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월 2일부터 20일까지 서울 종로구 인사동길 통인화랑과 통인옥션갤러리
수묵의 번짐과 스며듦을 붓으로도 그려내기 어려울 법한데 도자기로 구현한다고 상상해 보시죠. 그림이야 흙판에 그럴 듯하게 그린다손 치더라도 굽는 과정에서 자칫 잘못하면 깨지기 일쑤일 겁니다. 다행히 깨지지 않더라도 붓질의 흐름과 화면의 구성을 도판에 온전히 옮기기는 너무나 힘들겠지요. 회화와 도자기는 근본적인 성질부터 다르니까요.
‘도자화가’ 오만철(53) 작가는 숱한 시행착오를 거쳐 완성도 높은 작업의 경지에 다다랐다는 점에서 새로운 예술세계를 창안했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겁니다. 그의 작품을 한번 보시죠. 장독대 위 눈이 소담스럽게 내려앉은 풍경은 아련했던 옛 추억을 떠올리게 합니다. 밤새 내린 눈 위로 발자국이 총총 새겨져 있습니다. 세밀하면서도 정겨운 풍경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의 작업은 수묵화를 바로 눈앞에서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킵니다. 전남 담양 죽녹원의 겨울 풍경은 가슴을 따뜻하게 합니다. 살며시 봄소식을 알리는 전령사라고나 할까요. 작가는 종이나 캔버스가 아니라 백자도판 위에 한국화를 그리는 작업을 20년 넘게 하고 있습니다. 대학시절 그의 전공은 원래 동양화였답니다. 대학원에서는 도예와 고미술 감정을 공부했지요.
# 조선시대 화공(畵工)과 도공(陶工)의 역할을 하나로 합쳐 새로운 장르 개척
그는 화공(畵工)과 도공(陶工)의 역할을 하나로 합쳐 새로운 장르를 개척했습니다. 조선시대에는 도자기를 제작하는 장인이 따로 있고 도자기에 그림을 그리는 화원이 따로 있었던 것을 혼자 도맡은 셈이죠. 그림을 그리는 틈틈이 도예에 빠져들면서 두 장르를 아우르는 무언가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으로 연구하고 실험하는 고행의 길을 걸어 왔던 것이죠.
흙과 불을 가까이 하다보니 혼연일체 또는 물아일체가 되어 사랑하는 지경에 이른 작가는 더 좋은 흙을 찾아 중국 경덕진으로 발길을 옮겼답니다. 경덕진의 고령토는 찰지고 단단한 맛이 도자화에는 더없이 좋은 재료인 거죠. 고령토로 만든 백자도판 위에 철 성분이 함유된 안료를 사용해 문인화와 산수화를 그립니다. 도자기는 보통 1250도에서 구워지는데 그의 작품은 1330도에서 견딘 것이죠.
일반 도자기가 1250도에서 초벌과 재벌·삼벌을 거쳐 구워진다면 그의 작품은 1330도에서 단벌로 소성됐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굴곡이 나지 않고 정교한 색과 선으로 마치 캔버스 위에 붓질하듯 세밀하게 표현된 것을 보면 작가의 작업이 얼마나 오랜 기다림과 수차례의 실패 및 좌절의 과정을 거친 실험의 결과물임을 알 수 있게 합니다.
그의 개인전이 3월 2일부터 20일까지 서울 종로구 인사동길 통인화랑과 통인옥션갤러리에서 열립니다. 도자기 및 공예 전문 갤러리인 지하 1층의 통인화랑과 회화 등 평면 중심의 전시장인 5층의 통인옥션갤러리에서 한 작가의 개인전이 동시에 열리기는 드문 경우랍니다. 회화와 도자가 결합된 도자화를 개척한 작업이라는 점도 있지만 그만큼 작가의 작품세계가 인정받은 거겠지요.
# 1330도 가마에서 단벌로 소성 굴곡 없이 정교한 색과 선으로 붓질하듯 세밀하게 표현
전시 주제는 ‘흙과 불의 사랑은 얼마나 눈부신가’입니다. 진한 묵향이 좋아 동양화에 빠지고, 흙의 촉감을 사랑해 도자기를 굽는 작가 오만철의 예술혼이 얼마나 뜨겁고 치열한지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하겠습니다. 흙은 불을 만나야 제 역할을 하고 불은 흙이 있어야 제 기능을 하는 것은 모든 사물에는 음양이 있고 하나로 어우러져야 완벽해진다는 이치와 맞닿아 있는 겁니다.
가마 속 온도에 따라 예민하게 반응하는 작품은 실패와 좌절 속에 얻은 노력의 결정체랍니다. 자신의 작품세계에 더욱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묵묵히 작업에만 매달리는 작가는 어떻게 보면 미련한 구석도 없지 않습니다. 하지만 불굴의 의지로 도자기와 도판을 만들고 일필휘지(一筆揮之)의 농담 및 필력으로 도자화가라는 독보적 자리를 굳히고 있는 것이죠.
이번 전시에 공개되는 반추(反芻)라는 작품은 국보급 도자기를 평면 도판에 다시 그린 것으로 이색적인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흰색 바탕에 푸른빛 그림이 신비스런 장면을 연출하지요. 조선화가들과 도공들의 합작품인 철화도자기는 순수하고 단순해 보이지만 고도의 기술을 필요로 합니다. 장인들에 대한 존경심을 바탕으로 평면의 백자 도판에 조선 예술가들의 작품을 옮겨 놓은 것이랍니다.
작가는 2015년 12월 16일 한국신지식인협회에서 도자화 장르를 개척한 공로를 인정받아 신지식인으로 선정됐습니다. 선구자적 역할과 후배 양성이라는 책임감으로 미술 발전에 더욱 노력하겠다는 각오를 다지고 있습니다. 또한 6월 9일부터 12일까지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개최되는 제14회 국제차문화대전에 작품 제작 시연과 전시를 초대받아 도자화를 소개하는 기회를 갖습니다.
# “가장 한국적인 것으로 세계에 우리 문화를 알리는 전도사 역할을 하고 싶어요”
도화작가가 된 그는 “행복하다”고 말합니다. 물레를 차면서 흙에 미치고, 수묵화를 그리면서 그림에 미치고, 도자기를 구우면서 불에 미쳐 산 세월이 힘들기도 했지만 “도자화가 수묵화의 번짐과 농담처럼 나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세상에 다시없을 희열을 느낀다”는 겁니다. 그림을 그리고 도자기를 굽는 모든 과정을 직접 하는 국내 유일의 도화작가라는 사명감도 든다고 합니다.
그의 작품은 중국 작가의 작품과 차별화됩니다. 중국 작가들이 전통산수화 형식을 청화로 제작한다면 작가는 우리나라 산수를 알리는 ‘현대 산수’를 담아낸다는 점이죠. 또한 여느 도예가들의 평면 회화가 공예 장르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측면이 있는 반면 작가의 작품은 화가와 도예가의 작업을 섭렵한 데 있다는 겁니다.
전통을 현대적으로 이어받아 법고창신(法古創新)과 온고지신(溫故知新)의 정신을 실현하고 있는 작가의 포부는 국내를 넘어 세계무대로 향하고 있습니다. 풍경화나 도자기뿐만 아니라 우리 민족의 삶이 담겨있는 민화와 풍속화도 도자화하는 작업을 시도하고 있는 그는 “가장 한국적인 것으로 세계에 우리 문화를 알리는 전도사 역할을 하고 싶다”고 합니다.
평면 백자도판에 매화, 소나무, 대나무, 산수(山水) 등 한국적 정서가 가득한 작품들이 관람객을 맞이합니다. 아늑하면서도 고요한 멋이 매력적으로 다가옵니다. 현재 국보와 보물 등 대부분은 도자기라고 합니다. 우리 고유의 전통문화를 계승하면서 명품의 가치를 드높인 작가의 도자회화를 보면서 명상과 휴식의 힐링 시간을 갖는 것은 어떻습니까?(www.tonginstore.com·02-733-4867).
이광형 문화전문기자 ghlee@kmib.co.kr
그림과 도자의 만남! 국내 첫 ‘도자화가’ 오만철 “흙과 불의 사랑은 얼마나 눈부신가” 통인 초대전
입력 2016-02-28 01:02 수정 2016-02-28 0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