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박씨] 먹기를 탐하고 잔치집 가는 것을 좋아하는 자
입력 2016-02-29 15:06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니라‘(마17:20)
숨이 턱 막힙니다. 예수께서 그 쉬운 겨자씨 믿음을 요구하셨는데 그만한 순도의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세상사에 닳고 닳아 겨자씨 대신 호박씨 믿음만 키웠습니다. 내 안의 믿음을 ‘겨자씨 믿음’으로 알고 살았는데 정작 ‘호박씨 믿음’이었다는 것을 느낍니다.
요즘 크리스천의 ‘믿음의 씨앗’은 상상 임신과 같습니다. 자기 안에 겨자씨 믿음이 있다고 믿는 것이지요. 그리고 호박씨 크기만큼 자신의 믿음이 성장했다는 교만에 빠져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씨앗 크기 경쟁에 빠져 있습니다. 되지도 않는 ‘믿음 비교’를 하고 있고요. “그 사람 참 믿음이 좋아요”라는 소리를 듣고자 허세를 떱니다.
그 허세는 믿음을 빙자해 분노하지 않는 태도입니다. 성경의 가르침에 따라 행동해야 할 때 자기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호박씨를 까는 것입니다. 양심의 울림이 가슴 속에서 진동하는데도 침묵하거나 인자한 미소로 피해가는 것, 아니면 나이 직분 직책 등 우월적 지위에 바탕을 둔 논리로 상대를 순치하는 것이 호박씨 믿음입니다.
하나님 빛과 진동은 양심의 울림입니다. 이 양심의 소리에 반하는 믿음은 호박씨 믿음입니다.
크리스천은 ‘너희로 내 나라에 있어 내 상에서 먹고 마시며…’라는 예수의 식탁 교제을 본 받아 한 식탁에 앉은 공동체 일원입니다. 한데 그 공동체가 자기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니 호박씨 공동체가 되고 말았습니다. 세상 이익공동체와 다를 바 없이 된 거죠.
‘겨자씨’ 칼럼은 국민일보의 인기 코너입니다. 말씀으로 내 밑바닥을 건져 올리죠. 그 칼럼을 읽을 때마다 호박씨 까는 늘 죄의식을 갖곤 했습니다. 순결해지려는 데 쉽지 않습니다.
‘호박씨’ 칼럼을 국민일보 온라인에 연재합니다. ‘열폭’하는 자기 감정의 칼럼입니다. 예수가 유대의 정결 이데올로기와 맞서자 적대자들은 “먹기를 탐하고 잔칫집에 가는 것을 좋아하는 자”라고 비난했습니다. 오늘 크리스천은 예수 의를 위해 세상 사람과 복음을 먹고 마시며 천국을 이야기해야 합니다. 핍박 받을 각오를 해야 합니다.
정결 이데올로기에 빠진 교회, ‘자기 의’를 드러내기 바쁜 교인를 향한 메타포가 ‘호박씨’입니다. 전정희 기자 jhje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