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가 몽골인 학생을 졸업생 대표로 세운 까닭은

입력 2016-02-26 18:09
26일 오후 서울 관악구 서울대학교에서 열린 제70회 학위수여식에서 몽골인 오강바야르씨가 졸업생 대표 연설을 하고 있다. 서울대 제공

26일 서울대학교 제70회 학위수여식에서 몽골인 유학생이 졸업생 대표로 연설했다. 한국에 연고가 전혀 없는 외국인 학생이 대표연설을 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국내 대표 국립대인 서울대는 왜 주요 학생층인 한국인이 아니라 외국인을 졸업생 대표로 세웠을까. 여기엔 외국인 학생이 늘면서 나타난 교내 인식 변화와 함께 ‘국내 명문대’라는 틀에서 벗어나 글로벌 캠퍼스로 발돋움하려는 학교 측 의지가 엿보인다.



‘김치’밖에 몰랐던 그 외국인

이날 서울대 종합체육관에서 열린 학위수여식에서는 학사 2496명, 석사 1786명, 박사 688명 등 4970명이 졸업장을 받았다. 이들을 대표해 연단에 오른 학생은 정치외교학부를 졸업하는 몽골인 오강바야르(24)씨다. 그는 교내 외국인학생회 회장을 했다.

오강바야르씨는 대표 연설에서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아끼며 키워주신 부모님께 자랑스러운 아들이 되고 싶어 한국으로 유학을 왔다. 2010년 9월 한국에 왔을 때 ‘김치’라는 단어밖에 몰랐다”고 했다. 그러면서 “유학생활을 하며 두 나라 문화 차이로 여러 어려움이 있었지만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태도로 극복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 유학생은 한국에 들어와 1년 정도 아르바이트를 하며 서울대 언어교육원을 다녔다. 만만치 않았지만 힘들 때마다 ‘부모 말씀’을 되새기며 공부한 결과 장학금을 받고 서울대에 입학할 수 있었다고 그는 말했다. 오강바야르씨는 서울대 입학 자격을 따서 한국에 온 게 아니라 입국 후 입시를 치르고 합격한 경우다.

그는 “한편으로는 두려운 마음을 안고 처음 한국에 찾아왔던 것처럼 졸업생 모두가 새로운 시작을 앞두고 있다”며 “앞으로 수많은 도전이 다가오겠지만 다가올 어려움보다는 미래의 희망을 보고 꿈을 향해 함께 나아가자”고 격려했다.



졸업생 대표 어떻게 뽑나

졸업생 대표 연설은 연설자에게 명예로운 일이다. 개인의 이야기를 하는 데 그치지 않고 졸업생들의 의지를 대변한다는 의미가 있다. 축사를 하는 총장 등 다른 연사에 대한 답사이기도 하다.

과거에는 가장 우수한 성적을 받은 학생이 연설을 했지만 최근에는 연설자의 대내외 활동을 종합적으로 고려한다. 서울대는 직접 발굴하거나 학생·교수 등에게서 추천을 받는다. 주로 어려운 환경에서도 열심히 학교생활을 한 학생이 물망에 오른다.

후보로는 보통 3, 4명이 오르는데 최근에는 학생들이 취직 준비 등으로 졸업을 미루는 경우가 많아 후보자를 찾기 어렵다고 한다. 이번에는 오강바야르씨를 포함해 2명이 후보로 올랐다. 서울대 측은 오강바야르씨가 외국인학생회 회장을 하면서 처지가 비슷한 유학생들을 도운 점을 높이 평가했다고 설명했다.

인터넷 대학 정보 공시 시스템 ‘대학알리미’에 오른 현황을 보면 서울대에 재학하는 외국인 유학생은 점차 늘고 있다. 교환학생과 어학연수생을 포함한 이들 유학생은 2013년 1035명에서 2014년 1062명, 지난해 1356명으로 증가했다. 이런 추세가 외국인 졸업생 대표가 나올 수 있는 배경으로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서울대 관계자는 “학생 구성원이 다양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오강바야르 학생이 유학생들 생활에 많은 도움을 준 점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글로벌 캠퍼스 꿈꾸는 서울대

외국인 학생을 졸업생 대표로 선정한 것은 서울대가 글로벌 대학을 지향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 학교는 외국 대학과 교류 협정을 늘려가면서 국제화 역량을 키워가고 있다. 올해 기준 세계 245개 대학과 교환학생 프로그램 협정을 맺었다. 세계적 석학을 초빙해 국제 하계 강좌를 열고 외국인 우수 학생에게 장학프로그램을 운영하기도 한다. 국내뿐 아니라 해외 학생도 찾고 싶은 학교를 만드는 데 주력하고 있는 것이다.

서울대는 2013년 8월 제67회 후기 학위수여식 때 러시아 국적 고려인 3세 홍야나(27·여)씨를 졸업생 대표로 선정했었다. 개교 이래 첫 외국 국적 졸업생 대표였지만 한인교포 자녀라는 점에서 한국에 연고가 있는 경우였다. 당시 연설에서 홍씨는 “국어국문학을 전공하며 제 뿌리를 찾고 싶었다”고 말했다.

심희정 기자 simcit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