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하고 싶어서 하는 게 아닙니다. 위에서 시키는 데 어쩌겠습니까.”
본보 3월 2일자에 실린 ‘경찰의 과잉홍보 눈살’ 기사를 본 일선서 홍보 담당 경찰이 기자에게 한 말이다. 그는 구체적인 기준까지 제시했다. 서울지방경찰청 페이스북엔 1회, 티스토리·블로그엔 3회 이상 미담이 실릴 경우 서장 표창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이 경찰은 “윗선에서 다른 경찰서와 비교하며 ‘왜 우리는 이런 훈훈한 이야기를 발굴하지 못하느냐’고 책망하는 분위기”라며 “노인이나 자살 시도자 등이 많은 지구대를 오히려 부러워하는 마음까지 생겼다”고 했다.
분위기가 이렇다보니 현장에 나가서도 애꿎은 다툼이 생긴다. 2인 1조 출동 시 누가 사진을 찍고, 누가 찍히느냐를 두고 미묘한 신경전이 일어난다고 했다. 서울의 한 지구대 경찰은 “얼굴을 알리고 표창을 받을 수 있는 좋은 기회다 보니 계급 간 눈치 보기가 심하다”고 했다. 주로 계급이 높은 이가 선행하는 모습을 후임이 찍는 경우가 많다. 이 경찰은 “똑같이 고생했는데 한명은 영웅이 되고, 다른 한명은 들러리가 되니까 서로 간의 갈등이 생기는 상황”이라고 했다.
대중에게 ‘먹히는’ 사진을 두고도 경찰 내부에선 말이 나온다. 특히 신입 여경이 그렇다. 한 경찰은 “신입 순경이 지구대로 배치될 경우 예전에는 상대적으로 체력이 좋은 남성을 선호했지만 최근에는 여성이 더 인기가 높다”고 했다. 같은 사진이라도 여경이 누군가를 돕거나 범인을 잡는 모습이 인상에 남기에 윗선에서도 더 좋아한다는 말이다. 이를 두고 한 여경은 “물론 경찰의 이미지를 좋게 만드는 건 반갑지만 경찰이 아니라 여성이라는 점이 더 주목받는 현실 자체에 대한 회의감이 들 때도 있다”고 했다.
이러한 홍보 열풍을 바라보는 형사·강력계 근무 경찰은 더 답답한 심정이다. 미담 사진은 주로 지구대나 파출소의 몫이다. 서울의 한 강력계 형사는 “범인을 잡고 수사하는 부서의 경우 미담을 발굴할 인력도 시간도 없다”며 “몇 달에 걸쳐 잠복하고, 때로는 목숨까지 내놓아야 하는 업무보다 사진 한 장 찍는 게 중요한 분위기가 허탈하다”고 했다.
민생 치안을 위해 뛰는 경찰의 노력을 폄하하고픈 마음은 없다. 그러나 홍보 실적 압박은 경찰의 진정성을 떨어뜨릴 뿐 아니라 경찰 내부의 분열까지 조장하고 있다. 경찰의 이미지는 경찰이 인위적으로 만드는 게 아니다. 민생에 파고드는 치안 정책을 만들고 일선 현장에 바르게 적용할 때 굳이 ‘말하지 않아도’ 홍보는 자연스럽게 이뤄질 거다.
박세환 기자 foryou@kmib.co.kr
[현장기자] “위에서 시키는데 어쩝니까” 미담연출 경찰의 답변
입력 2016-03-02 11:48 수정 2016-03-02 16: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