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 대형병원의 레지던트 2년차 의사가 23세 여성의 대장내시경 중 주요 부위를 만진 혐의로 검찰에 기소됐습니다. 보건복지부는 의료인 면허관리제도 개선안을 발표하며 “중대한 비도덕적 진료행위를 한 의사의 면허를 취소하겠다”고 밝혔는데요. 수면내시경 등 진료 과정에서 환자를 성추행해 벌금형 이상을 선고받은 의사의 면허가 박탈될지 결과가 주목됩니다.
서울동부지검 형사1부(부장검사 김동주)는 서울 강남 대형병원의 내과에서 근무하는 A씨를 강제추행 혐의로 기소했다고 10일 밝혔습니다. A씨는 지난해 5월 직장 수지 검사 도중 환자 B씨(23·여)의 주요 부위에 손가락을 집어넣어 추행한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의사는 “젤을 바르다 미끄러졌을 뿐 고의는 없었다”고 혐의를 부정했습니다.
여성 대장내시경만 원했던 50대 의사
지난 2일에는 서울중앙지법 조의연 영장전담부장판사가 서울 강남의 의사 양모(58)씨에 여성 간호사가 곁에 있는데도 수면내시경을 받는 여성들을 상습 성추행한 혐의로 구속영장을 발부했습니다. 양씨는 2010년부터 4년간 서울 강남 H의료재단 내시경 센터장으로 재직하며 여러 명의 여성 고객과 간호사들을 성추행한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사건을 제보한 간호사들은 “양씨가 수면 내시경을 받는 여성 고객들의 주요 부위에 손가락을 넣는 등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의 추행을 일삼았다”며 “여성 고객들의 항문 등 주요 부위를 만지고 가리키며 옆에 있는 간호사들에게 ‘예쁘다’는 식으로 엽기적 발언을 했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가격 할인 주장하며 성추행한 성형의, 183명 여성 몰카 찍은 의전생
서울중앙지검 여성아동범죄조사부(부장검사 김덕길)은 1월 12일 서울 강남의 의사 C씨(65)를 성형상담을 받으러 온 20대 여성 환자를 성추행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습니다. 의사는 TV 프로그램에 출연하거나 칼럼을 쓰는 유명의사였는데요. 자신의 병원을 찾은 환자 D씨(22)에게 “수술비가 1500만원인데 초상권에 동의하고 600만원으로 할인해주면 나에게 뭘 해줄 거냐. 밖에서 5번 만나면 깍아 줄게”라며 허벅지 등 신체 일부를 만진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또 2014년 1월부터 8개월간 신천역 등 서울시내 지하철역에서 183여명 여성의 치마 속 몰카를 찍은 의전원생은 183명의 몰카를 직고도 검찰로부터 기소 유예를 선고받아 논란을 일으켰습니다. 당시 검찰은 “의전원생의 범죄가 우발적이었고 잘못을 반성한다”는 이유에서 기소 유예를 선고했습니다.
보건복지부, 면허관리제도 개선안 발표하며 성범죄 척결 의지
한 달에도 수차례 일어나고 있는 의사의 성추행 문제가 더욱 주목받는 이유는 9일 보건복지부가 벌금 선고를 받는 의사의 면허를 취소하도록 의료인 면허관리제도 개선안을 발표했기 때문입니다.
이전에는 의료법이 금고이상의 형을 받을 때만 의사 면허가 취소돼 성범죄를 저지르는 의사들이 집행유예 대신 벌금형을 선고받는 일이 비일비재했습니다. 전남 지역의 한 의학전문대학원생(의전생)이 데이트 폭력을 저지르고도 벌금형을 선고받은 것이 그 예입니다. 판사는 금고형인 집행유예를 받을 경우 의전원에서 제적될 위험이 있다며 벌금형을 내렸습니다.
논의는 있었으나 쉽지 않은 전문직 성범죄 예방
국회에서도 이전부터 벌금형 이상을 받은 의사들의 면허를 취소해야한다는 주장이 있었습니다. 더불어민주당 원혜영 의원은 구금이 아닌 벌금형일 때도 면허를 취소할 수 있도록 하는 의료법 개정안을 발의했습니다.
이 개정안은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위에서 “다른 전문직 종사자들과의 형평성, 성범죄 외의 흉악범죄 경력과의 관계 등에 대한 면밀한 검토가 필요할 것”이라는 이유에서 반려됐습니다. “금고이상 형을 받은 성범죄자에게 결격사유를 둔다”는 공무원법이 판단의 기준이 됐습니다.
성범죄 예방 위해 스스로 개혁 나선 공무원 조직
하지만 지난해 12월 22일 인사혁신처(혁신처)가 직위나 직무를 이용해 부하 직원 등에 성추행 범죄를 저질러 300만원 이상 벌금형을 선고받은 공무원을 당면퇴직하는 국가공무원법 개정안을 통과시키며 전문직종의 성범죄 처벌 기준이 완화되는 시초를 마련했습니다.
당시 국민일보는 “성범죄 공무원, 벌금형에도 퇴출… 의전생은 183명 몰카도 ‘무죄’” 기사를 쓰며 공무원 조직이 스스로 개혁하며 전문직종의 성범죄 처벌 기준 강화에 앞장 섰다고 평가한 바 있습니다.
보건복지부의 진정성 어린 개혁 의지… 쉽지만은 않을 것
하지만 보건복지부의 성범죄 척결을 위한 개혁 시도는 쉽지만은 않을 전망입니다. 수도권의 성형외과 의사 E씨는 여성 환자를 성추행해 지난해 말 벌금 500만원을 선고받았지만 버젓이 진료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지방자치단체가 병원폐쇄 명령을 내렸음에도 위헌법률심판제청 등을 내며 버틴 것입니다.
보건복지부의 개선안은 이 경우 벌금 선고와 동시에 의사면허를 취소토록 했습니다. 그럼에도 보건복지부의 안의 실효성에는 의문이 제기됩니다. 의료인의 성범죄에 환자들이 스스로를 방어할 방법이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환자들이 성추행을 당한다하더라도 수면내시경처럼 마취를 하거나 의식이 없는 경우 CCTV가 없는 이상 이를 알아챌 방법이 전혀 없습니다. 또 청진기를 대는 척 하며 슬쩍 가슴을 만지는 등의 성추행과 정상적인 진료를 구분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일부 의사들은 “우리를 잠재적 성범죄자로 몰아세운다”며 의료법 개정안을 낸 원 의원의 전 직장인 풀무원을 상대로 불매운동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잇따르는 의료계의 성범죄를 수수방관할수록 피해를 입는 것은 선량한 의료인들입니다. 의료계의 진정성 있는 자구책이 필요할 것입니다. 또 수술실내 CCTV 설치를 의무화 한다면 무고한 성추행 고소를 받은 의료인들을 구명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잘못이 없는 의료인들이 오해를 받지 않도록 다양한 방법에서 건전한 시스템을 구축하는 게 필요할 것입니다.
김동우 기자 lov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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