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표 교수 연극이야기]33. 대구 상공을 오른 권기옥의 삶 ‘비상’

입력 2016-03-11 08:08
대구시립극단이 제 36회 정기공연으로 우리나라 최초 여성비행사이자 독립운동가인 권기옥(權基玉·1901~1988) 삶이 대구 상공으로 날았다. 연극 ‘비상’(작, 안희철, 연출 최주환)으로 부활했다. 평안남도에서 태어난 귄기옥의 파란만장한 삶의 연대기는 우리나라 최초 여성비행사라는 것 외에도 을사늑약과 한일병합을 거쳐 고종황제 승하로 점화된 3·1만세운동에 적극 뛰어들었다. 평남도경 폭파사건을 계기로 임시정부가 있는 상해로 밀항해 20세 이후부터 1948년(48세)에 고국으로 돌아오기까지 그녀의 삶은 중국으로 좁혀진다.

‘중국운남비행학교’를 졸업하고 중국공군으로 비행기에 올라서도 그녀의 꿈은 조선총독부를 폭파시키겠다는 일념으로 중국벌판에서도 독립운동에 헌신했다. 민족애(愛)를 가슴으로 품고, 빼앗긴 나라를 되찾아야 한다는 절박함으로 암울한 시대의 두터운 터널을 뚫고 나온 그녀의 삶은 8·15 해방과 6·25전쟁 그리고 근·현대사의 현실의 한복판을 걸어오면서 88세로 생(生)을 놓을 때 까지 대한민국의 모난 역사의 길에 서 있었다.



권기옥은 만주벌판에서 항일독립운동을 이어가던 대구출신 이상정(李相定·1897∼1947)과 중국 운남항공학교를 졸업하고 26세에 결혼식을 올린다. 이상정은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의 민족시인 이상화의 형이다. 시인 이상화에게 권기옥은 형수가 된다. 연극 ‘비상’ 은 올해로 3·1운동 97주년이 되는 해에 대구시립극단에 의해 지역소재 발굴프로젝트로 올려졌다. 그동안 극단 ‘초이스’를 통해 안희철 작가와 연극·뮤지컬에서 콤비를 이루어온 최주환 연출은 지난해 대구 시립극단 예술 감독으로 돌아오면서 연극공연을 중심으로 운영을 해온 공연시스템을 뮤지컬 도시 대구 분위기에 탑승했다. 최주환 연출은 그동안 꾸준하게 뮤지컬과 연극을 연출해온 그의 시선을 시립극단으로 동시에 탑승시키며 변화를 주고 있다. 연출은 귄기옥 삶의 역사의 소환을 연극으로 삶을 투영하는 ‘비상’과 그의 인생의 궤적을 뮤지컬로 그려지는 ‘비갠 하늘’(3.11~3.14·대구문화예술회관 비슬홀) 로 각기 다른 무대의 형상화로 권기옥을 중심으로 하는 역사를 담담하게 소환하고 있다.



연극 비상과 귄기옥 삶



귄기옥은 1901년 평상북도 출생이다. 어린 시절에는 마을 상공(上空)을 나는 미군 비행기를 보고 비행사의 꿈을 키웠다. 1남4녀의 둘째로 태어난 그녀는 총명했다. 가정형편으로 늦게 학업을 이어가면서 평양 숭의여학교 3학년에 편입한 후 비밀 항일조직인 ‘송죽결사대’에 가입한다. 민족애가 가슴 깊게 박혀진 시기다. 19세 되던 해 1919년 3·1만세운동이 일어나면서 암울한 시대 한복판에 서 있던 그녀의 민족애는 뜨거워져 갔다. 일본 선생의 눈을 피해 학교 지하 강당에서 동료들과 숨죽이고 나라 잃은 비극을 태극기를 그리면서 3·1만세 운동이 점화 될 수 있도록 적극동참하면서 고향 땅에서 항일독립운동에 적극 뛰어든다. 이 시기에 상해에 임시정부가 세워지고 그녀는 독립운동 자금을 모으기 위해 임시정부의 독립운동을 적극적으로 도왔다. 귄기옥은 임시정부의 공채 판매 등으로 독립운동 자금을 모으면서 6개월간의 옥고를 치르고 일본경찰에 의해 심한 고문을 받게 된다.



그녀의 나이 20세(1920)가 되던 해에 권기옥은 브라스밴드를 결성하고 임시정부 산하 청년단과 독립운동에 적극적으로 가담하게 된다. 이들과 함께 평안남도 도경을 폭파해 좁혀오는 일본경찰의 포위망을 뚫고 중국으로 건너간다. 이후부터가 권기옥의 삶이 비행사로 변화하는 시기다. 정착초기 중국 생활에서 언어의 장벽을 뚫지 못했다. 비행사가 되려고 했던 치열한 권기옥의 총명함과 의지로 결국에는 언어의 장벽을 넘고 23세(1923)에 중국 운남항공학교 1기생으로 입학하는데 성공하게 된다.

우수한 성적으로 운남비행학교를 졸업한 뒤에도 상공을 날며 일본총독부를 파괴하려는 계

획을 세웠지만 실현되지는 못했다. 이상정과는 26세에 중국에서 독립운동을 하던 시기에 만나 결혼을 하게 된다. 이후 중·일전쟁이 터지면서 이상정과 권기옥은 국민정부군 공군의

기밀을 일본에게 넘겼다는 누명을 쓰고 8개월간 옥고를 치르게 된다. 이상정과 삶을 동승한

것은 20년 세월이다. 중국에서 8·15 해방을 맞고 1947년 이상정은 어머니의 사망전보를 받고 고국으로 돌아간 두 달 만에 뇌출혈로 사망하면서 두 사람의 인연은 비상하지 못했다.

이후 권기옥은 1948년 그녀의 아니 47세 때 고국으로 귀국해 평생을 홀로 지내면서 공군을 창설하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85세에서 전 재산을 장학기금으로 내놓고 권기옥의 나이 88세(1988)에 그녀는 하늘로 올랐다.



역사의 소환과 모호함



연극 ‘비상’은 귄기옥이 평양숭의여학교 재학시절 3·1만세운동 시기를 기점으로 점화된 그녀의 민족애와 독립운동, 비행사의 꿈, 그리고 평남도경 폭파 사건으로 중국으로 밀항, 운남 비행학교시절, 중국에서의 항일독립운동, 선전비행을 통한 일본총독부 폭파계획, 이상정과의 만남과 결혼, 민족시인 이상화의 만남, 중일전쟁(1937)이 일어나기 직전 일본에 중국기밀을 넘겼다는 협의로 체포돼 8개월간의 옥살이를 하고 무혐의로 석방되던 해까지 역사의 시간을 무대로 소환하고 있다.



무대는 비행기의 이미지로 귄기옥의 꿈을 상징화 한다. 어린 귄기옥 내면 깊숙이 자라난 비행사의 욕망은 암울한 역사의 시대와 중첩된다. 상공을 날아 일본총독부를 폭파해 나라를 되찾고 싶다는 민족애는 내면의 강렬한 독립의 욕망이다. 뒤쪽으로는 좌, 우를 연결하는 널찍한 돌담으로 길을 연결하면서 역사의 통로를 연결 한다.



연극비상을 연결하고 있는 극적 서사는 귄기옥이 숭의여학교 재학시절 비밀항일조직인 송죽결사대와 브라스밴드 활동과 3·1만세운동, 일본경찰 다나까와의 악연과 고문, 임시정부 공채 판매 활동을 통한 독립자금 모금 활동, 권기옥의 시선으로 전개되는 독립운동의 역사적 과정과 이면의 삶, 평남도경 폭파사건, 중국밀항, 상해 임정요원들과 독립운동, 중국 운남항공학교 시절, 일본총독부와 천왕궁의 폭파계획, 비행사 귄기옥의 꿈, 중국공군의 활동, 이상정과의 결혼과 민족시인 이상화의 만남 그리고 이상정과 중국에서 옥고를 치르고 출소하던 날까지를 무대로 투영한다.



연출은 귄기옥 삶의 역사적 서사들을 중심적인 극적구조로 묶어 하나의 극적 사건을 통해 역사를 확장 시키지 않고 권기옥의 평전적 삶을 중심으로 독립된 장면으로 분할한다.

삶의 연대기로 연결해 무대로 투영하는 방식을 취한다. 역사적 소음들과 비행사가 되려는 권기옥의 꿈은 이미지로 중첩 시키면서 귄기옥(김경선 분)의 20년의 삶을 담담하게 쫒아간다.



안희철 작가는 극 도입을 1930년대 중국 난징으로 형 이상정과 형수 권기옥이 투옥 후 시인 이상화와 가족들이 재회하면서 사진촬영을 하는 장면으로 극의 흐름을 연결하고 있지만 각색을 거치면서 이 장면을 들어내고 어수선한 1919년 평양장터로 이동한다. 상해임시정부 포고문을 독립운동가와 비밀리에 연대를 형성하는 장면으로 1919년 3·1 만세운동으로 점화된 상황을 뛰어 넘어 비밀결사대를 조직한 후에 평남도경 폭파계획으로 중국으로 밀항을 하기 전까지 권기옥은 일본경찰 다나카(천정락 분)의 악연이 시작된다.

상해 임시정부 포고문을 전달했다는 협의로 체포되어 다나카에게 고문을 받는 장면은 시대의 잔인함, 갈등의 대립구조, 시대의 역사성을 함축적으로 도려내야 하는 시선이 담겨 있어야 하는데도 다소 점잖은 태도로 장면에 이음새를 만든다. 권기옥 역을 맡은 김경선은 감정의 극적 리듬과 템포감의 온도를 높이지 못하고 무대를 비행한다.



역사의 한 복판에 서 있는 권기옥 삶을 동시대로 호출하는 것은 평면적인 서사구조를 탄탄한 극적구조로 연결고리를 형성해야 한다. 연출의 날카로운 시선으로 극을 쌓아올리고 풀어내지 못하면 삶의 연대기만 들어 올릴 수 있다. 삶의 평전에 의존한 소재는 연극적인 연결고리로 확장되지 못하면 극은 함정에 빠질 수 있다. 시대의 역사성을 동시대로 일으켜 세우기 위해서는 명확한 선 긋기기 필요하다. 비행사가 되어서 폭탄을 싣고 상공을 날아 일본총독부와 일본천왕궁을 폭파시키겠다는 야심과 꿈, 시대의 역사성과 인물의 고뇌와 내면, 연시대와 극적 갈등의 대립, 이상정과 이상화 그리고 권기옥으로 형성된 동시대 삶에서 쏟아 나오는 시대의 절망과 아픔 온도가 모호해 질 수 있다. ‘민족애’를 품어내는 온기의 연료가 떨어지니 이번 권기옥의 비행은 박제된 역사의 안전지대로만 비행하고 있다.



연극 ‘비상’으로 점화되고 있는 지역소재 발굴프로젝트 공연릴레이는 대구시립극단이 공익적인 공연프로그램을 개발한다는 차원에서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앞으로도 적극적인 소재 개발을 통해 대구시민과 소통될 수 있는 연극·뮤지컬을 제작할 수 있는 더욱 탄력적인 기반환경으로 이끌어 갈 필요가 있다. 대구시립극단은 올해 겨울 제39회 정기공연으로 1954년대 대구 ‘진 골목’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김원일 작, ‘마당 깊은 집’(12월 2~3일까지·대구문화예술회관 비슬홀)을 연극으로 만난다.



대경대 연극영화과 교수(연극/공연예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