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버스터 중단 배경은…여론 역풍 우려 ‘현실론’ 작용

입력 2016-03-01 00:48
더불어민주당 이종걸 원내대표가 29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당 의원총회에 참석, 은수미 의원과 대화하고 있다. 이동희 기자

더불어민주당이 ‘무제한 토론(필리버스터)’을 29일 밤늦게 중단키로 결정한 데에는 더 이상 공직선거법 개정안 처리를 미루기 어렵다는 ‘현실론’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여당이 테러방지법 수정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는 상황에서 무한정 필리버스터를 이어갈 경우 여론의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것이다.

◇野, ‘역풍 우려’ 감안한 듯=비공개로 이날 오전 진행된 더민주 비상대책위원회 회의에서도 출구전략을 본격적으로 모색해야 한다는 의견이 고개를 들었다. 의원총회에서도 이 같은 의견이 제기됐다. 테러방지법 처리 등을 선거구 획정안 협상과 연계했던 새누리당을 비판해 왔는데 되레 야당이 선거구 획정안 처리를 볼모로 잡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이다. 선거구 획정안 처리 지연에 따른 정치적 부담을 모두 야당이 떠안을 수 없다는 지적이었다.

더민주 이종걸 원내대표는 29일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필리버스터를 잠시 중단한 뒤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처리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우선 선거법 처리를 발목 잡았다는 역풍 가능성을 차단한 뒤 필리버스터를 통한 입법 저지 전략을 이어가겠다는 시나리오다.

이 원내대표는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열쇠는 우리에게 있는 게 아니라 저쪽(새누리당)에 있다”며 2월 임시국회가 끝나는 3월 10일까지 필리버스터를 이어가겠다는 뜻을 내비치기도 했다.

그러나 여야 원내대표 회동에서 이 원내대표가 제안한 법안 수정 요구 등이 끝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서 필리버스터 중단 방안이 본격적으로 검토된 것으로 알려졌다. 더민주는 밤늦게 긴급의원총회를 열고 이에 대한 논의를 이어갔다. 더민주 김종인 대표도 전날 기자 간담회에서 “선거구 획정안을 본회의에서 빨리 통과시켜주길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野에 책임 떠넘기며 협상 거부한 與=새누리당은 정의화 국회의장이 지난 2월 23일 직권 상정한 테러방지법이 ‘최종 중재안’이라는 입장을 고수했다. 원유철 원내대표는 국회 본회의장에서 이 원내대표와 만난 뒤 기자들과 만나 “테러방지법을 수정하자는 것은 테러방치법을 만드는 것이고 차라리 (그런 방식으로는) 안 만드는 게 낫다”고 말했다.

새누리당이 협상의 여지를 남기지 않는 배경에는 시간이 더 흐르더라도 불리할 게 없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 야당이 총선을 40여일 앞두고 선거구 획정안을 담은 공직선거법 개정안 처리를 무한정 지연시킬 수 없다는 것이다.

이에 앞서 새누리당은 야당의 일부 필리버스터 발언에 대해선 국가정보원 명예훼손 혐의로 고발키로 하는 등 강경 대응에 나섰다. 김정훈 정책위의장은 의원총회에서 “(테러방지법이) 통과되면 통화 내용을 전부 엿듣는다거나 카카오톡 대화를 전부 들여다본다는 허위사실을 너무 많이 유포하면서 국정원 명예를 훼손하고 있다”고 했다.

새누리당은 의원총회 직후 국회에서 ‘더민주 규탄대회’를 열고 “대한민국 안전을 볼모로 한 무모한 ‘필리버스터 선거운동’을 당장 중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김경택 기자 pty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