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매모호하고 부정확한 치매 진단, 이대로 둬도 괜찮은 것일까. 정부가 치매종합관리대책을 세울 때도 이런 통계를 참고로 할 터이므로 큰일은 큰일이다.
초로기(初老期)치매, 특히 알츠하이머 치매가 20대 이하 청년층과 소아청소년층에도 통계상 적잖게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의학계는 전 세계적으로 19세 이하 소아청소년이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은 예가 전무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분당서울대병원 신경과 김상윤 교수팀이 몇 년 전 보고한 33세 여성 환자가 최연소 사례다.
초로기 치매란 노인성치매 연령보다 이른 초로기(45~60세)에 갑자기 인지능력이 떨어지는 것으로, 알츠하이머 치매가 대표적이다. 특히 여성에게서 많이 나타난다. 처음에는 건망증이 심하고, 차차 기억력 이해력 판단력 계산능력 등이 어둔해지면서 치매 증상이 점점 뚜렷해진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은 2006년부터 2015년까지 치매질환 세부질환별 연령별 성별 진료실적을 조사한 결과 국내 병의원에서 알츠하이머 치매 진단을 받고 치료를 받은 30대 이하 환자가 연평균 21.8명씩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고 11일 밝혔다.
그간 연도별 환자 발생 수는 2006년 14명, 2007년 13명, 2008년 17명, 2009년 16명, 2010년 12명, 2011년 15명. 2012년 40명, 2013년 37명, 2014년 28명, 2015년 26명 등이었다. 이는 일반적으로 의학계에서 초로기 치매로 보는 40~60세 사이 발병보다 더 빨리 시작되는 초(超)초로기 치매 발생도 적잖다는 얘기다.
더 심각한 문제는 10대 이하 소아청소년들도 이런 ‘초초로기’ 치매 발병 위험으로부터 벗어날 수가 없는데다가 전 세계적으로 소아청소년한테선 유례가 없는 알츠하이머 치매가 사실 여부아 관계없이 상당수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건보공단 자료에 따르면 2006년과 2007년 각각 3명과 1명이 발생했고, 2010년 3명, 2011년 2명, 2012년 4명, 2013년 6명, 2014년 4명, 2015년 7명이 ‘조기발병 알츠하이머병에서의 치매’ 또는 ‘상세불명의 알츠하이머병에서의 치매’, ‘기타 알츠하이머병’, ‘상세불명의 알츠하이머병’ 진단을 각각 받았다.
분당서울대병원 신경과 김상윤 교수는 “40세 미만 젊은이와 10대 이하 소아청소년층의 치매 발병은 갑상선기능저하증, 경막하출혈, 뇌수종, 양성 뇌종양, 비타민 B12 결핍 등 다른 기저질환의 합병증으로 생기거나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발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한마디로 소아청소년치매나 청년치매는 대부분 사고나 특정 질병에 의한 후유증 또는 합병증으로 생기는 소위 ‘속발성(2차성)’ 치매가 대부분이지 알츠하이머 치매가 현실적으로 발견될 수가 없다는 지적이다.
유전 경향(가족력)이 초로기 알츠하이머 치매 환자의 약 30%에서 나타나긴 한다. 하지만 유전자 검사를 통해 그것을 일일이 확인하지 않는 게 의료계의 불문율처럼 돼 있다. 선천적으로 알츠하이머를 유발하는 특정 변이유전자를 부모로부터 물려받아 갖고 태어났다고 해서 모두 장차 알츠하이머 치매에 빠지는 것이 아닌 까닭이다. 김 교수는 “설혹 유전자 검사를 통해 대물림 사실을 알 수 있다고 해도 유전자 이상을 수리해 발병을 막을 방법도, 발병 후 마땅히 치료할 약도 없는 상태여서 확인할 필요가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더욱이 우리나라의 경우 이 알츠하이머 유발 유전자 이상을 제대로 검사할 수 있는 기관도 분당서울대병원 뿐이다. 그러나 김 교수는 “분당서울대병원에선 몇 년 전 아버지가 치매에 걸린 가족의 특별한 요청으로 딱 두 차례 33세, 34세 여성의 유전자 이상 여부를 각각 확인해준 적이 있을 뿐”이라고 했다.
그런데도 40세 미만, 심지어 10대 이하 소아청소년 알츠하이머 치매 진단 환자가 통계상 해마다 나타나게 된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김 교수는 크게 두 가지 가설을 제기했다. 첫째는 의사가 치매 유사 증상을 보이는 환자에게 알츠하이머 약을 쓰기 위해 일부러 그런 진단을 붙였을 가능성이다. 우리나라 보험급여체계는 혈관성 치매나 파킨슨병에 의한 치매, 교통사고 후유증에 의한 인지기능장애에 알츠하이머 약을 쓰고 진료비 및 약제비를 청구하면 삭감하도록 돼 있다. 이를 피하기 위해 의사가 알고도 비(비)알츠하이머 치매 환자에게 알츠하이머병에 의한 치매란 진단명으로 보험진료비를 청구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가능성에 대한 심증은 다음의 둘째 가설에서 더욱 굳건해진다.
두 번째 가설은 ‘기타 알츠하이머’, ‘상세불명의 알츠하이머’ 등의 질병분류코드명에서 알 수 있듯이 치매인지, 아닌지가 분명하지 않을 때 ‘부당청구 오명’ 또는 ‘보험진료비 삭감 위험’을 피하기 위한 출구 전략으로 의사가 기타 또는 상세불명의 알츠하이머를 진단명으로 선택했을 수 있다는 것이다. 건보공단 자료를 보면 30대 이하 초초로기 치매 환자 중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은 청년과 소아청소년 환자들의 거의 대부분이 기타 또는 상세불명의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은 것으로 돼 있고, 이들이 그동안 치매 진단을 받고 치료를 받은 환자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상태다.
아주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홍창형 교수는 “기타 또는 상세불명이란 표현은 한마디로 잘 모르겠다는 뜻”이라며 “대부분 환자가 호소하는 증상이 치매에 의한 것인지 불확실할 때 편의상 붙이는 진단명이 아닌지 의심이 가는 대목”이라고 지적했다.
어느 경우든 부정확한 통계를 낳게 되고, 세계에서 유례가 없고, 있을 수도 없는 소아청소년 알츠하이머 치매 환자까지 만들어내는 사태가 생기는 원인이 된다는 점에서 개선이 필요한 문제임에 틀림없다.
이기수 의학전문기자 kslee@kmib.co.kr
못믿을 치매 통계, 세계 유일 소아 알츠하이머 환자 만들었다
입력 2016-03-11 20: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