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다수의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이창호의 똑딱군화 탄생 비화가 새삼 화제가 되고 있다.
바둑 인터넷매체 '사이버오로(oro)'는 이 이야기가 바둑칼럼니스트 정용진 기자가 1994년부터 5년간 '정용진의 바둑수첩'이란 꼭지명으로 '스포츠서울'에 연재했던 바둑칼럼 중 독자들로부터 가장 뜨거운 반응을 얻었던 글이라고 밝혔다.
'세계바둑 영웅 넘버원인 이창호는 국가의 보물이니 계속 바둑으로 국위선양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한다'는 여론에 힘입어 이창호 9단은 병역혜택을 받았다.
이창호 9단은 1996년 8월 4주간 기초군사훈련을 받기 위해 신병교육대에 입영했다.
"연병장 선착순 집합!"이라는 호랑이 조교의 집합명령이 떨어지면 소대원들은 번개같이 연병장에 집합해야 한다. 그러나 이창호 훈병의 내무반은 맡아놓고 얼차려 기합을 받았다.
이창호 훈병이 군화(워커) 끈을 매지 못해 연병장에 나오지 못했기 때문이다.
조교는 "사회에서 신발끈도 한번 안 매 봤나?"라고 물었더니 이창호 훈병은 울상을 하고 "…한번도…전…운동화만 신어봐서…"라고 대답했다. 그것도 끈 달린 운동화가 아닌 찍찍이 운동화만 신었다고 했다.
이는 조훈현 9단의 부인 정미화 여사의 증언이 입증했다.
“내 제자로 들어올 때가 창호 나이 열한 살, 초등학교 4학년 생이었다. 내제자로 받고 1~2년간은 손수 목욕을 시켰다. 머리를 혼자 못 감는 것은 물론 세수조차 제손으로 제대로 못했다. 중략. 운동화 끈이 한번 풀어지면 며칠이고 풀린 채로 지렁이 매달고 다니듯 신고 다녔다. 그래서 아예 끈을 묶을 필요 없는 찍찍이 신발을 사 신겼다."
결국 생각다 못한 조교가 군화에 '똑딱단추'를 달아주는 기발한 아이디어를 내기에 이르렀다. 이 똑딱군화를 만드느라 담당조교는 새빨간 토끼눈이 되도록 밤새 한 땀 한 땀 바느질했다는 후일담이 전해졌다.
대한민국 군대 역사에, 세계 군사상 똑딱단추 달린 군화를 신고 훈련받은 병사는 아마도 이창호 9단이 처음이자 마지막일 것이라며 정 기자는 칼럼을 마쳤다.
이 글을 본 네티즌들은 "정말 택이 모델답다" "천재들은 어느 한쪽으로는 대개 부족하던데" "무언가를 배울 나이에 바둑을 집중적으로 배워서 그렇죠" "아인슈타인도 신발끈 풀어지면 손녀가 묶어줬다고" 등의 반응을 보이며 독특한 정신세계에 감탄했다.
최영경 기자 ykcho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