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사 희생자 기록 없더라도 이웃 진술 신빙성 있다면 국가배상해야

입력 2016-03-08 15:26
출생·사망신고나 족보 등 과거사 희생자임을 증명할 기록이 남아있지 않다 하더라도 이웃 주민들의 증언에 신빙성이 있다면 국가가 배상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2부(주심 김창석 대법관)는 한국전쟁 당시 토벌군에 희생된 조모씨의 사촌형 등 2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원고패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승소 취지로 사건을 서울고법에 돌려보냈다고 8일 밝혔다.

경남 산청 지역에 살던 조씨의 가족은 한국전쟁 때 지리산으로 피란을 갔다. 국군이 마을을 수복하면 인민군 치하에 있던 마을 사람들을 모두 죽인다는 말을 듣고서다. 그러나 숨어 지내던 조씨 가족은 1951년 초겨울 토벌군에게 잡혔다. 1950년생으로 당시 1살이던 조씨는 어머니와 함께 토벌군이 쏜 총에 맞아 숨졌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2010년 6월 조씨 등 105명을 ‘경남 산청·거창 등 민간인 희생사건’의 희생자로 결정했다. 조씨의 사촌형 등은 이를 근거로 법원에 소송을 냈다.

1심은 원고 승소판결을 내렸지만 항소심은 이를 뒤집었다. 족보나 제적등본 등에 조씨와 관련된 기록이 전혀 남아있지 않다는 이유에서였다. 진실규명 신청서와 참고인 진술서에 기재된 조씨의 나이도 1~3살로 제각각인 점도 판단 근거가 됐다.

그러나 대법원은 조씨를 희생자로 볼 수 있다며 2심 결론을 다시 뒤집었다. 재판부는 “조씨가 출생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한국전쟁이 발발해 출생신고를 하지 못했고 만 2세가 되기도 전인 어린 나이에 비극적인 사건으로 사망해 족보에도 등재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조씨의 시신을 수습해 선산에 모셨다는 이웃 주민들의 진술도 중요하게 고려됐다.

정현수 기자 jukebo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