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원’이라는 글자가 로고와 함께 대문짝만하게 찍혀 있는 공문이었다. 보낸 사람은 ‘금융위원회 위원장’, 이름은 ‘김종룡’.
어설픈 가짜 공문이었지만 사람들을 현혹하기에는 충분했다. 신문배달까지 낮과 밤 투잡을 뛰고 있던 A씨(38)는 이상한 이메일을 받았다. 금융감독원 업무를 하청 받은 회사인데, 불법대출 혐의자의 신용조사나 계좌추적을 해서 불법자금을 회수하는 일을 하는 곳이라고 했다. 채용도 하고 자금회수에 성공할 때마다 적지 않은 수수료도 준다고 했다.
이 과정에서 금융감독원 이름을 붙인 가짜 공문서도 보내왔다. 마치 금감원의 업무를 수행하는 것처럼 믿게 만들었다. 사실은 보이스피싱 조직이 대포통장에 빼돌린 돈을 직접 인출해오는 조직원의 일을 대신하는 것이었다.
금감원 불법금융대응단 김상록 팀장은 “A씨가 받은 이메일은 불특정다수에게 뿌려진 것으로 보인다”며 “취업난이 가중되고 있는 점을 악용해 구직자들을 두 번 울린 셈”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꾀임에 빠져 본인의 신분증과 이력서, 주민등록등본 등을 보이스피싱 사기범에게 전달한 사례도 있었다.
금감원은 “최근에는 검찰이나 경찰을 사칭해 가짜 공문을 믿게 하는 레터피싱(Letter-phishing) 사례가 있었는데, 금감원의 가짜 공문서를 만들어 계좌추적 업무를 하청 받은 회사라고 사칭한 사례는 처음”이라고 밝혔다. ‘그놈 목소리’ 공개 등 각종 보이스피싱 예방대책이 강화되면서, 취업희망자들을 현혹해 개인정보도 빼내고 조직원이 해오던 일도 대신하도록 포헙하는 이중 효과를 노렸다는 것이다.
금감원은 “우편물 등을 받은 경우에는 발송자 주소, 발송인, 전화번호 등을 꼼꼼하게 확인해야 한다”며 “금감원은 어떤 경우에도 계좌추적 등의 업무를 민간회사에 위탁하지 않으니 의심스러운 경우 국번없이 1332로 신고해달라”고 당부했다.
김지방 기자 fattykim@kmib.co.kr
취준생 노리는 보이스피싱…금감원 사칭 '레터피싱'
입력 2016-03-02 14: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