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래 감독과 임성철 프로듀서를 비롯해 영화 ‘귀향’의 제작에 참여한 70% 이상이 크리스천이다. 그럼에도 영화에 무속인과 굿하는 장면이 등장해 크리스천 사이에서 논란이 일고 있다. ()
조정래 감독은 오히려 ‘귀향’이 기독교 색채가 강한 작품이라고 속내를 털어놨다. 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삼청로 한 카페서 만난 조 감독은 “시나리오를 쓸 때 예수님 생각을 많이 했다”며 “성경을 다시 읽었다”고 말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가장 낮은 곳에서 태어나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어요. 아무 잘못도 없는 정민이 일본군에 끌려가 고난을 받습니다. 정민이 죽음으로 함께 있던 친구를 살렸어요. 우리가 그 시절에 태어났다면 정민이 아니라 우리가 끌려갈 수도 있는 거고, 정민의 이야기가 아니라 내 이야기일 수 있죠. 누가 우리를 위해 죽을 수 있을까요.”
‘귀향’은 1943년 천진난만한 열네 살 정민(강하나)이 영문도 모른 채 일본군에 끌려 가족의 품을 떠나게 되고 일본군만 가득한 끔찍한 현장에서 위안부로 처절한 고통을 받는 이야기를 그린다.
‘귀향’의 엔딩에 죽었던 일본군이 살아나 굿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장면이 등장한다. 감독은 이 장면을 두고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에서 모티브를 따왔다고 했다. 조정래 감독은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에서 골고다 언덕에서 예수님이 고난을 받을 때 웃으며 지나가는 악마가 있다”며 “그 장면을 모티브로 해서 일본군을 현재의 군중 속에 배치했다”고 말했다.
성경책을 읽으면서 시나리오를 쓰고 예수의 최후를 그린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의 장면을 모티브로 가져왔다고 하지만 무녀의 굿하는 장면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그냥 굿이 아니라 국가에서 문화재로 지정한 진도씻김굿입니다. 종교적인 의식을 떠나 한민족의 전통과 문화의 원형이 담긴 무형문화재로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무녀를 통해 일본군에 죽은 소녀들의 영혼을 불러오는 장면에 대해서는 “타향에서 억울하게 돌아가신 분들을 어떻게든 표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제목에 귀신 ‘귀(鬼)’를 사용한 이유에 대해 “선정적인 제목이라고 뭐라고 하시는 분도 있지만 강제로 끌려간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의 증언집을 보면 귀신 ‘귀’자 가지고도 표현이 안될 만큼 충격적”이라고 답했다.
조정래 감독은 2002년 나눔의 집(생존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 후원시설) 봉사활동을 통해 만나게 된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영화를 제작했다. 조 감독은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듣는데 너무 충격이어서 몸살이 왔다”며 “그리고 꿈을 꿨는데 구덩이 속에서 불타고 있던 소녀들이 부활하는 꿈이었다. 그 꿈을 시작으로 시나리오 작업을 해서 여기까지 왔다. 영화 속에서는 나비가 날아서 고향으로 돌아오는 장면”이라고 설명했다.
고등학교 때까지 교회를 열심히 다녔던 조정래 감독은 대학교 1학년 때부터 한국교회의 여러 문제에 실망해 교회를 다니지 않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예수님을 믿고 있다.
조정래 감독은 “시나리오 단계부터 목사님들을 만나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다”며 “시나리오를 읽어 보셨고 부분적으로 표현에 문제가 있을 수 있지만 영화의 전체적인 취지에 공감한다고 하셨다”고 말했다. 이어 “목사님들이 중보기도단을 만들어 제작을 시작할 때부터 지금까지 기도해주고 계신다”고 덧붙였다.
중앙대학교 영화학과를 졸업한 조정래 감독은 2000년 단편영화 ‘종기’로 연출 첫 신고식을 치렀다. 이어 영화 ‘두레소리’ ‘파울볼’을 연출했다. ‘귀향’이 세 번째 장편이다. 조정래 감독은 ‘귀향’을 완성하는데 14년의 시간이 걸렸다. 이 영화는 지난 24일 개봉 첫날 관객수 15만 명을 넘었고 이번 주말 300만 돌파를 앞두고 있다.
조정래 감독은 “고통 속에 죽어간 소녀들의 영혼들을 위로해주셨으면 좋겠다”며 “‘언니야 이제 집에 가자’라는 포스터 문구도 제가 썼다. 영으로나마 고향으로 모셔서 따뜻한 밥 한술 드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어 “저도 예수님을 닮으려고 노력한다”며 “누구하나 손 잡아주고 기도해주지 못한 것이 죄스러웠다. 할머니들의 아픔에 공감해주셨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조경이 기자 rookeroo@kmib.co.kr
크리스천 감독·프로듀서 ‘귀향’에 굿, 무속인 왜 등장하냐고요?…스타인헤븐
입력 2016-03-09 00:07 수정 2016-03-09 15: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