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진 새누리당 의원이 아동 성폭행 피해자를 선거에 이용했다는 논란에 다시 휩싸였습니다. 선거사무실 개소식에서도 ‘조두순 사건’ 피해 아동의 사진을 사용했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거든요. 신 의원 측 해명은 현수막 사건과 똑같습니다. “생각이 짧았다.”
선거 양천구에 출마한 신 의원은 지난 1월 열린 선거사무소 개소식에서 ‘신의진의 약속’이라는 영상을 내보냈습니다. 이 영상에는 조두순 사건 피해 아동의 입원 당시 사진이 짧게 등장합니다. 신 의원이 피해 아동의 주치의였다는 사실을 홍보하기 위해서죠.
신 의원 측은 이 사진을 사용하기 전 피해자 가족에게 허락을 구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에 대해 신 의원 관계자는 “방송에 이미 나온 것을 홍보대행업체가 캡처해서 쓴 것”이라며 “생각이 짧았던 것은 불찰”이라고 밝혔습니다.
‘데자뷰’가 느껴집니다. 앞서 신 의원은 ‘나영의 주치의’라고 쓰인 홍보 현수막 논란에 대해서도 “생각이 짧았다”고 해명했습니다.
조두순 사건은 2008년 12월 조두순(당시 56세)이 8세 소녀 나영이(가명)를 잔혹하게 성폭행한 사건입니다. 한때 ‘나영이(가명) 사건’으로 불렸지만 피해자에게 2차 피해를 입힐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가해자의 이름으로 바꿔 불렀습니다. 헌데 다른 사람도 아닌 주치의가 피해자의 이름을 홍보용으로 내세웠으니 눈살을 찌푸리는 게 당연했습니다.
문제의 현수막은 언론에 보도된 후 수정됐습니다. ‘나영이 주치의’라는 문구 위에 다른 문구를 덧대었죠.
신 의원은 페이스북를 통해 “나영이 아버님께서 ‘나영이’라는 이름이 희망의 이름으로 사용되기를 바라셨다”고 해명했습니다. 나영이의 부친의 친필 편지까지 첨부했습니다. 하지만 피해자 부모를 앞세운 사과로 비난 여론을 잠재우긴 어려웠습니다.
중요한 건 현수막 사건이 터지고 나서야 신 의원이 ‘문제’를 깨달았다는 점입니다.
사실 신 의원의 불찰은 지난해 12월에도 있었습니다. 신 의원은 새누리당의 아동학대폭력조사위원회 위원장입니다. 이 위원회는 지난해 12월 인천에서 발생한 11세 소녀 학대·감금 사건을 계기로 구성됐습니다.
당시 학대 피해 아동의 심리진단을 맡았던 신 의원은 피해 아동이 그린 그림을 언론에 공개했습니다. ‘의사’가 아닌 ‘정치인’으로서 말이죠.
물론 이 그림이 사건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는 데에는 도움이 됐을 겁니다. 많은 이들이 3㎝ 남짓하게 그려진 집을 보고 가슴 아파했으니까요. 하지만 환자의 진료자료를 공개하는 것 역시 신 의원이 의료인이 되면서 했던 ‘히포크라테스 선서’에는 어긋나는 행동입니다.
최근 방송된 JTBC ‘썰전’에는 전원책 변호사와 유시민 작가가 신 의원의 현수막 논란을 언급하며 쓴소리를 던졌습니다. 자료화면으로 등장한 쿡기자의 기사, 반갑네요.
이날 전 변호사는 “자기가 담당한 환자의 이름을 공개한다는 것, 물론 언론에 다 알려졌습니다만 그렇더라도 히포크라테스 선서 위반”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그것을 정치까지 끌어온다는 것 자체가 문제가 있다”고 했죠.
유 작가도 “(신 의원은) 얼마 전 있었던 아동학대 사건 때 아이 심리진단을 하고 나와서 아이가 그린 그림을 언론에 공개했다”며 “이런 건 진료자료다. 좋은 목적이긴 했겠지만 아이가 그린 그림이나 글을 들고 나와 언론에 유포한다는 건 정치적 도의 이전에 의사로서 본분을 망각한 행위였다”고 꼬집었습니다.
에서 “아동학대에 대한 처우 등이 아동복지법 안에 애매하게 들어가 있다”며 법 정비가 시급하다고 주장했습니다. 글쎄요. 미비한 법안보다 무서운 건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는 무의식이 아닐까요.
박상은 기자 pse0212@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