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계를 대표하는 이세돌(33) 9단이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 알파고에 또 다시 패함으로써 바둑 패러다임에 큰 변화가 예상되고 있다. 알파고가 기존 정석을 다소 무시한 행마로 3연승을 거뒀기 때문이다.
이번 대국 영어 해설자이자 서양 기사로서는 유일하게 입신(프로9단)의 경지에 오른 마이클 레드먼드 9단은 3차전이 끝난 12일 “바둑은 새로운 이론을 발견해가면서 지금까지 발전돼 왔다”며 “알파고로 인해 새로운 바둑 이론이 나올 수 있고, 이를 통해 바둑의 3차 혁명이 일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 자신도 알파고의 엄청난 실력에 충격을 받은 모습이었다.
실제로 알파고는 기존 정석을 벗어난 ‘이상한 수’를 여러 차례 보여 왔다. 해설자들은 초반에는 “아마추어 같은 수”라며 알파고의 실수라고 지적했지만, 결과적으로 그 수는 알파고가 승리하는 데 보탬이 되는 묘수가 됐다.
가장 대표적인 수가 제2국의 37수다. 알파고는 우변 백돌에 입구자로 걸쳤다. 이 수는 지난 1980년대 ‘우주류’를 창안한 일본 다케미야 9단과 비슷하지만, 집짓기가 불리해 최근 바둑계에선 사실상 사라진 수였다. 바둑 초보자에게조차 해서는 안 되는 수였다. 당시 해설을 하던 김성룡 9단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수로, 프로라면 절대로 할 수 없는 수”라며 충격을 받은 모습이었다. 하지만 알파고는 거뜬히 불계승을 차지해고 그 ‘이상한 수’는 묘수가 됐다. 당시 2번기에서 알파고가 둔 흑 15수도 프로라면 두지 않는 수였다.
알파고는 4차전에서도 초반 흑23 수로 백의 좌하 화점에 붙였다. 해설을 하던 송태곤 9단은 “학생이라면 해서는 안 될 악수였다”며 놀라워했다.
알파고가 이처럼 매 대국에서 승리를 거두자 기존 인간의 상식으로 정석이라고 하는 것들에 대한 생각들이 바뀌는 모습이다.
이 9단의 스승인 권갑용 8단은 “알파고는 그동안 요즘 유행하는 스타일이나 류가 하나도 나오지 않았다”며 “앞으로 가르치는 룰이나 규칙도 좀 바꿔야겠다”고 말했다. 바둑 전문가들은 “지금까지 바둑은 고정관념에 빠져있었다”며 “알파고와의 경기를 통해 패러다임 자체가 바뀔 수 있다”고 전망했다.
송태곤 9단도 “인간이 지난 3000년 간 바둑을 둬오면서 당연시했던 행마나 모양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다”며 “그동안 악수라고 안둔 수가 악수가 아닐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대국으로 바둑의 기술 발전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이 같은 주장에 대해 섣부른 전망이라는 지적도 있다.
이 9단은 3국에서 패한 뒤 자신의 패배가 바둑의 정석에 변화를 가져올 정도로 혁명적인가라는 질문에 “그렇지 않다”며 “이세돌이 진 것이지 바둑이 진 것이 아니다”라고 강변했다. 그는 “알파고가 놀랄 정도로 좋은 프로그램이지만 신의 경지는 아니다”면서 “분명 약점이 있기 때문에 바둑계에 메시지를 던질 정도는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비록 연패를 당해 큰 충격은 받았지만 아직까진 인간이 인공지능에 지지 않는다는 자존심의 표현으로 보인다.
하지만 프로바둑계는 이번 대국이 한동안 침체됐던 바둑 연구에 불을 당기는 계기가 되길 바라고 있다. 그동안 프로바둑계는 큰 상금이 걸린 국내·외 대회가 많아져 바둑 연구보다 승패에 집착하는 풍조가 만연해 있었다는 지적이 많았다.
서완석 체육전문기자 wssuh@kmib.co.kr
알파고 바둑 패러다임 바꿀까
입력 2016-03-13 14: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