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이 사랑하는 시인. 윤동주에게 늘 따라붙는 수식어다. 지금껏 단 한 번도 그를 조명한 작품이 없었단 점이 의아할 정도다.
이준익(57) 감독은 그 의미 있는 도전을 해냈다. 윤동주(강하늘) 시인과 송몽규(박정민) 열사의 생애를 스크린에 그려냈다. 영화 ‘동주’에 담아낸 그의 메시지는 단호했다.
“윤동주만큼 일본 군국주의에 대해 이성적으로 비판할 수 있는 인물은 없다고 봅니다.”
최근 서울 종로구 삼청로 한 카페서 만난 이준익 감독은 이렇게 말했다. 늘 유쾌한 그와의 인터뷰이지만 이번만큼은 좀 달랐다. 작품에 대해 이야기하는 그의 눈빛과 어조에는 어떤 힘이 실려 있었다.
“70년간 우리는 만날 피해자의 억울함을 하소연하며 울 줄만 알았지, 가해자에 대한 통렬한 반성을 요구하기 위한 치밀한 노력들은 부족했어요. 이것은 윤동주 시인과 송몽규 열사 같은 분들에게 너무나 미안한 일이다. 그래서 이 영화를 찍게 됐죠.”
이준익 감독은 “윤동주와 송몽규는 군국주의의 본거지인 일본 본토, 그것도 지식인을 양산하는 대학에서 조선인 규합사건 판결을 받고 형무소에 수감돼 생체실험 대상이 됐다”며 “가해자의 이런 모순과 부도덕성을 정확하게 지적해줘야 한다”고 설명했다.
가장 경계한 건 감정적 접근이었다. “반일감정을 부추기려는 의도로 지나치게 감정적으로 이 영화를 찍으면 절대 안 된다고 생각했다”는 게 그의 말이다.
이준익 감독은 “아주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태도로 감정을 절제하면서 일본 군국주의에 대한 정확한 지적을 해야 했다”며 “과도한 감정을 넣거나 어떤 강요를 해선 안 된다는 게 첫번째였다”고 소개했다.
동주 개봉 이후 연일 이어지는 관객과 평단의 호평에 대해서는 담담했다. “감사한 일이지. 자칫 이 영화를 소홀히 찍었다거나 너무 지나치게 왜곡되게 찍었다면 비난의 화살을 맞았을 텐데, 다행히 응원과 용기를 주다니 고맙죠.”
단 한 가지, 우려스러운 지점이 있다. 이준익 감독은 “윤동주 시나 송몽규라는 인물에게만 초점이 맞춰지는 것에 대해선 아쉬움이 있다”며 “그들이 신념을 갖고 지키려던 가치에 더 주목해줬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식민시대의 가해자인 일본의 군국주의에 대한 면밀한 분석과 아주 구체적인 추궁에 방점을 찍었으면 좋겠다”고 그는 재차 강조했다.
동주는 순제작비 5억원으로 만들어진 저예산 영화다. 흑백 화면으로 제작함으로써 비용을 더 줄일 수 있었다. 상업적인 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해서였다. 이는 동주를 대하는 이준익 감독의 진심이기도 했다.
“흑백 저예산이라고 해서 어렵거나 힘든 건 없었어요. 굉장히 즐거웠지. 예산이 적어서 오히려 너무 행복했어요. 풍요롭다고 행복한가? 아니면 궁핍하다고 불행한가? 그건 다른 문제인 것 같아요.”
열악한 환경에서 최선을 다해준 스태프에게 모든 공을 돌렸다. 이준익 감독은 “영화를 보면 알겠지만 촬영·조명·미술감독들의 실력이 말할 것도 없이 매끄럽다”며 “더구나 그들은 내가 들인 노력의 10배 이상을 해냈다”고 치켜세웠다.
“모두가 한마음으로 찍었지. 스스로 모자랄까봐 노심초사하면서. 배우는 물론이고 모든 스태프들이 부족함을 안타까워하며 채워나가려 했어요. 그래서 모든 장면에 성의가 있어 보인 것 같아. 잔재주가 없잖아. 한 땀 한 땀 손바느질로 만든 영화. 화려함보다 담백함이 있지(웃음)?”
특히 흑백 화면은 영화적인 관점으로만 봐도 탁월한 선택이었다. 그 시대를 고스란히 담아놓은 듯한 느낌을 준다. 노장의 노련한 감각에 감탄할 따름이다. 이런 칭찬을 건네자 이준익 감독은 짐짓 멋쩍은 듯 농담을 던졌다.
“에이, 흑백영화 지루한데. 2시간 동안 흑백만 쳐다보고 있어봐. 얼마나 지루해. 요즘 같은 매드맥스 시대에(웃음). 관객들 마음이 순한 거지.”
혹시 관객에게 당부하고 싶은 이야기는 없느냐고 물으니 “무슨 당부를 하느냐”는 핀잔이 돌아왔다. 이준익 감독은 “감독이 만들고 난 뒤 영화는 보는 사람의 몫”이라며 “자기 식으로 아쉬운 건 아쉬운 대로, 새로운 걸 느꼈으면 느낀 대로 보면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이 한 마디만은 남겼다.
“윤동주 시인의 삶과 죽음을 공감해야만 진정 그의 시를 좋아한다고 인정받을 수 있는 거야. 삶과 죽음은 모르겠고 시만 좋다? 이건 이상한 거지. 그 시가 어떻게 나왔는지 알아야지. 피눈물로 쓴 그 시를 기억해야지.”
‘기억’이라는 단어에 멈칫. 왠지 몇 번이고 곱씹게 된다.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