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누나 103] 영화 ‘동주’ ‘암살’ 실존 의인들…그들의 십자가 정신

입력 2016-03-01 15:52 수정 2016-03-01 16:55
남자현 선생이 1927년 중국 지린에서 찍은 사진(왼쪽). 남 선생이 실제 모델로 꼽히는 영화 ‘암살’ 주인공 안옥윤 역의 배우 전지현. 김종식 교수 제공·국민일보DB
2013년 처음 공개된 윤동주 시인(왼쪽)과 송몽규 열사(오른쪽)의 모습. 1937년 광명중학교 재학 시절 즈음으로 추정된다. 왼쪽 작은 사진은 시인의 연희전문대학 졸업 사진. 연세대 윤동주기념사업회 제공
교회누나의 천국 이야기 백 세 번째 이야기

“원수를 용서하고 복수하지 말라”(영화 ‘암살’ 여주인공의 실제 모델인 남자현 열사). 항일투쟁으로 치열한 삶을 살아냈던 남자현 열사의 유언이었다고 합니다. 남자현 열사의 유언에는 사랑, 희생, 용서 등 십자가 정신이 녹아 있었습니다.

지난해 1000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 ‘암살’의 실제 모델인 남자현(1872∼1933) 열사. 영화의 흥행과 더불어 남자현 열사의 삶이 재조명된 가운데, 그가 독실한 크리스천이라는 사실도 알려졌습니다.()

남자현 열사는 기독교 신앙에 기초한 나라 사랑의 가치관으로 일생을 살아낸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남자현 열사의 증손자 김종식(58) 옌볜과학기술대 교수의 이야기입니다. 김 교수는 지난해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증조모가 흰 저고리에 검정 치마 차림으로 성경을 들고 자오허 등 지린의 조선인 마을을 찾아가 ‘우리는 나라 잃은 힘없는 백성이나 전능하신 하나님을 의지해 나라 독립을 위해 마음을 모으자’고 기도하면 온 동네 사람들이 울며 하나님을 믿겠다고 나섰다고 한다”며 “특히 ‘만 입이 내게 있으면’이란 찬송을 좋아해 복음을 전할 때마다 즐겨 부르셨다는 증언을 들었다”고 회고했습니다. 그러면서 남자현 열사가 조국에 헌신한 이유를 기독교 신앙에 근거한 애국심에서 찾았습니다.

남자현 열사와 마찬가지로 식민지 시대에 가슴 속에 하나님을 품었던 의인이 있습니다. 바로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시인인 윤동주(1917~1945). 최근 개봉돼 잔잔한 감동을 전하고 있는 이준익 감독의 영화 ‘동주’가 화제가 되면서 시인의 생애에 더욱 관심이 모아지고 있습니다.()

윤동주는 중국 길림성 명동촌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린 시절을 보낸 명동촌은 일찍부터 신학문과 기독교를 받아들인 마을로 명동 교회 장로였던 할아버지로 인해 어릴 적부터 기독교 정신을 배우며 자랐습니다. 영화 ‘동주’를 연출한 이준익 감독은 1일 국민일보와의 전화통화에서 “윤동주의 집안은 기독교 정신에 근간이 있다”며 “윤동주가 어린 시절을 보낸 명동촌은 가장 바람직한 기독교 공동체였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윤동주는 참된 그리스도인이었다”며 “삶의 양식으로서의 기독교 정신이 영화 속에 묻어나길 바랐다”고 했습니다.

민족에 대한 사랑과 독립의 간절한 소망을 간직하며 시를 써내려간 윤동주. 그의 시의 중심에 기독교 정신이 있었습니다. 윤동주의 조카사위이자 공동체 ‘예따람(예수님 따르는 사람들)’을 이끄는 강석찬 목사가 최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윤동주의 시어 하나하나가 신앙을 빼놓고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너무 많다”고 했습니다. ‘십자가’ ‘자화상’ ‘팔복’과 같은 시뿐 아니라 첫 시 ‘초 한 대’ 등 많은 시에서 기독교 신앙에 대한 고뇌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괴로웠던 사나이/ 행복한 예수 그리스도에게처럼 / 십자가가 허락된다면 / 모가지를 드리우고 /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 어두워 가는 하늘 밑에 / 조용히 흘리겠습니다” (‘십자가’ 中)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서시’ 中)

시인의 대표작인 ‘서시’에서도 하나님 앞에 바로 서고자 하는 신앙인의 치열한 고뇌가 담겨져 있습니다.

십자가를 지고 나라의 독립을 애끓는 마음으로 기도하며 새벽이슬처럼 스러져간 의인들이 있기에 지금의 우리가 있는 것이 아닐까요. 우리도 다음 세대를 위해서 지금의 부끄러움을 참회하고 올바른 것을 위해 행동하는 어른들이 되기를 소망해 봅니다.

조경이 기자 rooker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