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관리 들어간 터키 일간 ‘자만’, 하루 만에 친정부 기사로 도배돼

입력 2016-03-07 15:05 수정 2016-03-07 15:24
AP/뉴시스

터키 정부의 독재를 비판해오던 터키 최대 일간지 ‘자만(Zaman)’이 법원의 법정관리 강제 집행 뒤 정부를 지지하는 논조로 급선회했다. 이를 두고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이 언론을 장악해 여론을 우호적으로 바꾸려 한다는 국제사회의 비판이 일고 있다.

영국 일간 가디언에 따르면 법정관리 집행 첫날인 6일(현지시간) 자만은 처음으로 친정부 성향의 기사를 내보냈다. 이 신문은 1면에 에르도안 대통령이 전날 이스탄불의 한 교각 개통 행사에 참석한 동정 기사와 사진을 실었다.

자만의 영자일간 투데이자만에 따르면 법정관리에 들어간 5일 이스탄불의 자만 본사 앞에서는 독자와 자만 지지자 등 500여명 규모의 시위대가 경찰과 충돌해 부상자가 발생했다. 이날 경찰은 “언론의 자유를 위해 싸우겠다” 등의 구호를 외치는 시위대에 해산을 요구하며 최루가스, 물대포, 고무탄 등을 사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자만 편집국은 법정관리 이전 마지막으로 발행한 신문에서 “터키 언론 역사상 가장 어두운 날 중 하나”라고 밝혔다. 신문의 편집장 압둘하미트 빌리치와 칼럼니스트 등은 해고됐다. 기자들은 트위터를 통해 회사 내부 서버로의 접속이 차단됐으며 기사를 전송하거나 이메일을 보내는 작업이 불가능해졌다고 알렸다. 빌리치는 전날 “벽에 기사를 써서라도 자유 언론은 계속될 것”이라며 “디지털 시대에 언론을 잠재운다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영문 일간 투데이자만 역시 6일 성명을 내고 “우리는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에서 가장 중요한 언론의 자유 측면에서 가장 암울한 시대를 겪고 있다”면서 “지식인, 기업인, 유명인, 시민사회 단체, 언론사, 기자 모두 위협과 협박 속에 침묵하고 있다. 지금 터키는 출판물의 독립성을 계속 지켜나가는 사람들에 대한 최종 탄압 단계에 들어섰다”고 밝혔다. 자만에 근무했던 한 직원은 이날 ‘내일을 기약한다’는 의미의 신문 ‘야리나 바키스’를 창간하고 자만의 전 공식 트위터 피드에 접속한 독자들이 자동으로 이 신문의 새 트위터 계정으로 이동하게 하기도 했다.

일일 발행부수 65만부의 일간지 자만은 그간 에르도안 대통령에 대해 신랄히 비판해왔다. 터키 정부는 에르도안 대통령의 정적이자 터키 출신 온건 이슬람학자인 페툴라 굴렌이 주도하는 사회개혁 캠페인인 ‘히즈멧 운동(Hizmet movement)’에 자만이 관련돼 있으며, 히즈멧 운동은 테러리스트 단체와 관련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검찰은 자만과 그 계열사가 “테러리스트 조직을 찬양하거나 도왔다”며 4일 법정관리를 선고했다.

터키는 국경없는 기자회가 발표하는 세계언론자유지수에서 지난해 180개국 중 149위를 차지했다. 터키에선 지난해 말 일간 줌 휴리예트의 칸 뒨다 편집장과 에르뎀 귈 앙카라 지국장이 간첩죄와 국가반역죄 등의 혐의로 구속되기도 했다. 유럽기자연맹(EFJ)은 “터키 정부가 자만을 정치적으로 장악한 것에 대해 유럽연합(EU)이 침묵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조효석 기자 prome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