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표 교수 연극이야기]32. 현실의 한복판을 강렬하게 걷고 있는 ‘바냐아저씨’

입력 2016-02-26 09:02
대학로 연극문화에 변수가 생겼다. 연극 <뜨거운 바다>, <로젤>과 드라마, 영화에서 35년간 노련한 연기를 지켜온 배우 김지숙은(40, 50, 60, 70대) 배우들의 무게감을 달고 중견연극인 창작집단으로 깃발을 올리고 노장 그룹에 선두에 서 있는 대표가 됐다. 건재한 노장(老將)들은 대학로선착장으로 집결해 안톤체홉 작, 이윤택 연출 ‘바냐아저씨’로 묵직한 신호를 알렸다. 연극 생산의 바다 한가운데로 집결해 항해의 목표를 정하고 감동의 과녁을 향해 당기는 노장의 힘줄은 여전히 탄력을 과시한다.



노장 배우들은 강렬한 연기로 무장해 지난달 27일부터 2월6일까지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2관에서 출발한 공연은 매진과 전율의 감동을 선사하며 재공연<3월10일까지·SH아트홀>에 돌입했다. 교수로 정년퇴임한 매형을 위해 25년 동안 정직함과 성실함으로 희생한 ‘바냐’ 인생은 허무함으로 탈진되고 누적된 피로는 현실과 동떨어진 박제된 지식인을 향한다. 이윤택 연출은 ‘바냐’를 동시대 현실한복판으로 불러 세우고, 노장의 배우들은 강렬한 연기로 생명을 부착시킨다.



노장 배우들, 농익은 연기로 현실의 한복판을 강렬하게 걷고 있는 ‘바냐아저씨’



김지숙, 기주봉, 이용녀, 고인배, 이재희는 노장의 내면으로 깊게 숙성된 연기를 강렬하게 응집한다. 절제됨은 연기의 익숙함으로, 들어내지 않으려는 배려는 노련함으로 인물에 생명을 부착시킨다.

김지숙은 “악명 높은 윤택형과 꼴통 배우들과의 작업은 절대 쉽지만은 않았다. 끝까지 가고 절대 지지 않는다. 진정 폼 나게 놀 줄 아는 이시대의 진정한 광대다.” 라며 작업과정을 표현했다. 연출가 이윤택은 노장 배우들을 게릴라 꼴통정신으로 응수하면서 배우들 내면에 부착되어 있는 연기의 음표(音標)을 때어내고 연출 시선으로 탄력있는 ‘바냐아저씨’ 악보를 생산해 냈다.



이윤택 연출 지휘자가 흘려보내는 노장들 연기의 화음은 클레식으로 깊은 여운으로 스며든다. 배우 기주봉은 입안으로 철썩 붙게 만드는 대사로 연기의 화학반응을 일으키면서 25년 동안 침제 되어 있던 내면의 전류를 쏟아낸다. 이봉규는 능청스러움으로 연기의 멜로디를 이어 받고 고인배, 이용녀 이재희는 연기의 절대음표로 연기의 화음을 지켜낸다. 김미수, 문창완은 속도에 탈력을 올려놓고 김지숙은 엘레나의 역할을 노장의 노련함으로 화음의 균형으로 받아 낸다. 반평생 배우의 자존심으로 고유 색깔을 들고 개성으로 무장한 노장그룹의 꼴통 배우들이 현실 한복판으로 흘려보내는 탁월한 멜로디의 화음을 배우 김지숙은 “이윤택을 연출로 한 것이 신(神)의 한수였다”고 표현했다. 중견연극인 집단 선택한 ‘신의 한수’를 연출가는 외통수로 응수하면서 이 노장들이 내는 연기의 절대 음에 선율을 입혔다.



대학 정년퇴임 후 전처의 시골마을로 재혼한 엘레나(김지숙 분)와 돌아온 교수 세례브랴꼬프(고인배 분)는 이상(理想)에 고립되어 있는 노쇠한 지식인이다. 그가 발표한 연구논문과 서재 책들은 현실의 삶과는 고립되어 있다. 현실을 움직일 수 없는 지식의 전류는 박제되어 있다. 바냐는 어머니 바이니쯔까야(이용녀 분)와 조카 소냐(김미수 분)는 25년 동안 시골의 토지를 지키며 엘레나(김지숙 분)와 재혼한 이 노쇠한 지식인을 위해 묵묵히 일만 하면서 견디어 왔다. 짝사랑했던 여인까지 매형에게 뺏겼다는 분노는 정년퇴임을 하고 엘레나와 시골마을로 돌아온 세례브랴고프(고인배 분)를 마주하며 삶은 허무함으로 장전되고 저항의 분노는 발사된다. 재혼 한 사위의 계급주의 지식에 매몰되어 있는 바이니쯔까야(이용녀 분)는 욕망을 탑승한 채 늙어버렸다. 몰락한 지주 찔레긴(이봉규 분)는 바냐 집에서 얹혀살면서 떠난 부인이 돌아 올 것 이라는 낙천적인 희망의 온기를 품는다.



이윤택 연출가와 이 노장그룹들이 올려놓은 2016년도 ‘바냐’의 삶은 19세기에 체홉이 바라본 부루조아 지배계층과 민중, 그리고 노동자로 투영되는 삶의 현상이 아니라 동시대 지금의 현실이다. 현실의 한복판으로 신축한 이윤택 연출과 노장 배우들이 호출한 작품에서 체홉의 늘어지는 극적 갈등의 느슨한 이음새를 제거하고 매스를 가하면서 체홉의 사실주의 풍경을 날카로운 현실주의로 <바냐아저씨>를 불러내고 있다.



진실은 파괴되고 성실함은 무력함과 허무함으로 탈진된다. 누적된 피로감을 저항으로 돌진하는 지금의 바냐는 이 시대 중년들의 마음을 치유하고 뒤틀려 있는 현실을 바라보며 마음을 수선하고 있다. 중년연극인들이 꺼내든 이번 작품은 노장의 배우들과 연출가가 건재하게 대한민국 한복판을 걷고 있다. 특히, 기주봉의 연기는 내면을 강렬하게 압축시킨다.



이윤택 연출의 30주년 ‘개판현실은 격이 다른 깽판으로 응수한다’



이윤택 연출이 예술감독으로 이끌고 있는 연희단거리패(대표 김소희)가 올해 창단 30주년이다. 지난해 연극계는 이른 바 연출가 박근형 ‘창작검열사태’로 지독한 몸살을 앓았다. 아직도 정치적인 시선으로 지원 선정 작품의 누락과 일부 예술가들에게 옮겨간 검열과 지원배제 바이러스공포는 아직도 불신으로 치유되지 못한 채 일부 연극인들 심장을 도려내고 있다. 30년 동안 연희단 거리패를 이끌면서 한국연극 토양에 수많은 화제작들을 뿌려온 이윤택 연출가도 바이러스 공포 논란에 서 있었다.



창작산실-우수공연 작품제작지원(연극부문) 희곡분야 심사에서 100점을 받은 이 노장의 연출가도 창작지원 사업에 배제 되면서 ‘창작산실의 공포’는 불씨를 남겼다. 젊은 연극인과 연출가들의 실험적인 도전정신으로 무장해 신진 연출가들을 배출하고 있는 게릴라극장은 소극장 지원 사업에서도 고비를 마셨다. 이때까지만 해도 이윤택 연출은 침묵으로 지켰다. 침묵은 연극 ‘백석우화’로 백석 시의 아름다움을 연극으로 소리를 내면서 평단에 큰 호평을 받았다. 백석우화가 제8회 대한민국 연극대상 작품과 연기상과 ‘제3회 이데일리 문화대상’ 연극부문 최우수상을 수상하면서 연출은 묵묵하게 연극만을 지켰다.



이윤택 연출은 노년에 부산 기장에 안데르센 극장을 개관해 어린이극을 한다는 것에 보람을 느꼈다. 이 극장도 아동들과 학부모들 반응이 개관 한 달 만에 5300명이 몰릴 정도로 연극의 오지에서 반응이 폭발적 이였는데도 불구하고 개관 한 달 만에 군 예산부족으로 폐관되는 코미디 같은 일이 벌어졌다. 정치적인 시선으로 여러 진행사업에서 불이익을 받고 있다는 인상을 받고 있는 이윤택 연출은 긴 침묵을 깨고 연희단거리패 창단 30주년 계획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칼 같은 말을 꺼냈다.



“자신을 비롯해 한국연극의 거대한 산맥을 형성한 오태석, 이강백 등 거장들의 작품이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지원 사업에서 줄줄이 탈락했다. 오태석 선생님은 극단목화가 30주년 공연을 위해 대관신청을 했는데도 탈락됐다. 상식이 무너지는 현실이다. 평생 한국연극을 지켜냈고, 지금도 여전히 현장에서 연극을 만들고 글을 쓰는 것을 천직으로 알고 있는 연극의 장인들이 연극지원 사업에서 외면당하고 있는 현실이 과연, 제대로 된 사회인가! 야만적인 현실에서는 격(格)이 다른 깽판으로 응수 할 수밖에 없다. 다시 게릴라 정신으로 무장해 연극판으로 돌아간다.”라고 선언했다.



오태석, 이윤택, 이강백 등 한국연극의 거장들이 제대로 된 대접을 받지 못하는 연극행정의 지원정책 현실풍토를 뇌사로 진단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윤택 연출은 연희건거리패를 이끌고 30년 전 1986년 부산 가마골소극장에서 출발해 한국연극의 한복판을 점령한 문화게릴라 정신으로 격이 다른 연극으로 무장하고 나섰다. 28일까지 대학로 게릴라 극장에서 공연되는 ‘방바닥 긁는 남자’ 출발로 연희단거리패 화력을 재 점화하고 있다. 이러한 현실에서 중견연극인 창작집단의 ‘바냐아저씨’는 반평생 성실로 연극토양을 지켜온 연극인들이 겪고 있는 현실의 피곤함은, 바냐의 내면과 동일화 된다.



이윤택 연출은 이 노장의 배우들을 ‘바냐아저씨로’ 탑승시켜 대학로 바다 한 가운데로 전진하면서 균열을 균형으로 불균형을 격이 다른 연극적 저항과 배우들의 노련한 화음으로 응수하고 있다. 중년연극인 창작집단 배우들이 현실로 토해내는 전류는 피로사회에 누적된 마음을 공감시키고 있다. 무대에서 발화되는 배우들의 연기의 전류는 강렬하다. 연기를 배우는 연극학도나 삶에 피곤함을 느껴 연극 한편으로 허무한 내면을 치유하고 싶다면 꼭 봐야 할 작품이다.

작품평가 ★★★★★



대경대 연극영화과 교수(연극/공연예술평론가)