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조 회비 냈는데 여행사 고객이라니…'

입력 2016-03-11 15:49

상조업체를 차려 놓고 회원 납입금 수십억원을 곶감 빼먹듯 빼내 쓴 업자가 재판에 넘겨졌다. 검찰은 애초 상조업체 설립 의도가 돈줄 마련에 있었던 것으로 본다. 문제의 상조업체는 가입 회원의 소속을 다른 법인으로 몰래 바꿔치기 해 의무적으로 예치해야 할 선수금 규모도 축소했던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에 따르면 고모(54)씨는 2010년 5월 상조업체 C사를 세운 뒤 경영상태가 부실한 다른 상조업체 4곳으로부터 회원들을 넘겨받아 사업을 시작했다. 자신이 운영하던 여행사 C항공과 L호텔이 자금난을 겼을 때였다.

고씨는 회원 선수금을 빼내 같은 해 12월부터 1년 간 아무런 담보도 잡지 않은 채 C항공 측에 모두 8억5000만원을 빌려 줬다. 회수는 없었다. L호텔 숙박권 6억4000만원어치도 사줬다. 해당 숙박권은 사용기한이 6개월에 불과한 데다 이미 C사로 이관된 회원들에게 숙박권을 지급할 이유도 없는 상황이었다고 한다. L호텔로 입금된 상조회원들의 돈은 호텔 직원 인건비, 고씨의 채무 변제 등에 쓰였다.

고씨는 근무한 적이 없는 자신의 부인과 사촌동생을 회사 이사로 등재시켜 급여 명목으로 1억3000여만원을 횡령하기도 했다. 법인카드 7개를 갖고 다니면서 445만원짜리 모피 코트를 사는 등 380차례 총 6700여만원을 쓰고, 고객 돈 3억원을 개인 투자에 전용한 혐의도 있다.

그는 상조회원 선수금의 일정 부분을 금융기관에 의무적으로 예치하도록 한 규정을 피해하기 위해 회원수와 선수금 총액을 허위로 축소하기도 했다. 2012년 11월 C사를 분할해 별도의 여행법인을 설립한 뒤 기존 회원들의 소속을 여행법인으로 몰래 바꿔버리는 수법을 썼다. 신규 가입하는 회원들은 아예 여행법인 소속으로 가입시켰다. 이 여행법인은 ‘후불제 크루즈여행’ 등을 내세워 회원 가입자들에게 월 일정 금액을 납입 받았다가 향후 여행 경비의 50%를 지원하는 방식의 영업도 했다. 여행상품을 가장한 무등록 상조서비스라는 게 검찰 판단이다.

C사는 결국 1만5000여명으로부터 134억원의 누적선수금을 납입 받고도, 그 2.85%에 불과한 3억8000만원만 예치기관에 보전했던 것으로 조사됐다. 할부거래에관한법률은 2010년 3월부터 매년 10%씩 보전 비율을 늘려 2014년 3월부터는 50%를 예치하도록 하고 있다. 규정대로라면 고객 보호 차원에서 67억원이 은행에 보전돼 있어야 하는 것이다. 검찰은 “C사의 행태는 할부거래법의 취지를 무색케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상조회원들은 자신들의 소속이 여행법인으로 바뀌어 선수금 보전이 안 된다는 사실도 모른 채 매월 회비를 냈지만, C사는 결국 지난해 7월 폐업했다.

서울중앙지검 첨단범죄수사2부(부장검사 이근수)는 고씨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과 업무상횡령, 할부거래법위반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고 11일 밝혔다.

검찰 관계자는 “상조회원의 소속을 임의로 바꿔 선수금 보전의무를 면탈한 수법을 적발한 최초 사례”라고 말했다. 이어 “상조업계의 선수금 관리가 경영자의 양심에만 맡긴 채 선수금을 허위 신고하거나 부정하게 사용하는 것에 대한 관리·감독이 사실상 어려운 상태”라고 지적했다.

지호일 기자 blue5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