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금융위기 뒤에도 미국 일부 기업 경영진이 회사 소유 제트기를 사적 용도에 수천만 달러를 들여가며 쓰는 등 도덕적 해이가 심각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 중에는 익스피디아나 페이스북, 구글, P&G 등 국내에 익숙한 기업 경영진도 있다.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7일(현지시간) 미국 S&P 500 상장기업들의 회사 소유 제트기 사용현황을 조사해 보도했다. 이 결과 상장사 중 10% 가량이 제트기 운용 전체 비용의 약 3분의 2를 개인용도 비행에 쓴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회사 대부분은 창업주나 창업주 가족이 경영하고 있었다.
액수에서 1위를 차지한 건 온라인 여행사 익스피디아의 회장 베리 딜러(74)였다. 딜러는 2005년부터 따졌을 때 총 1200만 달러(약 144억원)를 여기 들였다. 한해 100만 달러(약 12억원) 가량을 쏟아 부은 셈이다. 특히 170만 달러(약 20억원)를 지출한 2014년에는 매일 4500달러(541만원) 정도를 썼다는 계산이 나온다. 익스피디아는 FT의 취재요청에 답변을 거부했다.
이외 2014년 한해 같은 용도에 돈을 쓴 최고경영자 순위에는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CEO가 61만500달러로 전체 7위, 에릭 슈미트 구글 CEO가 67만2400달러로 5위를 차지했다. CBS방송의 레슬리 문베스 CEO(4위), A G 래플리 P&G CEO(8위) 등도 이름을 올렸다.
미국에서 기업 경영진의 제트기 사용이 문제가 된 건 2008년 금융위기 이후다. 당시 제너럴모터스(GM)와 크라이슬러 경영자들이 수백만 달러 규모 구조자금을 요청하기 위해 수도 워싱턴DC로 향하면서 회사 전용 제트기를 타 정치권의 비판을 받았다. 보험사 AIG 생명 역시 1800억 달러(약 217조원) 규모 구조조치 이후에도 제트기를 계속 운용하면서 논란이 됐다.
조사 결과 몇몇 업체 경영진은 금융위기 이후에도 오히려 여기 쓰는 액수를 늘렸다. 딜러 익스피디아 회장은 2005년에 83만4000달러(약 10억원)를 지출했으나 2014년에는 2배인 170만 달러를 지출했다. 투자은행 제프리스를 소유한 레우카디아의 경영진은 2005년 43만5000달러(약 5억2000만원)에서 2014년 100만 달러로 지출액이 뛰었다. 모건스탠리의 CEO 제임스 골먼은 2014년 모친 장례식 참석 차 호주를 방문할 당시 제트기를 타면서 한번에 24만 달러(약 3억원)를 쓰기도 했다.
몇몇 유명 기업을 제외하면 이번 명단은 S&P 500 상장기업 중 비교적 규모가 작은 업체가 주를 이뤘다. S&P 상위 20개 업체 중 구글, 페이스북, 프록터&겜블 세 업체만 이 부문 지출액 순위 10위 안에 들었다. 2014년만 따졌을 때 전체 경영진의 제트기 사용금액이 가장 많았던 건 광산업체 프리포트-멕모란이었다.
세계최대 주주의결권 자문사인 ISS의 사장 캐롤 보위는 “많은 돈을 제트기 개인 용도 사용에 투입하는 건 적신호”라고 봤다. 이어 “이 같은 현상은 공공재 성격을 띠는 기업을 가족 소유인 것처럼 대한다는 것이며, 이는 주주들이 기업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한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대부분 기업은 FT의 취재에 보안을 들어 제대로 응하지 않았다. 한 기업 내부관계자는 기업 CEO들의 공적 업무와 사적 업무 사이 경계가 모호한 것이 중요한 이유라고 설명했다. 또 경영진들은 일반 항공편을 이용할 때 중요한 내용이 다른 승객들에게 흘러나올 수 있다는 이유로 개인 제트기를 선호한다고 전했다.
모범이 되는 경영진도 있었다.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은 공적 업무일 때만 회사 소속 제트기를 타며, 그 외에는 버크셔해서웨이에 소속된 네트넷이라는 제트기 대여업체 회원권을 사용한다. 팀 쿡 애플 CEO는 전임자 스티브 잡스가 1999년 산 9000만 달러(약 1080억원)짜리 제트기가 있음에도 이를 한 번도 사용한 적이 없다. 경쟁사 마이크로소프트 경영진 역시 마찬가지다.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자사 CEO인 로이드 블랭크페인에게 제트기 휴일 사용을 아예 허가하지 않고 있다.
조효석 기자 promene@kmib.co.kr
회사 제트기를 내 맘대로.. 미국 기업 ‘모랄헤저드’ 심각한 것으로 드러나
입력 2016-03-07 15: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