광-남미정 "재일코리안의 삶이 가슴을 울렸어요"

입력 2016-03-13 23:30

일본 신국립극장이 재일코리안을 소재로 한 극작가 겸 연출가 정의신의 연극 3편을 공연하는 ‘정의신 3부작’을 지난 7일부터 선보이고 있다. ‘야끼니꾸 드래곤’(3월 7~27일)에 이어 2007년 초연된 ‘예를 들면 들에 피는 꽃처럼’(4월 6~24일)과 2012년 초연된 ‘파마야 스미레’(5월 17일~6월 5일).

이 가운데 첫 작품인 ‘야끼니꾸 드래곤’은 2008년 초연과 2011년 재공연 당시 서울에서도 공연되며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특히 주인공 용길과 영순 부부 역을 맡았던 신철진과 고수희는 초연 당시 한국 배우로는 처음 일본에서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요미우리 연극상 남녀 주연상을 수상하는 기염을 토했다.

세 번째 공연인 올해 ‘야끼니꾸 드래곤’은 배우들을 모두 새롭게 캐스팅했다. 가장 중요한 용길과 영순 부부 역에는 지난해 ‘조씨고아’로 각종 연극상 남우주연상을 휩쓴 배우 하성광과 연희단거리패 출신의 베테랑 배우 겸 연출가인 남미정이 출연한다. 지난 7일 첫 공연을 마친 뒤 만난 두 배우는 “좋은 작품에 출연할 수 있어서 기쁘다. 이렇게 공연 내내 관객을 울렸다 웃겼다 하는 작품은 정말 만나기 힘들다”면서 “대사 하나하나에 정의신 선생님의 숨결이 담겨 있다. 일본 관객들이 이 작품을 보면서 재일코리안의 삶을 이해하는데 한발 더 다가서는 것이 느껴진다”고 소감을 밝혔다.

하성광은 신국립극장이 ‘정의신 3부작’을 처음 기획하던 3년전 용길 역으로 캐스팅 제안을 받았다. 그는 “‘야끼니꾸 드래곤’의 한국 공연을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작품에 대한 얘기는 많이 들었기 때문에 제안을 받았을 때 바로 수락했다”면서 “일본어 공부하는게 쉽지는 않았지만 한번 해볼만 하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이어 “극중 용길의 경우 전쟁에서 왼팔을 잃은데다 아들이 자살하고 마는 비운의 아버지다. 내가 지난해 연기했던 ‘조씨고아’의 정영 역시 복수 때문에 친아들이 죽고 자신의 왼팔을 자른다는 점에서 두 아버지가 닮은 점이 많다. 그래서 ‘야끼니꾸 드래곤’ 출연이 운명처럼 느껴졌다”면서 “용길 역이 남다르게 느껴져서 그런지 공연이 끝나자 이상하게 눈물이 마구 쏟아진다. 덕분에 신국립극장 스태프들이 어쩔줄 몰라 했다”고 털어놓았다.

일찌감치 용길 역에 낙점됐던 하성광에 비해 영순 역의 남미정은 지난해 말 뒤늦게 결정됐다. 그동안 영순 역으로 추천된 배우들이 정의신의 마음에 쏙 들지 못했던 것이다. 남미정은 “정 선생님이 지난해 가을 내가 연출가로 작업하고 있던 대구에 직접 내려오셔서 영순 역을 제안하신 게 고마웠다. 선생님과 작업을 한번도 한 적도 없는데다 예전에 고수희 씨가 워낙 잘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작품에 대한 기대가 컸기 때문에 용기있게 덤볐다”고 말했다.

두 배우는 이번 작품을 출연하면서 재일코리안에 대해 많이 공부하게 됐다고 고백했다. 하성광은 “이번 작품을 앞두고 재일코리안에 대한 책들을 찾아서 읽었다. 그리고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원폭 당시 한국인 사망자가 4만명이나 된다는 것 등 여러 가지를 처음 알았다. 우리가 재일코리안의 존재에 대해 너무나 모르고 있었던 것 같다”면서 “지난해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 피해 이후를 다룬 연극 ‘배수의 고도’에 출연했는데, 극중 버려진 사람들과 재일코리안이 겹쳐져서 다가왔다”고 말했다.

남미정은 “‘야끼니꾸 드래곤’ 대본을 처음 읽었을 때 펑펑 울었다. 재일코리안의 삶이 너무나 생생하게 그려져 있었기 때문이다”면서 “지난 2013년 ‘물고기의 귀향’(이윤택 작)이란 작품을 연출한 적이 있는데, 일제시대 구룡포에서 태어난 일본인이 패전 후 일본으로 쫓겨가는 이야기를 담았다. 이번 작품을 하면서 단순히 재일코리안만이 아니라 고향을 떠나야만 했던 사람들의 안타까운 마음이 자연스럽게 다가왔다”고 설명했다. 이어 “하지만 이들의 삶을 너무 비극적으만 봐서는 안될 것 같다. 오사카의 재일코리안 시장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봤는데, 환하게 웃는 사람들의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야끼니꾸 드래곤’에서도 용길네 가족이 꿋꿋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일본 배우들과의 호흡에 대해 두 사람은 만족감을 드러냈다. 두 사람은 “아무래도 처음 연습할 때는 언어 문제 때문에 내 대사에 집중할 수 밖에 없었는데, 점차 말이 통하면서 상대를 더 많이 이해하게 되는 만큼 연기 호흡도 좋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도쿄=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